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人터뷰] 靑 떠난 대통령의 입, 이제는 여의도 바라본다
주변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많다. 언론계에도 상처받은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 어설픈 위로의 말을 건넸다가 그들의 눈에서 분노의 불꽃이 튀는 것을 몇 번 본 뒤로 위로의 말은 접기로 했다. 짐작하는 것보다 그 사람들의 상처가 훨씬 깊고 크다. 그런 상처는 시간이 흐른다고 아물지도, 잊혀 지지도 않는다.
김의겸도 상처가 깊은 사람이다.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김의겸은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고 인생의 정점에서 추락했다. 청와대를 나온 뒤에 그는 약 8개월의 은둔의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사람 만나기 두려워서 산을 다니는 것으로 흐르지 않는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그 시간을 떠올리는 것 자체를 한사코 피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지난 연말 몇몇 방송사 시사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을 때 개인적으로 반가웠다. 그의 안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몇 년을 자숙해도 모자랄 판에 벌써 나돌아다니느냐고, 자신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대통령의 입으로 일하던 사람이 투기 의혹을 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모르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참으로 뻔뻔한 사람이라는 기명 칼럼도 있었다.
방송에 나온 김의겸은 마음의 응어리, 치욕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의 상처가 8개월의 시간을 통해 조금도 아물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가슴에 더 깊고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 상처에 분노까지 더해져 있었다. 8개월은 자숙의 시간이라기보다 분노를 키우는 시간이었던 거 같다. 사람은 결국 그의 마지막 모습으로 기억되는 것인데 만약 이대로 사라진다면 자신은 부동산 투기꾼이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함을 그는 숨기지 못했다. 자신이 저지른 과오보다 훨씬 가혹하게 공격당했고 이는 부당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김의겸이 방송에 얼굴을 내밀 때 사람들은 다 알았다. 4·15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명예를 회복하려고 하는구나, 분노와 상처를 불쏘시개 삼아 남은 인생을 살려고 한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문제가 되었던 흑석동 부동산을 팔겠다, 차익은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말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는 심정이 착잡했다.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다. 어려운 일을 당하면 사람들은 조급해진다. 김의겸에게 은둔의 8개월이 8년보다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사람들에겐 어제의 일처럼 보이는데도 말이다.
방송을 통해 '나의 은둔은 이것으로 끝입니다'라고 선언한 뒤 며칠 후에 그는 전북도청 기자실에서 군산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운동회에서 넘어진 아이에게 흙먼지 털어주면서 다시 한번 뛸 기회를 달라고 고향 유권자들에게 호소한 것이다. 그의 모습이 당당해 보였던 것은 아니다. 결국 이런 길을 가는구나 싶었다. 그가 한겨레신문사를 나와 청와대 대변인으로 갈 때 이미 정해진 길이기도 했다. 8개월의 은둔과 3억 원 남짓한 부동산 수익의 환원과 짧은 반성의 반복이면 그의 출마는 허용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민주당은 그의 출마를 허용할지 여부를 두고 격론을 벌였다. 그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은 그를 두 번 죽이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의 출마를 허용하면 현 정부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부동산 투기와의 싸움에 빈틈을 보이는 것이라는 반론이 팽팽히 맞섰다. 민주당 후보 검증위원회는 최종 결정을 세 번이나 미뤘다. 결정이 한 번 미뤄질 때마다 김의겸은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을 것이다. 민주당의 결정을 기다리는 시간이 8개월의 은둔의 시간보다 더 길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대통령의 입이었던 그가 총선 출마라는 결정을 혼자 했을 리 없다. 그에게 출마를 통한 명예 회복을 권고한 여권 인사가 한둘이 아니었다. 출마는 당신의 선택이 아니라 당신이 감당해야 할 의무라고 강권한 사람인들 없었을까. 공천은 걱정할 것 없다고, 내가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랬던 사람들이 반발 여론이 불자 내가 언제 그런 소리 했느냐고 김의겸을 외면했다. 최종 결정이 미뤄지자 김의겸은 이해찬 대표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예비 후보로 뛸 수 있는 기회라도 한 번 달라"고 그는 읍소했다. 그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응답은 없었다.
선거를 앞둔 정당이 고려할 것이란 승리뿐이다. 인간적 배려나 약속은 사치일 뿐이다. 민주당에게 그를 배려할 여유는 없었다. 민주당은 결정을 미루고 미뤘다. 스스로 알아서 결정하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민주당이 세 번째로 결정을 미루자 김의겸은 그제서야 백기를 들었다. 2월 3일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제는 멈춰 설 시간입니다." 지난해 12월 19일 총선 출마를 선언한 지 46일 만이었다. 청와대 대변인 사퇴가 첫 번째 처형이라면 출마 포기 선언은 두 번째 처형이었다. 같은 잘못으로 두 번 교수형을 당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호의적인 지역구 여론을 생각하면 무소속 출마라도 감행할 법도 했지만 그는 백기를 들었다. 누구는 그런 그를 두고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 듣느냐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사람이 한 번 칼을 뽑았으면 승부를 봐야지 그렇게 쉽게 포기하느냐고, 그렇게 나약한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는 그때까지는 멈춰서야 할 때를 아는 것처럼 보였다.
3월 20일 그는 열린민주당에 입당했다. 정봉주, 손혜원 등이 주도하는 범여권 비례 전용 정당에 그는 막바지로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기원하며 고통스러운 선택을 했던 그가 더불어 민주당을 탈당한 것은 의외였다. 후보 선발 투표를 통해 그는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4번으로 등록했다. 그의 목표가 분명하다는 것을 보여준 행동이었다. 그에게는 이제 국회의원 배지가 목표가 된 것이다.
그는 열린민주당에 입당한 뒤 오히려 조용하다. 열린민주당 인사들 중에는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인데 좀처럼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검찰 개혁을 외치며 최강욱, 황희석 등이 방송과 신문 이곳 저곳에 틈만 나면 얼굴이 나오는 것에 비하면 그의 행보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일부러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지금 자신이 나서는 것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더불어시민당과 이른바 적자 논쟁을 벌일 때 열린민주당은 김의겸을 앞세워 "대통령의 입이 이 당에 있다, 우리가 적자다"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김의겸도 이런 당의 요구를 모를 리 없다. 이렇게 설득했을 것이다. "내가 지금 나서면 다시 부동산 논쟁만 상기시키는 겁니다. 내가 하겠다는 것이 언론 개혁인데 선거가 한창인 시점에서 언론과 척을 짓는 것은 상책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그는 열린민주당의 얼굴로 정면에 부각되는 것을 피하고 싶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공천을 받지 못하고 열린민주당 비례 후보가 되었다는 것은 당당한 일은 못 된다. 깐깐하고 염치를 아는 처지에 이 국면에서 자신의 행동이 국회의원 배지 달자고 이 당 저 당 기웃거리는 사람으로 비추어지는 게 결코 달갑지 않을 것이다. 한사코 공식 인터뷰를 고사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필자와 그의 인연은 별로 내세울 게 없다. 그와 밥을 먹은 기억도 없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 적도 없다. 학연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지연을 말할 수 있을까? 굳이 찾자면 그런 인연이 있겠지만 그는 물론이고 필자 역시 지연으로 엮여 있다는 생각은 없다. 같은 출입처를 담당하기도 했지만 그때라고 특별히 친하게 지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얼굴 아는 동료 기자라는 게 가장 정확한 표현일 텐데 그럼에도 왠지 필자는 김의겸을 잘 알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든다.
김의겸은 말수가 많은 사람도 아니었고 목청이 큰 사람도 아니었다. 항상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의 글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보수 정권 시기 그의 글에는 날이 서 있었고 때로는 필요 이상의 분노가 느껴지기도 했지만, 공격을 당하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자신의 글을 보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상대방을 조롱하고 비하하고 키득거리고 말꼬리 잡아 헐뜯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품위와 격조가 있었다. 최순실 사태 관련해서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에게 보낸 공개 편지글이 대표적이다.
진보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겼지만 그렇다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한다는 이유로 편 가르기를 일삼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비난을 받을 때마다 내가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당신들에게 내가 이런 말을 들을 정도로 형편없이 살아온 것은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사람이 있다. 필자가 보기에 김의겸이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부동산 투기꾼이라는 딱지가 붙은 자신의 모습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지난해 3월부터 지금까지 1년여 동안 김의겸은 운명의 소용돌이에 던져진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떤 한계를 벗어나면 인간의 삶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삶이 굴러간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총선에 나가자, 그러기 위해 문제가 된 부동산을 팔고 차익을 사회에 환원하면 뭔가 길이 열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 거기까지는 김의겸의 선택이자 자유 의지의 영역이었지만 그 이후는 그의 의지와는 무관했다.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 같다. 아마도 며칠 후면 그는 의원 당선자 신분이 되지 않을까. 의원이 되든 되지 않든 그는 분노와 상처를 동력으로 삼아 앞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의 눈에서 분노의 파란 불꽃이 튀는 일이 더 잦아질 것이다. 그는 무엇을 하려고 할까? 언론 개혁을 하겠다고 이미 그는 선언했다. 그에게 수모와 치욕을 안겨주고 그를 무릎 꿇리고 무릎 꿇은 그를 무자비하게 짓밟았던 자들에 대한 분노를 숨기지 않을 것이다. 그는 부인할지 모르지만 그의 마음에 있는 것은 복수의 칼이 아닐까.
그는 현재의 한국 언론 지형을 이렇게 표현했다. "몇몇 가문의 이해관계가 지면과 화면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이 먼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보겠다, 모난 돌 되어 먼저 정을 맞겠다고도 했다. 그가 국회의원이 되면 언론 개혁의 전사가 될 것이다. 그가 내세우고 있는 언론 개혁이란 의제는 다소 낡은 것이 사실이지만 여전히 절박한 과제이다.
개혁이 분노와 상처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가 모를 리 없다. 자신을 돌아볼 줄 알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나를 보려고 하던 김의겸이 주도하는 언론 개혁이라면 기대할 만한다. 나아갈 때와 멈출 때를 아는 김의겸이라면 그 어려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복수의 칼날을 가슴에 품고 자신의 억울함을 씻기 위한 싸움이라면 기대할 게 없다. 지난 1년 동안 그의 다소 어지러운 행적을 보면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김의겸이니 그의 앞길을 유심히 지켜보기로 하자.
윤춘호(논설위원) 기자spring84@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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