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요기즘(Yogi-ism)
[경향신문]
어지간한 야구팬이라면 요기 베라(1925~2015)를 모를 리 없다. 메이저리그 전설의 포수이자 감독, 월드시리즈 우승반지 10개, 뉴욕 양키스의 등번호 ‘8번’ 영구결번…. 요기 베라를 모르는 사람도 이 말은 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그의 이름보다 유명한, 그가 남긴 명언이다. 뉴욕 메츠 감독이던 1973년 여름, 팀 성적이 꼴찌로 처져 잘릴 위기에 처한 그에게 리포터가 “다 끝난 것 아니냐”고 묻자 그가 했다는 말이다. 이후 메츠는 거짓말처럼 승승장구해 9.5경기차 열세를 뒤집고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거머쥐었다.
본명은 로런스 피터 베라인데, 어린 시절 단짝 친구가 인도 영화에서 본 요가 수행자와 닮았다며 붙인 별명 ‘요기’(Yogi)를 이름으로 삼았다. 그라운드의 수다쟁이이자 언변의 마술사로 통한 요기는 재기 넘치는 명언들을 남겼다. 그의 촌철살인 어록을 ‘요기즘’(Yogi-ism)으로 칭할 정도이다. 동어반복·모순 어법으로 역설과 유머를 전하는 게 요기즘의 특징이다.
요기즘의 통찰은 코로나19 시대도 꿰뚫고 있다.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 특별연설에 등장한 “(방역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발언은 물론이다. 요기 베라는 “다가올 미래는 예전에 있었던 미래가 아니다” “데자뷔(기시감)가 다시 오고 있다” “어디로 가는 줄 모르면 원하는 곳에 다다를 수 없으니 조심하라” “똑같이 할 수 없다면 따라 하지도 마라”라는 말도 했다. 요즘 상황에 대입해도 딱 들어맞는다. “야구의 90%는 멘털”이고 “기록은 깨질 때까지 존재한다”는 요기즘은 끊임없는 긴장과 정신력을 일깨운다. “다른 사람 장례식에 꼭 가라, 안 그러면 그들이 당신 장례식에 안 온다”는 말은 대표적인 유머다.
요기즘은 ‘허허실실’이다. 곱씹어보면 코로나를 이겨낼 지혜를 떠올릴 만하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자기 주관을 뚜렷하게 세우며, 늘 긴장하고, 정신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게 요기즘이 코로나시대에 울림을 주는 메시지다. 유머는 부록이다. 그는 “요기즘 하나 만들어달라”는 친구들 청에 “난 몰라. 그런 적 없어”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또 하나의 명언을 낳았다. “정말로, 내가 했다는 말을 다 내가 하진 않았어.”
차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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