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군' 판결문 120년 만에 공개.."전봉준 사형"

홍의표 입력 2020. 5. 11.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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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 앵커 ▶

조선 말 부정 부패를 척결 하고, 일본 등 외세의 침략에 저항 했던 '동학 농민 혁명'.

당시 동학 농민군에 대한 재판 판결문이 120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가 됐습니다.

녹두 장군 전봉준의 행적은 물론이고, 일본이 재판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도 드러 났습니다.

홍의표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고문으로 다리를 쓸 수 없어 가마에 올라탄 채 압송되는 '녹두장군' 전봉준 대장.

국가기록원이 오늘 최초로 공개한 120여 년 전 조선 법원의 판결문입니다.

당시 재판소는 전봉준을 "동학당이라는 비도의 거괴", 즉 '도적떼의 두목'으로 불렀습니다.

하지만 일제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지키려했던 결연한 의지는 판결문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일본인이 우리나라를 삼키려는 뜻이 있는 줄 알고 다시 군사를 일으키려 모의했다"고 적혀있는 겁니다.

5쪽에 걸쳐 전봉준의 행적을 밝힌 재판부는 결국, "군복을 입고 말을 타며 관아에 반란을 일으켰다"며 "전봉준을 사형에 처한다"고 선고합니다.

그런데 판결문엔 당시 조선 사법부가 일본의 영향력 아래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도 남아있습니다.

'우치다 사다츠치'라는 이름의 일본 영사가 재판관 자격으로 판결에 참여한 겁니다.

[도면회/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조약상으로는 합법적인 조문에 의해서 같이 재판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동아시아 국가가 가지고 있던 주권에 대한 부분적인 침해가 이뤄진 거죠."

3개월의 작업 끝에 복원된 판결문엔 전봉준 외에도 불의와 외세에 맞섰던 동학농민군 139명의 재판 과정도 담겼습니다.

[곽 정/국가기록원 복원관리과장] "공인된 최초의 형사 재판 원본이라서, 공적인 기록물들로서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 시점에 맞춰서 공개하게 됐습니다."

국가기록원은 이번 판결문을 포함한 '동학농민혁명' 관련 기록물들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MBC뉴스 홍의표입니다.

(영상취재: 정민환 / 영상편집: 김관순)

홍의표 기자 (euypyo@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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