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만에 '무덤'서 나온 김정은..사망설 키운 인포데믹(종합)
탈북민 출신 국회의원 당선인도 미확인 주장으로 혼란 키워
"가짜 뉴스가 안보 불안을 야기하고 불필요한 비용 초래하는 관계 끊어야"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기자 = '무덤 속에서 살아돌아온 김정은?'
지난 20일간 건강이상설부터 사망설까지 퍼지며 한국은 물론 미국과 일본, 중국 등 국제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누군가 주장하듯 혼자서 걷지 못하는 심각한 상태도 아니었고, 이미 숨을 거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2일 조선중앙방송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전날 노동절에 평안남도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직접 준공 테이프를 끊었고 공장을 둘러보기도 했다.
환호하는 주민들에게 '손을 저어 답례'하고 간부들에겐 공장의 운영 등에 대해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이로써 김 위원장은 겨우 20일간의 은둔 기간 전 세계를 뒤흔든 자신의 '사망' 또는 '건강이상'에 관한 온갖 가짜 뉴스를 한방에 눌러버린 셈이 됐다.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에 이은 사망설은 그가 2012년 공식 집권 이후 매년 해왔던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생일(4월 15일) 기념 금수산태양궁전 참배를 하지 않으면서 발단이 됐다.
참배 불참 이유는 확인되지 않지만, 집권 8년째 국정운영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너19) 사태로 자제하려 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실 참배할지 말지는 절대 권력자인 김정은 위원장의 '내 마음 내키는 대로'라고 할 수 있는 사안이다.
30대 중반임에도 지나친 비만과 심장병 등 가족의 유전적 병명으로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은 언제든 불거질 수 있는 이슈였지만, 이번 사태는 한마디로 악성 소문이나 왜곡된 정보가 전염병처럼 퍼지는 현상을 뜻하는 '인포데믹'의 산물이었다.
김 위원장 건강이상설의 시작은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이 지난달 17일 오후 언론에 보낸 분석자료에서 "김 위원장 건강이나 신변에 적어도 일시적으로나마 이상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면서부터다.
정 센터장의 이런 '추측'은 탈북자 사회로 흘러갔고, 이는 검증되지 않은 '내부 소식통' 등을 내세운 탈북민과 보수 매체, 보수 유튜버들의 '확신'으로 이어지며 나비효과를 낳았다.
국내 보수 성향의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는 지난달 20일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12일 평안북도 묘향산 지구의 향산진료소에서 심혈관 시술을 받고 향산특각에서 치료 중"이라고 주장했다.
탈북민 출신인 지성호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당선인은 지난달 21일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사실이다. 김 위원장이 다시 복귀하기 어려우며 현재는 섭정 체제에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 1일에는 "김 위원장의 사망을 99% 확신한다"며 "김 위원장이 심혈관질환 수술 후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싶었는데 지난 주말에 사망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주장했고, 이 발언은 온종일 한국 언론에 실리며 뉴스포털의 앞자리를 차지했다.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 출신 탈북민인 미래통합당 태영호 당선인도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과 인터뷰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김 위원장이 스스로 일어서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탈북민 네트워크에서는 김정은 사망으로 북한 지도부가 지난달 28일부터 5월 20일까지 선양 국제열차를 중단한다고 중국 측에 통보했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온갖 주장이 난무했다.
이는 유튜버들과 보수매체 네트워크로 전파되며 '온전한 팩트'로 변조됐다.
보수 유튜버들은 중국의 북부군구의 전차부대가 김 위원장 사망으로 단둥에 집결했다거나, 대만의 정보국장 추궈정(邱國正)이 김정은의 아픈 상태를 확인하고 비상계획 마련 중이라는 등 가짜뉴스를 퍼뜨렸다.
심지어 윤상현(무소속) 국회 외교통일위원장도 지난달 21일 "북한에 정통한 사람들(에게서 들어)보면"이라면서 "(김정은이) 심혈관 질환에 대해 수술을 하는 건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 북한 권력에 대한 기초 정보와 실상에 어두운 외신들에 의해 '대북소식통'을 가장한 탈북민들의 주장은 '신빙성 있는 사실'로 둔갑했고, 이는 탈북민과 보수매체의 주장이 사실인 양 뒷받침하는 '근거'가 됐다.
결국 인포데믹은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 등으로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고 돌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하루에도 몇번씩 '죽기 직전의 병자'와 '고인'으로 만들었고 분단을 마주하고 있는 한국사회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한국 정부가 김정은의 건강이상설과 사망설을 일축하며 "특이동향 없다"고 밝히고, 심지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관련 정보를 종합해 '특이동향 없음'이라는 권위를 실은 결론을 내렸음에도 인포데믹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런데도 북한은 20일 내내 반응하지 않은 채 김정은 위원장의 건재와 정상적인 국정운영을 우회적으로 알리는 스텐스를 유지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모범 주민에게 감사를 보냈거나 외국 수반과 주고받은 축전을 전했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전날 '전체 근로자들이여, 영웅적 투쟁역사와 전통을 빛내이며 정면돌파전의 진격로를 힘차게 열어나가자'라는 제목의 노동절 기념 사설에서 김정은 위원장만을 믿고 따르자고 독려했다.
과거에도 북한은 외부에서 최고지도자를 비난한데 대해서는 즉각 반발하며 격한 반응을 보인 것과 달리 사망이나 건강이상설에 대해서만큼은 대응하지 않은 채 무시하는 태도를 유지했다.
그리고 마침내 김정은 위원장은 노동절에 북한 주민의 식량 문제 해결에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고 할 수 있는 비료생산을 위해 새로 건설한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등장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 속에서 북한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고 모임과 행사를 자제하는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 역시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만 공개활동을 이어가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은 자신의 신상에 관한 한국과 국제사회의 가짜뉴스에 일일이 대응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며 "오히려 무시한 채 국정운영 일정에 따라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또 "가짜 뉴스가 우리의 안보 불안을 야기하고 불필요한 비용과 노력의 소모를 초래하는 관계를 끊어야 한다"며 "탈북민들은 물론 한국 정부의 발표를 경시하고 확대 재생산 하는 미국, 일본, 국내 일부 언론인들도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태 당선인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에 대한 자신의 주장이 "다소 빗나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카트를 근거로 "저의 의문은 말끔히 지워지지가 않았다"며 또다른 의혹을 제기했다.
부지가 넓은 공장을 둘러보기 위해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카트를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와병 중에 사용했단 이유를 들어 여전히 건강이상을 고집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지 당선인 역시 "김정은의 건강에 문제가 없는지 속단하지 말고 좀 더 지켜보자"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지 당선인이 김 위원장의 사망을 이야기할 때 속단하지 말고 신중했어야는거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chs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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