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는 뭘 해도 너무 늦다"
[한겨레21] 재난특별구역 지정되고 1조2370억원 자금 쓸 수 있지만, ‘긴급’하게 지급되지 않은 이유
“우리 대구시는 그동안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재난안전대책본부를 중심으로 대응체계를 만들어왔습니다. 앞으로 관계 기관과 함께 대구시가 가진 모든 역량을 모아 대책을 마련하고 대응해나가겠습니다.”
민방위복인 노란 점퍼를 입은 권영진 대구시장이 시민 앞에 섰다. 2월18일 오전, 중앙방역대책본부가 대구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31번 확진자)가 생겼다고 발표한 직후였다. 즉각 대구시 재난안전대책본부와 중앙방역대책본부 현장대응팀이 함께 역학조사에 들어갔다. 이튿날 대구시는 시정을 ‘코로나19 대응 비상체제’로 전환하며, 필수 업무를 제외한 모든 공무원을 코로나19 대응에 투입했다.
자영업자·소상공인 대책 집중
그러나 지역사회 감염 속도는 “대구시가 그동안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만들어온 대응체계”와 “대구시가 가진 모든 역량”을 넘어섰다. 하루 23명, 70명, 141명, 297명, 514명. 유독 전파가 잘되는 감염증이 유독 감염에 취약한 신천지교회, 임대아파트, 요양병원 등 집단생활시설을 고리로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대구시는 추가 감염원 차단과 피해 최소화에 매달렸다. 초기 결과는 실패였다. 메르스 사태를 직접 겪지 않았던 대구시는 신천지교회로부터 교육생을 포함한 교인 명단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방역 사각지대를 키웠고, 부족한 병상을 제때 만들어내지 못해 집에서 사망한 확진자도 나왔다. “준비되지 않고 인프라(기반시설)도 없는 지자체와 훈련되지 않은 중앙정부가 결합해 31번째 확진자가 발생한 뒤 초기 일주일~열흘을 흘려보낸”(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 제1304호 대담 참조) 시간이 ‘확진자 6823명-사망자 151명’(4월15일 기준)의 참담한 결과를 만들어낸 결정적 원인이 됐다.
코로나19와의 ‘방역 전쟁’이 길어질수록 시민들은 ‘생존 전쟁’에 내몰렸다. 일감이 끊긴 일용직 노동자, 손님이 없어 개점휴업 상태인 자영업자, 무급휴직을 해야 하는 노동자, 휴교·휴원으로 일터가 사라진 프리랜서 교사와 강사. 소득이 낮거나 불안정하고, 사회안전망이 느슨한 취약계층부터 직격탄을 맞았다. 권영진 시장이 대구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시민들의 ‘긴급생계자금’을 요청(2월25일)하고, 국회·청와대·행정안전부를 방문(3월12일)해 1조원대 경제적 지원을 촉구한 배경이다.
멈춰선 대구 경제를 다시 일으키려는 대책은 정부의 ‘대구·경북 특별재난지역’ 지정(3월15일)과 국회의 추경예산안 통과(3월17일)를 계기로 본격화했다. 국회 추경으로 마련한 정부 예산 1조4200억원에 대구시가 세출 구조조정 등으로 스스로 마련한 3270억원이 보태졌다.
1조7470억원 가운데 대구시가 쓸 수 있는 돈은 1조2370억원(71%)이었다. 나머지 5100억원은 중앙정부가 소상공인·중소기업 등에 직접 금융지원을 했다. 대구시 역시 자영업자를 비롯한 소상공인 대책에 집중했다. ‘자영업의 도시’ 대구에 자영업 대책은 곧 서민경제 대책이다. 먼저 소상공인·중소기업 금융지원(긴급경영안정자금)에 190억원을 추가 투입했다. 코로나19로 매출이나 영업이익이 10% 이상 줄어든 소상공인이 빌린 돈(최대 소상공인 1억원, 기업 10억원)에 1년간 1.7~2.2% 이자를 지원해주는 식이다. 소상공인이 금융기관에서 돈을 잘 빌릴 수 있도록 신용보증재단의 보증 규모를 확대하고 절차도 간소화했다.
서울이라면 지원받았을 텐데…
물론 당장 직원 인건비나 임대료가 필요한 ‘사장님들’에게는 더딘 대출 속도, 불충분한 규모, 엄격한 대출 조건(숙박·음식점 등은 5명 미만)은 아쉽기만 하다. 대구시 경제정책관 관계자는 “평소 대출을 신청해서 받는 데까지 2주 정도 걸리는데, 코로나19 이후 일감이 10배 이상 폭주해 초기에는 4주 걸렸다. 지금은 3주 정도 걸리고, 조금씩 (지연 시간을) 줄여가고 있다”며 “시도별 재원에 따라 보통 2년간 이자 지원을 해주는데, 대구시는 예산이 풍족하지 못해 1년간 지원한다”고 말했다.
하루를 버티기 어려운 자영업자를 위해 직접 지원하기도 한다. 100만원씩 지급되는 ‘소상공인 긴급생존자금’이다. 1960억원이 편성돼, 대구 지역 소상공인 18만4천 명 대부분이 현금을 받을 것으로 대구시는 예상한다.
직종과 상관없이 중간계층을 지원하는 ‘긴급생계자금’은 대구시가 자체적으로 공들여 마련한 대책이다. 기초생활·긴급복지지원·실업급여 수급자 등 취약계층과 중산층을 제외한 가구(중위소득 100% 이하 가구)에 세대원 수에 따라 50만~90만원을 선불카드와 온누리상품권으로 지급한다. “중위소득 75% 또는 85%까지만 주자는 의견, 보편적으로 모두 주자는 의견 등 다양하게 나왔으나 예산 가용 범위 내에서, 당초 아무런 지원을 못 받는 분들에게 긴급생활비를 지원하려는 취지”(대구시 혁신성장정책과 관계자)에 따라 대상자 기준이 정해졌다. 서울시, 인천, 경상남도 등과 비슷한 수준이다. 전체 108만 가구 중 46만 가구에 총 2926억원이 돌아간다.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절반 이상의 가구는 누구일까. 코로나19 이후 김연주(29·가명)씨네 네 가족의 소득은, 연주씨의 실업급여 160만원이 전부다. 농사짓는 부모님은 농산물 판로가 막혔고, 대학을 갓 졸업한 동생은 직장은커녕 아르바이트도 구하지 못했다. 계약 만료로 일자리를 잃은 비정규직 노동자 연주씨는 구직 중이지만 면접 볼 기회도 없다. 당연히 긴급생계자금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며 주민센터에 문의했지만 “실업급여를 받는 세대원이 있어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서울이었다면, 아르바이트에서 잘린 동생이라도 개인적으로 지원(신속 청년수당)받을 수 있었을 텐데…. 대구시에는 개인별 지원 사업이 없어 제가 실업급여를 받는 게 괜히 미안해요.”
노동자를 위한 대구시 대책도 정부 대책보다 다소 강화되긴 했다. 하루 2만5천원씩 최대 2개월 받는 무급휴직자 기준은 ‘5명 미만 사업장 근무’에서 ‘100명 미만 사업장 근무’로 확대했고, 학원강사와 학습지 교사 등 특수형태근로종사자·프리랜서의 경우 소득 기준을 아예 없앴다. 여기에도 사각지대는 넓다.
부시장은 4·15 총선 출마
문화공연을 하는 박지영(가명)씨는 3~4월 소득이 ‘0’이었지만 지원 역시 ‘0’이다. 자유롭게 공연하며 출연료를 받아온 프리랜서에 가깝지만, 학원이나 문화센터 등에 용역을 제공했다는 서류가 있어야 프리랜서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프리랜서 지원금도 못 받고, 자영업자가 아니라 생존자금도 못 받고, 지역가입자 건강보험료를 기준보다 조금 넘겨 긴급생계자금도 못 받아요.” 대구시의 고군분투에도 시민들이 아쉬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운이 좋아 지원 대상이 돼도, 당장 지원금을 손에 쥐기 어렵다. 재난의 한복판인데, 예산 집행은 더딘 편이다. 대구시는 애초 공무원들의 선거 업무를 고려해 긴급생계자금을 총선 다음날인 4월16일부터 지급하려다 ‘늦장 대응’ 논란이 일자, ‘4월10일 지급’으로 일정을 앞당겼다. 대전시(4월13일 지급)보다는 빠르지만, 서울시(4월1일 지급)보다는 느리다.
이외에 파견 의료진에 대한 근무수당·숙식비 체불(4월7일), 도시락 납품·방역 업체에 대금 미지급(4월8일), 저소득층 소비쿠폰 늦장 지급(4월10일) 등의 논란도 지역언론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됐다. 대구시는 “파견 의료기관의 서류 제출이 늦어서” “감염병 전담병원 운영 지원은 국가 부담이라서” “선불카드 제작 업체의 신뢰도에 문제가 있어서”라고 해명하면서도, 즉각 예산을 집행해 문제를 해결했다. 또 예산의 투명하고 공정한 집행을 위해 대구시와 시민사회 등이 참여하는 긴급지원심의위원회(총 7명)를 구성하겠다는 약속(3월18일)은, 한 달이 지난 4월 중순에나 이뤄질 예정이다.
시민사회에선 한발 늦은 대응의 원인을 ‘1당 독점 장기화’에서 찾는다. “워낙 오랫동안 한 당(보수 정당)이 (시정과 시의회를) 집권하다보니 현장 공무원들의 긴장감이 떨어지고 관료주의가 팽배해, 이번처럼 갑작스러운 사태를 맞아 전혀 능동적인 행정력이 발휘되지 못했다.” 강금수 대구참여연대 사무처장의 비판이다.
“그나마 일을 잘하던 행정부시장의 4·15 총선 출마로 인한 행정 공백이 컸다” “주도적으로 시정을 이끌어온 권영진 시장의 개인기가 평소에는 장점이었으나 (재난 시기에는) 단점으로 작용했다” “시장과 그가 속한 미래통합당이 의견 일치가 안 될 정도로 지역 거버넌스(관리의 다원화)가 작동되지 않았다”는 평가도 지역 정치인들 사이에서 나온다.
부족한 시스템도 재난 상황에서 대구시 발목을 잡았다. “지역화폐나 사회적경제가 사회주의라고 생각하는 공무원들이 있을 정도”(정연우 대구시 남구 의원)로 시정이 새로운 제도를 받아들이는 데 보수적인 편이다. 여러 광역지자체는 기존 지역사랑상품권 등 지역화폐를 활용해 긴급재난지원금 지원 체계를 마련했으나, 대구시에는 지역화폐가 없다. 대구사랑상품권을 만드는 조례가 3월에야 공표됐다. “지역상품권 조례만 있었어도, 선불카드를 만드는 비용(26억원)을 아끼면서 (카드 제작 기간 없이) 속도감 있게 정책도 추진할 수 있었을 텐데…. 아직도 학교 무상급식이 전면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대구시는 뭘 해도 너무 늦다”(강금수 사무처장)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복지제도를 대폭 개편하는 계기로
“모든 시청 조직을 다 흐트러뜨려, 경제와 복지를 담당하는 공무원까지 생활치료센터 등으로 파견해 현장을 챙기게 했던 사상 초유의 비상사태”(정해용 대구시 정무특별보좌관)에서는, 어쩌면 대구가 아닌 어떤 지방정부도 방역과 경제 대책을 모두 완벽하게 해내기란 불가능할지 모른다. 충격에 취약한 서비스업 중심 경제구조, 워낙 낮은 재정자립도, 위기시 부족한 정부 재정 지원 등도 대구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구시가 처음 맞는 사태라 허둥지둥했는데 누구든 그보다 잘할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어요. 정부가 빨리 지원해서 예상보다 빨리 틀이 잡혔어요. 이번 기회에 우리 복지제도를 대폭 개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마저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을) 다 주자고 하는 마당이잖아요.” 김윤상 경북대 명예교수(행정학부) 말처럼, 복지 확대에 보수적이던 대구가 앞으로 보편복지의 성지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전대미문의 재난을 맞아 전대미문의 길을 가고 있으므로.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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