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카메라] 경의선 공유지 갈등..'숲길' 옆 밀려나는 사람들

이선화 기자 2020. 4. 20.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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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서울 마포구 한복판에 빈 공터가 있습니다. 최근 5년 사이 이곳엔 장사를 하는 사람부터 생활을 하는 사람까지 수십여 명이 자리를 잡았는데요. 관할 구청에선 이번 달 안으로 짐을 빼지 않으면 강제로 철거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밀착카메라 이선화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서울 공덕역 인근 경의선 숲길입니다.

고층 건물과 신축 아파트 단지 사이로 산책로가 조성돼있습니다.

그런데 숲길을 따라가보면 이질적인 풍경이 펼쳐집니다.

[강찬주/주민 : 주민들 왔다 갔다 공원 산책하고 주로 그런 것 같던데. 안 들어가 봤어요.]

[이마린/인근 직장인 : 가끔 바자회 하시고 그러시던데 상인분들 계시고 그런 거로만 알고 있어요. 남들이 보기에 저긴 뭐 하는 곳인지 모르겠는…]

산책로가 끝나가는 곳엔 이렇게 화단이 나오고 안쪽으로 분리된 공간이 나옵니다.

들여다보면요, 누군가 사용한 것 같은 우산이 놓여있고 수납장도 보입니다.

그리고 뒤쪽으로는 나무 합판으로 만든, 임시로 만든 것 같은 가림막도 설치가 되어있습니다.

어떤 공간일지 앞으로 가보겠습니다.

이 뒤쪽이 입구인 것 같은데요.

이렇게 나무 가림막 앞에는 경고문 두 개가 나란히 붙어있습니다.

각각 마포구청이랑 철도시설관리공단에서 붙인 건데, 노란 경고문을 보면 이곳을 무단으로 점유할 경우 처벌을 받게 된다고 적혀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컨테이너와 천막들이 설치돼있습니다.

장사를 하는 상인도 보입니다.

이 공터는 지난 2012년 생겼습니다.

경의선 철길 마포 구간이 지하화되면서 빈 땅이 된 겁니다.

[마포구청 : 원래 그 부지는 철도(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가지고 있는 역사, 복합역사 개발 부지예요.]

구청에선 개발 인허가가 날 때까지 협동조합에게 시민장터로 활용하라며 2015년까지 무상으로 임대해줬습니다.

그런데 임대 기간이 끝나고, 시민단체가 이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김성은/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 활동가 : 철도가 다니지 않고 이 부지가 빈 공간으로 남겨진다면 그전에 있었던 시민들의 땅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느냐.]

국유지를 투기적인 목적으로 개발하는 데 저항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겁니다.

이곳을 찾은 시민들의 의견은 엇갈립니다.

[차동민/주민 : 사람 냄새나는 것 같아서 좋아하시는 분도 계실 것 같아요.]

[김경자/주민 : 길에 비해서 좀 지저분해. 그래서 좀 절도 있게, 깨끗하게 그렇게 좀 했으면 좋겠어요.]

설치된 건축물들은 모두 허가를 받지 않았지만, 자리를 잡는 사람들은 늘어만 갔습니다.

대부분 재개발로 집과 일터를 잃은 사람들입니다.

서울 행당동에 살던 이희성 씨는 재개발 과정에서 강제 퇴거를 거부하다가 쫓겨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등록도 말소됐습니다.

[이희성/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 활동가 : 태어나서 네 번 쫓겨나게 돼요. 한 번 쫓겨나게 된 사람들은 계속 쫓겨나게 되더라고요. 더 계속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고요. 과연 국가 개발 정책으로 세입자들을 무조건 내쫓는 게 정당한가.]

주거권 보장을 요구하면서 공유지에서 생활했지만, 소송이 들어오면서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됐습니다.

이 공간을 비워줘야 해서 지금 이삿짐을 싸고 있는 건데요.

우선 컨테이너는 둔 채, 5년 동안 생활했던 짐을 이렇게 트럭에 쌓아 두고 있습니다.

공유지를 점유한 단체는 이런 개발로 혜택을 보는 건 부동산을 가진 극소수의 사람들이라고 지적합니다.

[정기황/문화도시연구소장 : 유동인구도 많고 도시 중심 공간이니 상업적 개발을 해서 '비싸게 팔아야 된다'가 논리인 건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렇게 유동인구가 많고 교통이 좋은 곳은 시민들이 접근하기도 굉장히 좋은 곳이죠.]

결국 가난한 사람들은 도시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고도 말합니다.

[정기황/문화도시연구소장 : 시민들이 이런 문제가 있을 때 사실은 뭐라고 얘기할 수 있는 데가 아무것도 없고. 잘못됐어도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걸 그냥 방치해둘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경의선 숲길이 조성된 지난 2016년을 기준으로, 일대 지가지수는 서울 다른 지역에 비해 가파르게 상승했습니다.

컨테이너와 천막들이 사라지게 될 이곳엔 계획대로라면 상업시설이 들어설 예정입니다.

공단과 구청에서 통보한 자진 철거 기한은 이번 달 말까지입니다.

(출처 : 서울대 아시아도시사회센터)
(VJ : 최진 / 인턴기자 : 정상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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