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가 일본인가, 수장고 갇힌 금동관세음상의 눈물

우정식 기자 입력 2020. 5. 2.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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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 있는 금동관세음보살좌상
국내 절도범이 쓰시마섬에서 훔쳐와
한일 소유권 두고 분쟁 계속, 수장고 갇힌 신세

“석가탄신일에도 수장고에 갇혀있는 처지가 너무 안타까울 뿐이죠. 얼마나 고국에 돌아오고 싶었으면 절도범 힘을 빌려 오게 됐을까요.”

문화재청 산하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수장고 한켠엔 8년째 빛을 보지 못한 채 보관 중인 불상이 하나 있다. 사연이 많은 높이 50.5㎝, 무게 38.6㎏ 인 금동관세음보살좌상(金銅觀世音菩薩坐像·사진)이다. 이 불상은 2012년 10월 김모씨 등 국내 문화재 절도범들이 일본 쓰시마섬(대마도) 간논지(觀音寺·관음사)에서 훔친 뒤, 국제여객선을 통해 부산을 거쳐 밀반입했다가 붙잡히면서 국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절도범들이 당시 일본 대마도 신사와 사찰에서 훔쳐온 불상 두점 중 하나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불상은 소유권을 놓고 한·일 간 논란이 계속 되면서 수장고에 머물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앞서 대검찰청은 2015년 7월 같은 절도범들이 일본 카이진 신사에서 훔쳐온 동조여래입상(8세기 통일신라시대 작품 추정)을 카이진 신사에 반환했다. 이 불상은 ‘일본에 반출된 정확한 경로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문화재청 감정 결과, 국내에서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찰이나 단체가 없는 점 등을 고려해 반환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하지만 나머지 한점인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은 일본 관음사와 충남 서산 부석사 간에 소유권 분쟁이 일면서 아직도 반환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불상이 있던 일본 관음사와 일본정부는 “1973년 일본 나가사키현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불상을 일본에 반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충남 서산 부석사 측은 불상 안에서 발견된 결연문(신도 불심을 담는 복장 기록물)을 근거로 “부석사에 있다가 왜구에게 약탈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부석사에 돌려줘야 한다”며 우리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 불상에서 발견된 결연문에는 ‘1330년경 서주에 있는 사찰에 봉안하려고 이 불상을 제작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서주는 서산의 고려시대 명칭이다.

◇1심에선 불상에서 나온 기록물 근거로 ‘부석사 소유’로 판결

법원은 1심 재판에서 불상에서 나왔다는 결연문과 역사서 등을 토대로 부석사 손을 들어줬다. 지난 2017년 1월 26일 대전지법 민사12부(재판장 문보경 부장판사)는 서산 부석사(당시 주지 원우스님)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유체동산 인도 청구소송에서 “정부는 금동관음보살좌상을 서산 부석사로 인도하라”고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일본 간논지(관음사) 주지가 1951년 발견했다는 이 불상의 복장유물을 보면 ‘천력 3년(1330년) 고려국 서주에서 32명이 시주해 보살상을 만들어 부석사에 봉안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계종도 서산 부석사가 고려 서주의 부석사라고 밝히고 있어 불상 소유주는 부석사로 보는 게 맞다”고 봤다. 또 “복장유물에는 옮겼다는 기록이 아니라 불상을 만든 사실이 기록돼 있어 이 불상이 정상적인 교류 과정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갔을 가능성은 적다”고 밝혔다.

이어 “간논지는 조선에서 악행을 저지른 왜구 집단의 우두머리 코노헤이사에몬 모리치카가 불교를 수행, 1526년 창건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불상은 화상 흔적도 있다. 부석사에 봉안했던 불상이 간논지에 존재했다는 것은 왜구에 의해 약탈당한 것으로 추측되므로 부석사 소유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 대리해 검찰이 항소…소유권은 여전히 ‘미정’

그러나 정부 측 소송대리를 맡은 검찰이 1심 판결에 불복, 항소하면서 불상의 소유권은 아직도 가려지지 않았다. 검찰은 ‘불상의 제작이나 일본으로 건너간 경위 등이 명확하지 않아 부석사의 소유권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1심 판결 후 일본은 외교채널을 통해 우리 정부에 항의의 뜻을 전하며 반환을 요구했다.

국내 일부에선 ‘이 불상을 일본에 반환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다른 문화재의 환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국제적으로 ‘한국은 훔쳐간 자국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줄 경우 반감만 키우게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한편에선 ‘정부가 한·일 양국간 외교 마찰을 우려해 불상의 최종 행선지를 결정하지 않고 시간을 끌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부석사 전 주지 원우스님은 “정부가 1심 판결 직후 항소한 것은 문화재 환수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도 모자라 일본의 눈치를 보며 돌려주려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드러냈다. 원우 스님은 “형사재판에서 진품으로 감정돼 절도범들을 처벌한 것 아니냐. 시간을 더 끌지 말고 판결을 서둘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전고법에서 진행되는 항소심 재판은 그동안 일본 측 문서 답신이 지체되는 등의 이유로 속도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 재판부 구성이 바뀌고, 검찰측 소송대리인(검사·공익법무관)도 교체되면서 최근 재판이 재개되고 있다. 선고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다.

◇검찰 “결연문 진위 밝혀야”, 부석사 신도들 “빨리 절에 모실 수 있길”

검찰은 불상에서 나왔다는 ‘결연문’의 진위 여부를 밝혀야 한다는 입장이다. 불상이 일본 관음사에 봉안돼 있던 1951년 5월 주지가 불상 안에서 발견했다는 결연문이 실제 고려말에 작성된 것인지 등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결연문이 진품이 아니라면 부석사가 소유권을 주장할 근거가 없다는 얘기다. 또 불상 제작 시기로 주장하는 때에 서주 부석사가 존재했다는 사실, 현재 부석사가 서주 부석사로부터 계속된 동일한 권리 주체임도 원고가 입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이상근 부석사불상봉안위원회 대표(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는 “1심 재판과정에서 검찰이 문화재청에 의뢰해 전문가들로 꾸린 불상 재감정조사위가 불상의 진품 여부, 유통경로, 과학적 성분 등을 조사한 결과, 부석사 소유로 보는 게 타당하다는 게 주된 의견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 측이 불상 취득사실을 제대로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며 “항소심에서 복장유물 기록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합리적 판결이 나오길 바란다”고 했다.

재판이 늦어질수록 부석사 신도들의 간절함은 더해가고 있다.

“1심 직후 불상을 절에 다시 모실 수 있다는 기대감에 눈물을 흘렸는데, 석가탄신일에도 갑갑한 수장고에 있으니 너무 안타깝죠.”

부석사 신도 강문순(여·58)씨는 “신도와 지역주민들은 좋은 결과가 나와 불상을 절에 모실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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