협상의 달인이 토론의 달인을 만났을 때

윤호우 선임기자 2020. 5. 1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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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협상 시험대’ 오른 김태년·주호영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로 21대 국회 이끌어… 원 구성 문제로 첫 대결


21대 총선을 앞두고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당내에서 ‘물갈이 대상 영남권 중진’으로 몰렸다. 통합당에는 ‘텃밭 중 텃밭’인 대구 수성을에서 4선을 했기 때문이다. 영남권 다선 의원에게는 불출마를 권유하는 전화가 갔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당시 주 원내대표는 많은 방송토론에 나갔다. 주 원내대표 측은 “방송 원고를 쓰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고 말했다. 2004년 초선 의원 때부터 주 원내대표는 방송토론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판사 출신 의원답게 상대 당의 논리를 법적 근거를 따져가며 논박했다. 민주당이 지난해 말 국회 본회의에서 패스트트랙 법안을 처리할 때, 통합당에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의 첫 주자로 주 원내대표를 내세운 이유도 그의 토론 능력 때문이었다. 주 의원은 ‘무더기 법안 필리버스터’ 전략을 당 지도부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오른쪽 네 번째),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오른쪽 다섯 번째) 등 여야 원내지도부가 5월 14일 국회 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 첫 회동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여당 협상전문가 대 야당 토론전문가

총선 불출마 압력에도 굳게 버틴 주 원내대표는 수성을이 아닌 바로 옆 지역구(수성갑)로 공천을 받았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의 4선 간 맞대결에서 이겼고, 기세를 몰아 당 원내대표 선거에서도 승리했다. 대구 지역에서 보기 드물게 친이(친이명박)계였던 주 원내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이 물러난 후 당에서는 비주류로 분류됐다. 지역에서 최경환계·유승민계 의원들이 있었지만, 다선 의원이 되면서도 주 원내대표 옆에는 딱히 ‘주호영계’로 불릴 만한 의원이 없었다. 하지만 21대 국회를 앞두고 원내대표에 당선되면서 일약 당내 주류의 리더로 떠올랐다. 이번 총선 결과 친이·친박의 계파 구분이 옅어지고, 영남권 지역 의원들이 당내 주류가 됐기 때문이다.

주 원내대표의 협상 파트너인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재수’ 끝에 원내대표에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타가 공인하는 여야 협상전문가다. 지난해 5월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김 원내대표는 “협상은 내가 전문가”라고 강조했다. 김 원내대표는 2013년 정치쇄신특위 민주당 간사를 맡아 여당인 새누리당과 협상에 나섰다. 보궐선거를 연 2회에서 1회로 줄이고 온라인 입당을 합법화했다. 20대 국회에서는 교육문화위 간사로 여야 협상에 나서 누리과정 예산 문제를 해결했다. 김상일 시사평론가는 “김 원내대표는 협상에서 즉흥적이고 표현이 거칠긴 하지만 목표를 한 번 정하기만 하면 꼼꼼하게, 그리고 합리적으로 잘 마무리한다”고 말했다. 김재원 통합당 의원(전 정책위 의장)은 지난 5월 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김 원내대표는 보통 민주당 의원들하고는 달리 디테일이라든가 실무라든지 정책적인 측면에서 엄청 천재적인 분”이라고 평가했다. 김 의원은 누리과정 예산 합의 당시를 예로 언급했다.

김 원내대표는 지난해 원내대표 선거에서 당초 과반을 장담했다. 하지만 이인영 의원과의 결선투표에서 패했다. 전대협 1기 때 함께 활동한 30년 지기와의 대결이었다. 김 원내대표는 협상에는 전문가였지만 당내 의원들의 마음을 얻는 데에는 실패했다. 김 원내대표의 화끈한 스타일이 일부 의원에게는 ‘거칠다’라는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번 원내대표 선거에서는 지난해 패배의 심정을 토로하며 진솔하게 정견 발표를 한 것이 선거 승리의 한 요인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원내대표 측은 선거를 앞두고 “지난해 선거는 30년 지기와의 선거라 다소 안이했던 점이 있었지만, 이번 선거는 절실하다”고 말했다.

21대 국회에서는 여당의 협상전문가 대(對) 야당의 토론전문가라는 양당 원내대표 간 대결이 펼쳐지게 됐다. 통합당의 한 의원은 “정말 깊숙한 협상이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양당 관계자들 역시 단순히 힘으로 밀어붙이는 1차 방정식이 아니라,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고차 방정식의 협상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타결 막판까지 조금이라도 더 실리를 얻어내려는, 끈질긴 협상이 이뤄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공교롭게도 두 원내대표는 각각 당 정책위 의장을 거쳤다. 정책에 대해서는 풍부한 경험이 있는 정책통이다.

두 원내대표에게 정책은 훤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서로 간의 협상이다. 협상 테이블은 김 원내대표에게 유리하게 펼쳐져 있다. 무엇보다 김 원내대표에게는 177석이라는 슈퍼 여당을 이끄는 이점이 있다. 게다가 김 원내대표는 주류라는 당내의 탄탄한 기반을 갖추고 있다. 4선급 의원에다 친문 이해찬 직계, 학생 운동권 출신, 문 대통령의 대학(경희대) 후배라는 밑바탕이 있다. 어떤 협상을 해오든 원내 의원들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을 기반이 있는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 김영진 원내총괄수석부대표 등이 5월 14일 국회 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 이종배 정책위 의장 등을 맞이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다

주 원내대표는 슈퍼 여당의 주류 원내대표와 맞서야 한다. 장성철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 연구소장은 “주 원내대표가 다양한 협상의 경험을 갖고 있지만, 거대 여당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협상 카드가 별로 없다”면서 “결국 여당의 김 원내대표가 야당을 배려해 주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여야 협상을 전담해야 하는 원내대표 역할 외에도, 통합당 지도부를 복원시켜야 할 짐까지 떠맡았다. ‘김종인 비대위’뿐만 아니라 홍준표 당선인을 비롯한 탈당 인사의 복당 등이 넘어야 할 산이다. 맨 먼저 ‘김종인 비대위’를 둘러싼 갈등을 헤치고 나가야 한다. 주 원내대표 측은 “어쨌든 당선인들이 토론을 통해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당 내부에서는 연말까지 비대위 체제로 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지역 정가에서는 “주 원내대표의 스타일로 볼 때 굳이 김종인 비대위로 갈 이유가 보이지 않는다”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반면 한 중진 의원은 “김종인 비대위가 아니라면 굳이 12월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예정대로 8월 전당대회를 갖고 대표를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 원내대표의 의지와 관련 없이 ‘김종인 비대위’ 논란을 일단 해소하는 것이 원내대표 리더십의 시험대가 될 수 있다. 당내 역학 관계가 복잡할수록 원내대표로서는 여야 협상에서도 더욱 어려움을 겪게 된다. 겨우 협상에 이르더라도 당내 의총에서 다수의 반대에 부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이 위기에 처한 만큼 주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한 체제를 갖출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장성철 연구소장은 “이번 원내대표 선거에서 많은 표 차이로 주 원내대표가 당선됐고, 친이-친박 간 계파 구조도 사라져 당분간은 주 원내대표 체제의 발목을 잡을 세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양당 원내대표의 협상 능력은 원 구성 문제로 첫 시험대에 오른다. 쟁점은 법사위원장 확보로 좁혀졌다. 주 원내대표 측은 “법사위원장과 법사위 권한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사항”이라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권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한편 김 원내대표는 5월 12일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야당이 지연 전략을 편다면 표결로도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강·온을 오가는 김 원내대표의 협상 전략에 주 원내대표는 상대방의 논리를 조곤조곤 따져 들어가는 방식을 선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야 협상에서 누가 더 유리한 내용을 이끌어낼지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상일 평론가는 “한쪽은 화끈한 파이터(김 원내대표)이고, 한쪽은 차분한 스타일(주 원내대표)이어서 벼랑 끝 협상에서는 잘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둘 다 꼼꼼하고 합리적이라는 점에서는 끝까지 협상다운 협상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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