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불매운동 맞은 넥슨이 '돈슨' 오명 벗으려면

‘돈슨(돈+넥슨)’이란 멸칭(蔑稱)은 언제쯤 사라질까. 이정헌 넥슨 대표는 사업본부장을 맡던 2014년, 국내 최대 게임쇼 지스타(G-Star) 슬로건으로 ‘돈슨의 역습’을 내세웠다. "더 이상 돈슨이라 불리지 않겠다"는 의지라고 했다. 이 대표는 넥슨 경영을 총괄하게 된 2018년에는 "현 비즈니스모델로 천년만년 실적을 낼 수는 없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대표의 선언에도 ‘탈(脫) 돈슨’은 지난하다. 최근 넥슨 피파(FIFA) 온라인4에선 거센 불매운동이 일었다. 피파온라인4는 실존 선수로 팀을 구성해 대전하는 축구 게임이다. 좋은 선수 카드는 유료 결제로 무작위 등장한다. 선수 카드는 게임 내 재화로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다. 게임 내 유행과 인기, 성능에 따라 카드 값이 시시각각 변한다.
발단은 넥슨이 3월 26일 발매한 ‘LH’ 등급 카드다. LH 등급 선수는 직전까지 판매했던 한정판 ‘2020TOTY(올해의 팀)’ 선수보다 능력치가 확연히 좋았다. 올해의 팀 선수를 뽑기 위해 많게는 수백·수천만원을 결제했던 게이머들은 순식간에 ‘자산가치 하락’을 겪게 됐다. 정부가 화폐를 찍어내면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듯, 운영사가 아이템을 찍어내 게임 내 경제에 혼란이 온 것이다.
게이머들은 분노했다. 넥슨이 콘텐츠 업데이트와 버그 수정은 등한시하고, 유료 아이템 판매에만 열을 올린다는 반발이다. ‘유명인사’인 스트리머·프로게이머들도 불매운동에 동참했다. 한달여가 지난 4월 24일, 넥슨은 사업실장 명의 공식 사과와 개선 약속을 내놨지만 여론은 쉬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넥슨은 온라인 게임 표준 과금 방식으로 자리잡은 ‘부분유료화’를 세계 최초로 도입한 회사다. 부분유료화는 게임 플레이를 무료 제공하고 유료 아이템으로 수익을 거두는 방식이다. 부분유료화는 게임성을 해친다. 수익을 높이기 위해선 더 강하고 비싼 아이템을 팔아야 한다. 뽑기 형식 ‘확률형 아이템’을 도입하면 수익성은 더 높아진다. 돈이 승패를 가를 때 게임의 본질적 재미는 사라진다. 수익성과 게임성간 균형을 맞춰, 게임 내 건전한 생태계를 유지하는 것이 ‘운영의 묘’다.
부분유료화 도입 배경엔 ‘게임은 공짜’라는 소비자 인식이 있었다. 불법 다운로드 성행으로 국내 패키지 게임은 괴멸했다. 게임업체도 회사다. 수익 없인 제작도, 운영도 불가능하다. 20여년 전 부분유료화 탄생은 접근성을 높이면서도 수익을 거두려는 고민에서 나온 고육지책(苦肉之策)에 가까웠다.
2020년의 넥슨은 이용자를 호구(虎口)삼아 호구지책(糊口之策)을 마련해야 할 만큼 어려운 회사가 아니다. 지난해 일본 증시에 상장된 넥슨 영업이익은 1조208억원, 매출은 2조6840억원이었다. 영업이익률이 38%를 넘어선다. ‘3N’으로 묶이는 경쟁사 엔씨소프트의 36.4%, 넷마블의 9.6%보다도 높다.
피파온라인4 불매운동은 수익성이 게임을 잡아먹은 대표적인 ‘운영실패’ 사례다. 최근 넥슨은 피파온라인4뿐 아니라 다른 게임에서도 이상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올해 첫 신작 ‘카운터사이드’는 미흡한 운영과 구매 유도로 이용자가 빠르게 감소하는 중이다. 과금 유도가 적어 호평받던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은 이용자 간담회를 연지 4개월만에 운영 종료를 알렸다.
넥슨은 지난해 매각 시도와 구조조정 파문을 겪었다. 사기가 떨어지고 분위기가 뒤숭숭할 만 하다. 최근 혼란스러운 모습도 정상화 과정에서 일어난 마찰로 생각할 수 있다. 진정 우려되는 점은 넥슨 창립자인 김정주 NXC 대표의 침묵이다.
김 대표는 넥슨 경영에서 물러나 있다. 그는 지난해 넥슨 매각을 추진하던 시기, 넥슨 지주사 NXC를 통해 해외 명품 패딩업체 지분을 640억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유모차 회사 스토케, 레고 거래사이트 브릭링크 인수에 이은 또 다른 ‘외도’다. 업계 안팎에선 "김 대표가 게임 사업에 뜻을 잃고 취미에 몰두하고 있다"는 말이 돈다.
지난해 게임업계는 WHO(세계보건기구) 게임중독 질병코드 등록에 맞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게임이 질병이 아닌, 문화임을 주장하려면 사행성이란 걸림돌을 넘어서야 한다. 기업이 눈앞의 수익을 포기하고 ‘작품’을 만들기 위해선 경영진 결단이 필요하다. 전문경영인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넥슨이 게이머들의 사랑을 되찾고, ‘돈슨’이란 오명을 벗기 위해선 오너인 김 대표가 나서야 한다. 그것이 조 단위 부(富)를 거머쥐게 해준 게임에 대한 김 대표의 사회적 책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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