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한동안 '부부의 세계' 이태오 실물 목격담'이 누리꾼 사이에 화제였다. 불륜남편에게 욕이라도 해 주려고 했으나 박해준을 직접 만난 뒤엔 '셋째부인 하겠다'고 할 뻔 했다는, 사심 가득 우스갯소리 같은 고백은 공감에 공감을 불렀다. '분노주의' '혈압주의'를 부르는 '부부의 세계' 불륜의 축 이태오 덕에 극단을 오가는 미중년 연기파 배우 박해준의 매력을 이제 모두들 알아본 참이니까.
JTBC '부부의 세계'(극본 주현, 연출 모완일)는 남편의 불륜과 함께 완벽하리라 믿었던 세상이 무너져버린 여자의 이야기다. 극의 무게로 보나 시선으로 보나 믿고보는 배우 김희애가 연기하는 의사 지선우가 중심이다. 그러나 그에 못잖게 중요한 게 그 남편 이태오다.
이태오는 그녀가 세상이 완벽하리라 믿을 만큼 멋지고, 한편으로는 그녀가 모든 걸 내던져 도려내고 싶을 만큼 증오스러워야 했다. 그 인물에 박해준이 낙점된 건 그에게도, '부부의 세계'에게도 행운이었다.
수많은 드라마 속 불륜남편이 있지만, 이태오는 이후로도 널리 회자될 문제적 캐릭터다. 잘생기고 따뜻한 남자 이태오는 안정감을 주는 아내 지선우와 아들을 사랑하지만, 영감과 자극을 주는 젊은 애인 여다경을 그에 못잖게 사랑한다. 게다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둘 모두를 포기할 마음이 없다. 그게 모든 비극의 씨앗이다.
뒷목 잡게 하는 순간도 여럿이다.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여다경에게 명품백을 사준 행태가 대표적. 심지어 쫓겨나듯 고향을 떠났다가 보란듯이 돌아와선 자식 키우며 사는 전처를 쫓아내려 한다. 이젠 법적 아내가 된 여다경을 배신하며 줄타기를 한다. 이 죄의식 없는 남자의 갈팡질팡 행보는 심지어 모두가 진심이다.
자신의 불륜에 충격받은 아내에게 항변하듯 외치는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는 모순으로 가득한 남자 이태오를 대변하는 대사가 됐다.
하지만 이태오가 그저 '극혐'이라면, 비지상파 드라마의 새 역사를 쓰고 화려한 종영을 향해 가는 '부부의 세계'의 영광은 없었을 것이다. 이 모순덩어리마저도 시청자들이 품어내게 한 데는 문제적 캐릭터를 살아있는듯 그려낸 배우 박해준의 힘이 크다.
갈등의 당사자이면서 지선우, 여다경의 불안과 분노를 증폭시키는 기폭제이기도 한 이태오를 선택하는 건 경험많은 배우 박해준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거침없고 솔직한 만큼 철없고 유약한 이태오를 동정하고 또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접근했다.
"감정의 흐름대로 저지르는 것들이 죄가 된다."
그의 디테일한 해석, 완급 정확한 표현 덕에 '분노유발자' 유태오는 열등감 속에 사는 애틋하고 안쓰럽기까지 한 인물로 거듭났다. 미소라도 지으면 예전 지선우의 흐뭇한 마음에 절로 공감되는, 박해준이란 배우 본연의 매력도 문제적 캐릭터를 완성하는 데 큰 힘을 발휘했다.
드라마의 주연으로서 힘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을 뿐, 박해준은 이미 수없이 검증되고 또 인정받아 온 배우다. 롱코트를 맵시있게 입어내는 185cm의 키, 한예종 2기 시절부터 동기 중 최고 미남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비주얼이야 두말하면 입 아프다.
허나 그가 뜬 건 어디까지나 비주얼 아닌 연기력 덕. 짧은 등장으로도 영화계에 그 존재를 알린 '화차'(2012)를 시작으로 영화 '화이'(2013), '4등'(2016), '미씽:사라진 여자'(2016), '독전'(2018), '악질경찰'(2019), '유열의 음악앨범'(2019), '힘을 내요, 미스터 리'(2019), 드라마 '미생'(2014), '나의 아저씨'(2018), '아스달 연대기'(2019) 등으로 이미 극과 극을 오가는 스펙트럼을 과시했다.
그리고 이제 '부부의 세계'로 그 존재감이 폭발했다. 미운데 안쓰럽고, 열받는데 멋지다. 이태오 앞에서 감정이 널을 뛰는 지선우의 마음이 이러할까.
그래서 이태오 욕하면서 그를 보러 주말 밤 TV 앞에 다시 앉은 시청자의 마음은 더 널리 공감을 산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하던 이태오는 몰라도, 박해준에겐 얼마든지 빠져들 수 있다. 박해준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암요, 그렇고말고요.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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