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24/7] "사법처리 전 대화부터"..학폭·층간소음 갈등도 풀렸다
응징·처벌보다 치유와 화해 방점
작년 4월부터 시범운영 88% 조정
당사자간 만족도도 84%로 높아
올 총 142개 경찰서에서 확대운영


전문가의 진행으로 시작된 대화모임에서 60대 남성인 피해자는 먼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자신은 병든 아내와 둘이 살고 있는데 오래전부터 학생들이 벨을 누르고 도망가면서 부부 모두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로 인해 아내는 병이 악화돼 정신과 치료까지 병행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별것 아닌 장난에 경찰에 신고까지 했다면서 투덜거리던 가해자와 학부모들은 순간 숙연해졌다. 피해자의 사연에 일부 학생들은 얼굴을 들지 못하고 눈물까지 보였다. 자신들의 장난이 피해자에게 큰 고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며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피해자는 학생들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학생들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강력히 피력해 사건은 내사종결 처리됐다. 경찰이 지난해 시범 도입한 ‘회복적 경찰활동’이 성과를 거둔 순간이었다.
가해자 처벌에 집중하는 ‘응보주의적’ 사법체계를 뛰어넘어 피해자의 상처를 회복하고 당사자들의 화해에 초점을 두는 ‘회복적 사법’은 그리 낯선 개념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검찰 단계에서 ‘형사조정제도’와 법원 단계에서 ‘화해권고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회복적 경찰활동은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 전 경찰 단계에서 사건관계자들 간 대화를 유도해 해결책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심보영 경찰청 피해자보호기획계장은 “검찰·법원 단계까지 진행돼 형사절차가 장기화되면 피해자는 2차 피해에 노출될 수 있고 가해자에 대한 부정적 낙인효과도 심화될 수 있다”며 “회복적 경찰활동은 사법처리 단계로 가기 전 사건 초기에 당사자 간 대화를 통해 문제 해결을 도모하기 때문에 가해자의 진정한 반성과 피해자의 실질적 회복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회복적 경찰활동은 특히 학교폭력 사건에서 빛을 발했다. 지난해 운동장에서 공놀이를 하다가 시비가 붙어 고등학교 2학년 후배가 고3 선배를 구타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사건발생 직후 관할 경찰서 SPO는 회복적 경찰활동 제도를 소개했고 두 학생은 모두 대화모임에 성실히 참여했다. 가해자는 학교에서 피해자를 형이라고 부르기로 했고 폭행 피해에 대한 치료비를 보상한다는 내용 등으로 약속이행문을 작성했다. 처음 고소까지 생각했던 피해자 부모는 대화결과에 만족해 사건은 별도 접수되지 않고 마무리됐다.
이 밖에 존속폭행, 모욕·명예훼손, 층간소음 분쟁에서도 다수 중재가 이뤄졌다. 이처럼 성과가 좋아 올 상반기까지 95개 경찰서가, 하반기에는 추가로 47개서가 참여해 올해 총 142개 경찰서가 회복적 경찰활동을 본격 운영할 계획이다. 회복적 사법의 필요성을 주장해 온 임수희 천안지원 부장판사는 “지역 사회 내에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경찰 단계의 회복적 사법은 반드시 필요하고 또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경찰이 모든 사건에 회복적 경찰활동을 적용하는 것은 아니다. 2차 피해가 예상돼 가·피해자 대면이 바람직하지 않거나 피해자가 금전적 배상만 요구하는 경우, 가해자가 처벌 감경에만 관심이 있는 경우는 배제한다. 가해자가 가정폭력·성폭력 등에서 동종 전과가 있는 경우도 진행하지 않는다.
경찰 측은 회복적 경찰활동이 지금보다 더 사법체계에서 실질적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되기를 바라고 있다. 심 계장은 “경찰서장 권한으로 훈방이 이뤄지기는 하지만 명문화된 경찰의 훈방권이 없어 현장에서 이를 유연하게 적용하기 힘든 편”이라며 “영국처럼 경미한 사건의 경우 훈방 조치를 할 수 있는 권한이 법적으로 마련된다면 회복적 경찰활동이 더 활성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동훈기자 hoon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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