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구글의 어른' 에릭 슈미트, 그는 왜 구글 떠났나
(지디넷코리아=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에릭 슈미트가 구글을 완전히 떠났습니다. 2001년 구글에 몸 담은 지 19년 만입니다.
미국 씨넷을 비롯한 주요 외신들은 슈미트가 지난 2월 알파벳 기술 고문직을 내려 놨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로써 슈미트가 구글과 맺고 있던 마지막 인연의 줄까지 끊어지게 됐습니다.
물론 슈미트가 구글의 의사 결정에서 한 발 물러난 지는 좀 됐습니다. 2011년 구글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2017년엔 지주회사 알파벳의 회장 자리도 선다 피차이에게 넘겨줬습니다.
그 때 이후 슈미트는 기술 고문이란 상징적 역할만 해 왔습니다. 그의 퇴진이 구글 왕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구글에서 슈미트가 갖는 의미는 적지 않습니다. 신생 벤처였던 구글이 세계 최고 기업으로 성장하는 밑거름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슈미트는 구글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그리고 그는 왜 구글과 연결했던 마지막 선까지 잘라낸 걸까요? 시간을 30년쯤 전으로 되돌려서 이야기를 풀어 볼까요?
■ 넷스케이프의 '20+40 조합' 연상케 한 구글의 슈미트 영입
1996년 4월. 초기 인터넷 혁명을 주도한 넷스케이프가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일리노이 대학원생이던 마크 앤드리슨과 실리콘그래픽스 CEO 출신인 짐 클라크가 의기투합해서 만든 기업입니다.
앤드리슨과 클라크의 만남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20대의 패기와 40대 연륜의 결합이지요. 앤드리슨은 그 무렵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비전으로 무장한 패기만만한 20대였습니다. 반면 짐 클라크는 산전수전 다 겪은 40대 베테랑 경영자였지요.
그래서 둘의 만남을 ‘20+40 결합’이라고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둘은 환상의 콤비를 자랑하면서 순식간에 실리콘밸리의 강자로 떠오릅니다. 한 때 마이크로소프트(MS)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정도로 강력한 위세를 자랑했습니다. 그 무렵 MS를 이끌던 빌 게이츠는 ‘끼워팔기’란 꼼수까지 동원하게 되지요. 그 여파로 결국 빌 게이츠는 MS CEO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에릭 슈미트는 구글에서 짐 클라크 비슷한 역할을 했습니다. ‘20+40 파워’의 든든한 한 축이 되면서 구글을 안정적으로 성장시켰습니다.
잘 아는대로 구글은 스탠퍼드 대학원생이던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가 만든 기업입니다. 대학원 수업 과제로 고안했던 페이지랭크가 사업의 토대가 됐지요.
당시 구글의 검색엔진은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구글에 투자했던 벤처캐피털리스트(VC)들은 불안했습니다. 둘의 실력은 인정했지만, 안정감은 믿지 못했던 겁니다.
실리콘밸리 대표 VC 클라이너 퍼킨스의 존 도어 등은 ‘연륜 있는 40대 경영자’를 물색합니다. 그들이 주목한 건 소프트웨어 회사 노벨의 CEO를 역임한 에릭 슈미트였습니다.
■ 신생 벤처 구글을 세계 최고 모바일 기업으로 키워내
슈미트는 2001년 3월 이사회 회장으로 구글에 합류합니다. 그리고 5개월 뒤인 그 해 8월 구글 CEO에 취임합니다. 그 무렵 구글은 닷컴 붕괴 이후 막 도약을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구글에 합류한 슈미트를 굵직한 과제를 잘 풀어냅니다. 특히 2004년 단행한 기업공개(IPO)는 에릭 슈미트가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란 평가를 받습니다.
이후 유튜브 인수를 비롯해 모바일 운영체제(OS) 개발 작업 등을 성공적으로 해냅니다.
슈미트는 CEO로 재직하던 10년 동안 구글을 눈부시게 성장시킵니다. 검색엔진 기업이었던 구글을 명실상부한 모바일 강자로 탈바꿈시킵니다. 20대였던 두 창업자의 야심과 혁신을 사업으로 잘 이뤄낸 겁니다.
구글이 상장하던 2004년 매출은 31억9천만달러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CEO에서 물러나던 2011년엔 379억 달러로 늘어납니다.
10년 동안 구글의 성장을 주도했던 에릭 슈미트는 2011년 회장으로 물러납니다. 대신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가 구글 CEO에 취임합니다.
그 무렵 여러 가지 분석이 제기됐습니다. 구글이 '과감한 혁신’을 추진하기 위한 변화란 게 가장 유력한 합니다. 실패를 감수하는 과감한 전략을 밀고 나가는 데는 전문 경영인보다는 창업자가 더 유리할 수도 있을 테지요.
페이지가 CEO에 취임한 뒤 가장 큰 변화는 2015년 단행한 회사 구조 개편입니다. 알파벳이란 지주 회사를 만든 겁니다. 구글은 알파벳의 한 사업 부문으로 편입됐습니다. 구글에 부담이 됐던 ‘돈 안 되는 성장 산업’을 별도 회사로 분리한 겁니다.
에릭 슈미트는 알파벳 회장에 취임했습니다. 하지만 2년 뒤인 2017년엔 알파벳 회장도 선다 피차이에게 물려줍니다. 대신 기술 고문 역할을 맡습니다. 이제 이 역할까지 내려놓으면서 구글과의 인연을 완전히 정리했습니다.
■ 최근 미국 정부 프로젝트에 연이어 참여…이해충돌 문제 제기
이제 두 번째 질문을 던져야 할 차례입니다. 에릭 슈미트는 왜 구글을 떠난 걸까요? 슈미트는 알파벳에서 ‘1달러’란 상징적인 연봉만 받았습니다. 직책 역시 일상 경영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구요.
그런데 슈미트는 왜 구글과의 인연을 정리한 걸까요?
최근 슈미트의 행보 때문입니다. 구글의 일상 경영에서 손을 뗀 에릭 슈미트는 정부 관련 프로젝트에 깊이 관여해 왔습니다.
슈미트는 미국의 국방혁신 이사회 회장으로 활동했습니다. 국방부에 신기술을 도입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조직입니다. 또 인공지능 국가안보위원회 회장직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또 뉴욕 주의 기술 인프라 사업을 담당하는 위원회 회장도 맡고 있습니다. 뉴욕 주가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작업을 담당하는 기관입니다.
슈미트의 대외 활동 폭이 넓어지면서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졌습니다. 알게 모르게 구글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의구심 어린 시선이 몰리기 시작한 겁니다. 이해충돌 상황이 발생한 셈입니다.
결국 이런 상황 때문에 슈미트는 구글과의 관계를 끊기로 한 것 같습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두 창업자의 비전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구글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에릭 슈미트가 없었다면, 구글이 닷컴 붕괴란 격랑을 뚫고 지금의 위치까지 성장했을 지도 의문입니다. 그만큼 그의 연륜과 안정감은 ‘젊은 기업’ 구글의 성장 엔진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특히 래리 페이지가 CEO를 맡은 이후 구글이 각종 이슈들을 처리하는 과정을 보면 아쉬운 부분이 눈에 많이 띕니다.
‘안드로이드 대부’인 앤디 루빈 성추문 문제 처리가 대표적입니다. 루빈에게 거액의 퇴직금을 듬뿍 안겨주는 모습을 보면서, 일처리가 매끄럽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에릭 슈미트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40대의 연륜’으로 구글에 합류한 에릭 슈미트. 그가 구글에 선사한 진짜 선물은 안정감이었기 때문입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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