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는 왜 총상 사망을 숨겼나?

하선아 2020. 5. 12.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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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타박상으로 숨진 줄로만 알았는데. 사체검안서를 보니 고 김안부 씨는 총에 맞아 숨진 걸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총상이란 걸 감추고 싶어했다는 건데... 이유가 뭘까요?

하선아 기자가 분석해봤습니다.

[리포트]

계엄군의 발포로 인한 첫 공식 사망 기록은 1980년 5월 20일 밤입니다.

검시 기록을 보면 이날 밤 광주역 앞 등에서 총상으로 모두 4명이 숨졌습니다.

군은 한동안 이 같은 사실을 숨겨오다 자위권 차원에서 실탄 지급과 발포가 이뤄진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하루 앞선 19일 김안부 씨의 총상 사망이 확인되면 자위권 주장이 흔들리게 됩니다.

김 씨가 사망한 날인 19일 광주지역에서는 일부 소요는 있었지만 군이 발포할 정도의 격렬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군의 검시참여 보고서에도 김 씨는 '데모를 구경하던 중'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김 씨의 죽음은 전두환 신군부의 자위권 사격이 허구임을, 또 5.18의 성격이 잔혹한 국가폭력에 의한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김희송/전남대 5·18연구소 : "19일 날 광주에서의 시위가 막 시작됐던 이 시기에 총을 쐈다 이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계엄군이 처음부터 총사격까지 포함한 잔혹한 작전을 시행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안부 씨와 같은 날 총에 맞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김영찬 씨도 목격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상자로 인정받기까지 고통을 받았습니다.

[김영찬/5월 19일 총상 부상자 : "그걸 인정을 안 해주는 게 참 답답하죠. 국회 청문회 할 때도 군부에서는 21일 날 최초 발포했다, 그렇게 하고..."]

1980년 5월, 시민들에게 총을 겨눈 계엄군은 한결같이 자위권 차원의 발포라고 주장해왔습니다.

하지만, 총상이 기록된 김안부 씨의 검시 내용은 자위권 논리를 뒤엎는 또 하나의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KBS 뉴스 하선아입니다.

하선아 기자 (sah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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