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김평일의 재발견

기자 2020. 5. 6.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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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부재' 기간에 잊어진 인물 하나가 다시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김평일(金平一). 김일성과 후처 김성애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자, 김정일의 이복동생.

김평일은 김정일과 달리 이목구비가 아버지를 많이 닮았고 키도 크다.

김평일은 김성애와 공동 전선을 구축한 후계 다툼에서 김정일에게 밀린 뒤 해외를 떠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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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운 논설위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부재’ 기간에 잊어진 인물 하나가 다시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김평일(金平一). 김일성과 후처 김성애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자, 김정일의 이복동생. 김정은이 사망할 경우 여동생 김여정은 후계자가 되기 어렵기 때문에, 같은 ‘백두혈통’인 김평일이 김정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김평일은 김정일과 달리 이목구비가 아버지를 많이 닮았고 키도 크다. 김일성종합군사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고, 다시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54년생으로 66세. 현재 북한 당·정·군의 엘리트들과 동년배이기 때문에 서른을 갓 넘은 김여정에 비해 인맥도 풍부하고 소통도 원활할 수 있다는 장점이 거론됐다.

김평일은 김성애와 공동 전선을 구축한 후계 다툼에서 김정일에게 밀린 뒤 해외를 떠돌았다. 1979년 유고슬라비아 주재 무관으로 부임한 뒤 헝가리·불가리아·핀란드·폴란드 대사를 지냈다. 특히 폴란드에서는 1998년부터 17년 머물렀는데, 이 나라에는 북한 노동자 수천 명이 파견돼 임금을 상납했기 때문에 다른 공관에 비해 ‘따뜻한’ 자리였다는 분석이 있다. 2001년부터 3년 동안 폴란드 대사를 지낸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저서 ‘빙하는 움직인다’에 김평일과의 만남을 기술했다. 송 전 장관이 핵을 포기하라고 충고하자 김평일은 “우리 말고 미국에 좀 부드럽게 하라고 충고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평일은 해외 근무 내내 24시간 감시에 시달렸다. 공관 직원들은 김평일의 일거수일투족을 평양에 보고하는 한편, 김평일과 공적이든 사적이든 접촉을 피했다고 한다.

김평일은 김정은 집권 3년 뒤인 2015년 공관장 회의 참석을 위해 36년 만에 귀국했다는 보도가 있었고, 2019년 말 체코 대사직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갔다. 김평일의 누나인 김경진도 남편인 김광섭 주오스트리아 대사와 같은 시기에 귀국했다. 이들의 귀국은 김정일의 장남이자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살해되고, 그의 아들 김한솔이 제3국으로 망명한 뒤 2년 만이다. 북한 당국이 김평일 등 ‘곁가지’를 강력히 단속해온 상황에서 후계자 부상론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독재자들에게는 물보다 진한 것이 피고, 피보다 진한 것이 돈이며, 돈보다 진한 것이 권력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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