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했던 코로나, 사람들은 몰라요" 28번 환자의 투병기

김영선 기자 입력 2020. 5. 4.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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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28번 환자' 김형진씨의 한 달여 코로나19 투병기
코로나19 대전 28번 환자인 김형진씨는 국민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일상에서도 언제든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다며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한 달여간의 투병 끝에 지난달 25일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했다. 본인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전 28번 환자로 기록된 김형진씨는 올 1학기 미국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갈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계획이 무산됐다. 한 달여 간의 투병 끝에 퇴원한 김씨는 현재 자택에서 자가격리 중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방역(생활 속 거리두기)으로의 전환을 앞둔 3일 김씨는 국민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일상에서도 충분히 감염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자각하고 경각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김씨는 자신이 코로나19에 어떻게 감염됐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지 못하겠다고 토로했다. 교환학생에 선발된 그는 지난 2월 미국으로 갔다. 김씨는 “미국에서 특별히 뭔가를 한 게 없다. 마트에 장 보러 가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헬스장에 간 게 전부”라며 “길거리 다니면서 기침하는 사람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짚이는 구석이 없다”고 했다.

3월 21일 귀국할 때도 코로나19 증상이 없었다. 그래서 체온 측정만 하고 공항 검역을 통과했다. 하지만 이틀 뒤인 23일 미국에서 함께 생활했던 한국인 친구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씨는 다음 날인 24일 아침 질병관리본부 콜센터(1339)로 전화해 검사를 요청했고, 25일 아침 보건소로부터 양성 결과를 받아 입원했다. 미국에서 같이 생활한 한국인 친구 5명 중 김씨 등 2명만 확진 판정을 받았다. 뚜렷한 감염원 없이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도 언제든, 누구나 양성 판정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이후로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낯선 감염병은 증상이 다른 질병과 확연히 달랐고, 그에 따른 불안감과 사회의 따가운 시선은 견디기 힘들었다고 한다.

증상이 나타난 건 25일 새벽 2시쯤이었다. 열감이 있고 오한이 심해 잠에서 깬 김씨는 “증상은 감기몸살과 비슷했지만 코로나19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자신이 알던 일반적인 감기몸살과 달랐기 때문이다.

김씨가 느낀 코로나19의 가장 큰 특징은 증상이 매우 변덕스럽다는 점이었다. 김씨는 “보통 감기몸살은 증상이 조금씩 심해졌다면 코로나19는 증상이 갑자기, 변덕스럽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입원 첫날에는 오한과 열감이 있다가 오한 증상이 완화되니 둘째 날 갑자기 두통이 오는 식이다. 두통도 오전 검진 때 좋아졌다가 2시간 만에 다시 극심해졌다. 두통이 좀 잦아드니 넷째 날에는 설사 증상이 나타났다.

증상만큼이나 힘든 건 불안감과 우울함이었다. 김씨는 “일주일 정도까진 괜찮았다가 2주를 넘기면서부터 기약 없는 병원 생활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해졌다”고 말했다. 두 차례 연속 검사에서 음성이 나와야 퇴원할 수 있기 때문에 검사를 할 때마다 간절한 마음이 생긴다고 한다.

병원 생활도 힘에 부쳤다. 음압병상에 입원하다 보니 창문을 열지 못했고 음압기 소리가 너무 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매일 새벽 5~6시에 검사가 이뤄져 수면의 질도 떨어졌다. 김씨는 “병원에서 먹고 자는 것밖에 안 했는데 살이 빠졌다”고 했다. 김씨는 4인 병실을 3명의 환자와 같이 썼는데 환자들은 언제까지 병원에 있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기본적으로 무력감이 팽배하다고 했다.

‘코로나19 확산에 일조한 가해자’라는 프레임은 환자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특히 자신처럼 해외유입에 가해지는 따가운 시선에 대해 김씨는 “외국에서는 한국인이어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는데 같은 나라 사람끼리도 배척하면 갈 곳이 없다”며 “확진자도 코로나19 사태의 피해자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자신의 투병기를 또박또박 말하던 김씨도 이런 시선을 우려한 듯 일상생활 복귀를 묻는 말에 말을 잘 잇지 못했다. 다음 학기 복학할 예정인 김씨는 “완치됐다 해도 (학우들이) 나를 피할 것 같기도 하고, (일상생활 복귀를) 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지난달 25일 완치 퇴원 판정이 났을 때의 감정을 “마냥 행복하진 않았다. 복합적이었다”고 회상했다. 김씨는 “공원에 사람이 많이 다니는 모습을 보면 괴리감이 느껴진다”며 “요즘 확진자가 줄어 코로나19 사태가 거의 끝났다는 축제 분위기인데 아직도 일선에선 코로나19와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김씨는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이 무력감을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자신이 겪은 코로나19 투병기를 유튜브에 게재하는 한편 코로나19 연구에 자신의 검진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연구동의서에 사인했다. 그는 “코로나19가 잔인한 건 나와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이라며 “마스크도 본인보다는 주변 사람을 보호한다는 생각으로 착용하는 등 일상에서의 감염을 막을 수 있도록 꾸준히 주의를 기울이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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