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성의 금융CAST]클릭실수의 경제학..'한방에 훅 간다'
칠레 광물 선물 딜러, GDP 0.5% 손실 기록하기도
남일 같지만 우리도 종종 '착오송금'으로 땅을 쳐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당시 위기를 초래한 금융업자들에 ‘살찐 고양이’라고 맹비난한 적이 있습니다. 회사 경영과 국가 경제를 어렵게 만들어놓고도 고액의 보너스를 챙겨간 월가 종사자들에 대한 탐욕을 비유한 것인데요, ‘살찐’이란 단어는 이외에도 여러 용례에 쓰입니다.
이중 하나가 ‘살찐 손가락’입니다. 영단어 ‘fat finger’를 직역한 단어인데, 의역을 하자면 ‘아둔한 손가락’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실수로 액수를 잘못 기입하거나 버턴을 잘못 눌러 ‘사고를 칠 때’ 요 단어가 등장합니다.
다빌라는 1993년 당시 칠레 국영 광물 회사의 직원으로 광물 선물을 사고 팔았습니다. 주된 거래 장(場)은 런던금속거래소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국제 원자재 선물은 등락이 큽니다. 매수 매도 타이밍만 잘 잡으면 차익을 꽤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위험한 투자이기도 하고요.
처음 이 사건은 다빌라의 단순 실수로 알려졌습니다. 매수를 눌러야 할 때 매도를 눌렀고, 매도를 눌러야 할 때 매수를 눌렀던 것이죠. 그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을 때 이미 4000만달러의 거래 손실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다빌라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계속해서 거래를 했습니다. 결국 총 손실액이 2억700만달러에 달합니다. 이 정도 액수는 당시 칠레 GDP의 0.5%에 달했다고 합니다. 최근 칠레의 GDP가 약 3000억달러 규모인데, 지금으로 치면 약 15억달러를 날린 거네요.
다빌라는 그해 이그노벨상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됩니다. ‘한 나라 경제 규모의 0.5%를 말아먹은 사나이’로 말이죠. 이그노벨상은 노벨상의 패러디 상으로 뭔가 엽기적인 연구나 입지전적인 업적을 기록한 이들에게 수여합니다. 다빌라에게는 굴욕적인 상임에 틀림 없습니다.
이후 동정의 대상이었던 다빌라는 조소의 대상이 됩니다. ‘다빌라르’라는 동사까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다빌라한다’라는 단어로 의역하자면 어이없이 멍청한 짓을 할 때 쓴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런 일은 왕왕 발생한다고 합니다. 전세계적으로 금융 업계에서 거래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말이죠. 기자들이 기사를 쓰다 오타를 내듯 거래 주문을 하다 실수를 하곤 합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회사가 문을 닫을 정도의 손실을 내기도 합니다.
이 실수로 입은 손실액은 462억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한맥투자증권은 결국 문을 닫게 됩니다.
케이프투자증권도 지난 2018년 2월 코스피200 옵션 매수 매도 주문을 잘못 보냈는데, 이게 거래로 체결되면서 62억원의 손실을 봤습니다. 중소 증권사인 케이프투자증권의 당기순익의 절반 가량에 육박하는 액수라고 합니다.
사실 이런 비정상 주문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거래 관계가 오래된 사이라면 상대방이 이런 비정상 주문을 냈을 때 알려주곤 합니다. 상대방의 실수를 이용해 돈을 벌어 좋을 게 없거든요. 거래 관계는 오늘로 끝나는 게 아니니까요. 2015년 독일 도이체방크는 신입사원의 실수로 한 헤지펀드에 60억달러를 잘못 입금했다가 되찾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살찐 손가락’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습니다. ‘착오송금’이라고 해서 실수로 돈을 잘못 보내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합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착오송금으로 반환청구됐던 액수는 총 2565억원이라고 합니다. 이중 절반이 반환됐고 나머지 1233억원은 미반환됐다고 합니다. 그만큼 한번 잘못 송금된 돈은 되찾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고도화된 네트워크로 연결된 컴퓨터 세상은 우리에게 신속함과 편리함, 간편함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집에 누워서 해외 주식을 사고 고위험 파생상품을 거래합니다.
그런데 이런 편리함이 커진만큼 실수에 대한 위험도 커진 것이지요. 어쩌면 우리가 편리하게 살면서 감수해야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죠.
이런 세상일 수록 더 필요한 게 ‘정직’인 것 같습니다. 다른 이가 실수를 했을 때 그 실수를 이용하지 않고 되돌릴 수 있게 도와주는 ‘도리’ 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기술이 고도화된다고 해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와 다른 게 없어 보입니다.
김유성 (kys40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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