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전염병은 왜 계절을 탈까?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입력 2020. 3. 31. 17:00 수정 2020. 3. 3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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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병원 소아청소년과 환자진료대기실에서 진료를 받으려고 대기 중이다. 연합뉴스 제공

지난 27일 질병관리본부는 2019-2020절기 인플루엔자(독감) 유행주의보를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3주 연속 환자 수가 유행기준(병원 외래환자 1000명당 독감 환자 5.9명) 아래였기 때문이다. 이는 독감 유행주의보 해제를 선언하기 시작한 2011-2012절기 이래 여덟 시즌의 평균인 5월 하순보다 두 달이나 빠른 기록이다. 코로나19로 설날 연휴부터 사람들이 초유의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참고로 우리나라 독감 유행 기간은 대략 12월~4월로 연말연시에 정점(1000명당 60명 내외)을 찍는다.

  

독감처럼 뚜렷한 계절성을 보이지는 않지만 감기도 겨울과 환절기에 많이 걸린다. 오죽하면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 옛말이 다 있을까. 여기서 오뉴월은 음력이므로 지금의 6, 7월에 해당한다. 여름에는 좀처럼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필자가 독감과 감기의 계절성을 언급한 이유는 다들 알 것이다. 현재 파죽지세로 세계, 특히 북반구 중위도 지역을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가 독감이나 감기처럼 계절이 바뀜에 따라 기세가 꺾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가을이 깊어지고 있는 남반구 중위도 지역은 시름이 커지겠지만.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

감기 증상을 일으키는 병원체는 다양하다. 위는 리노바이러스의 구조(오른쪽은 단면)로 게놈을 캡시드 단백질 180개가 감싸고 있는 구조다. 아래는 코로나바이러스의 구조로 게놈을 외투(envelope)로 불리는 지질 이중막이 감싸고 있다. 외투에는 많은 단백질이 박혀있다. 이런 구조적 차이가 두 바이러스의 계절성 차이를 설명한다. T.V. Rao (위), 위키피디아 제공

학술지 ‘사이언스’ 3월 20일자에는 전염병의 계절성에 대한 연구현황을 소개하고 코로나19의 앞날에 대해 생각해보는 심층 기사가 실렸다. 기사에서는 앞으로 코로나19가 계절성을 보일지에 대해 전망이 엇갈리는 최근 논문 두 편을 소개했다. 그런데 기사에 소개된 다른 전염병들에 대한 연구결과를 볼 때 불확실한 건 코로나19의 계절성 ‘여부’가 아니라 ‘정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절성을 보이는 전염병이라면 독감이나 감기 같은 호흡기 질환이 먼저 떠오르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않을 것 같은 전염병들도 계절성을 띤다. 성병인 임질(세균이 병원체)은 여름과 가을에 걸리기 쉽고 수두(바이러스가 병원체)는 봄에 극성이다. 지금은 백신 덕분에 거의 사라졌지만 소아마비(바이러스)는 여름이 전성기다. 여러 병원체가 보이는 이런 계절성을 의학은 아직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뇌염(바이러스)이나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바이러스)처럼 계절을 타는 이유가 명확한 전염병도 있다(운반체인 모기나 진드기가 여름과 가을에 활동하므로). 다행히 코로나19와 호흡기 질환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독감과 감기의 계절성은 꽤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 질환이 계절성을 띠는 이유를 알면 코로나19의 계절성 양상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전염병의 계절성 여부 또는 정도를 결정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변수가 있다.  병원체의 계절성과 숙주(사람)의 계절성이다. 독감의 경우 바이러스의 안정성(생존력)이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다고 알려져 있다. 독감바이러스는 온도가 올라가고 습도가 높아질수록 힘을 못 쓴다. 반면 사람은 온도와 습도가 낮으면 호흡기의 점막이 감염에 취약해진다. 겨울은 독감바이러스에 유리하고 사람에 불리한 기후라 독감이 쉽게 퍼지고 증상도 심하다. 봄이 돼 날이 풀리며 이 관계가 바뀌면서 독감의 위세가 시들해지다 완전히 역전돼 시즌이 끝난다.

감기는 패턴이 좀 다르다. 독감과는 달리 우리가 감기라고 부르는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여러 가지로 리노바이러스(30~80%), 코로나바이러스(15%), 독감바이러스(10~15%. 증상이 약한 경우), 아데노바이러스(5%)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바이러스에 따라 계절성 정도가 다르다.

코로나바이러스(물론 코로나19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와는 다른 유형이다)가 병원체인 감기는 독감처럼 계절성이 강하고 시즌도 독감과 겹친다. 반면 리노바이러스와 아데노바이러스는 계절을 타지 않는다. 다만 사람의 호흡기가 여름철에 강하기 때문에 좀 덜 걸릴 뿐이다.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의 병원체는 리노바이러스나 아데노바이러스라는 말이다. 감기 코로나바이러스가 이들이 아닌 독감바이러스와 비슷한 계절성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국 에딘버러대의 연구자들은 2006년 7월부터 2009년 6월까지 3년 동안 1만1661명의 호흡기 시료를 채취해 감기를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 4종을 분석했다. 그 결과 3종의 검출빈도가 독감바이러스의 빈도(실선)와 같은 패턴을 보였다. ‘임상미생물학저널’ 제공

지질 외투 안정성 계절에 민감

답은 바이러스 입자의 구조에 있다. 리노바이러스나 아데노바이러스는 우리가 생물 시간에 배운 바이러스의 기본 구조이다. 핵산(RNA 또는 DNA)으로 이뤄진 게놈을 캡시드 단백질 수백 개가 감싸고 있는 형상이다. 반면 코로나바이러스와 독감바이러스는 여러 단백질이 박혀있는 지질막이 핵산을 감싸고 있는 구조다. 

이 지질막을 외투(envelope)라고 부르는데, 그 기원은 사람의 세포막이다. 세포에 침투한 바이러스가 수백 마리로 증식한 뒤 빠져나올 때 세포막을 이루는 지질막을 몸(게놈)에 두르고 방출되는 것이다. 지질막 외투를 지닌 바이러스는 새로운 사람 세포에 부착할 때 지질막이 세포막과 융합하므로 쉽게 침투할 수 있고 숙주의 면역계를 혼란스럽게 해 공격을 피한다. 대신 감염한 숙주에서 새로운 숙주로 옮기는 과정에서 외부에 노출됐을 때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특히 온도와 습도가 높으면 외투가 쉽게 손상돼 바이러스가 활성을 잃는다.

코로나19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도 외투를 지닌 코로나바이러스이므로 독감 시즌을 따르는 계절성을 보일 것이다. 따라서 4월은 몰라도 5월이 되면 좀 잠잠해지지 않을까. 그런데 실제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 우리나라 5월 날씨보다 더운 동남아시아에서도 만만치 않은 기세로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코로나19바이러스는 계절성에서 예외적인 존재일까.

현재까지 코로나19 전개 양상을 보면 늦겨울에서 초봄으로 넘어가고 있는 북반구 중위도 지역에서 확산세가 강하다. 반면 중국과 가까운 동남아 지역은 상대적으로 확산세가 약하다. 그럼에도 절대적인 감염력은 상당해 이 지역의 나라들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하며 확산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따라서 지금 기세라면 북반구 중위도 지역이 봄에서 여름으로 간다고 해도 한시름 놓을 상황이 올 것 같지는 않다. 과연 그럴까.  

3월 하순까지 코로나19 환자(왼쪽)와 사망자(오른쪽)의 대다수는 북반구 중위도 지역에서 발생했다. 이 현상이 바이러스의 계절성 때문인지 이 지역(주로 유럽과 미국)의 활발한 인적교류(해외여행)의 결과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앞으로 계절이 반대 방향으로 진행하는 북반구 중위도 지역과 남반구 중위도 지역의 코로나19 현황을 한두 달 지켜보면 바이러스 전파력의 계절성 여부 또는 정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위키피디아 제공

낮 길이 변화가 면역계에 영향 줘

동남아 지역의 기후를 흔히 ‘1년 내내 우리나라 여름 날씨’라고 말하지만 설사 온도와 습도가 비슷하다고 해도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바로 낮의 길이다. 지구의 자전축은 공전 면에 수직이 아니라 약간 기울어져 있어 적도를 제외하면 1년 동안 낮과 밤의 길이가 바뀌는데, 위도가 높아질수록 편차가 심하다. 북위 35° 내외인 우리나라는 하지의 낮(일출 일몰 기준)이 밤보다 5시간 이상 길고 동지에는 5시간 정도 짧다. 안팎으로 10시간 이상 차이가 나는 셈이다. 유럽 인구 대다수가 사는 북위 40° 이상 지역은 차이가 더 심하다. 반면 적도에 가까운 저위도 지역은 동지나 하지나 낮 길이가 거기서 거기다.

계절에 따른 낮과 밤 길이의 편차는 사람의 심신에 영향을 준다. 이런 예 가운데 하나인 계절성우울증은 낮이 짧은 겨울에 주로 나타난다. 그런데 독일이나 북유럽처럼 위도가 높아 겨울에 낮이 유난히 짧은 지역일수록 계절성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고 증상도 심하다.

면역계도 계절에 따른 낮의 길이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같은 온도와 습도라도 낮의 길이를 길게 하면(인공조명으로) 면역력이 40% 올라간다는 동물실험결과가 있다. 사람도 면역계 관련 유전자 가운데 무려 4000여 개의 발현 패턴이 계절에 따라 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어쩌면 이런 변화가 병원체에 대한 반응성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낮이 길어질 때 독감바이러스나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서는 저항성이 커지고 임질균이나 소아마비바이러스에는 취약성이 커지는 식으로 말이다. 실제 독감이나 소아마비의 유행 패턴을 보면 위도가 높아질수록 계절성이 커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위도(latitude)에 따른 소아마비 환자 월별 발생 건수를 보면 고위도로 갈수록 뚜렷한 계절성이 드러난다. 그런데 저위도 지역보다 온도가 훨씬 낮은 시기에는 저위도 지역과 빈도가 비슷한 반면 온도가 비슷해지는 여름에 오히려 환자가 훨씬 더 많다. 온도의 변화만으로는 전염병의 계절성을 설명할 수 없는 한 예다. ‘신종감염병’ 제공

만일 코로나19에서도 이런 패턴이 보인다면 북반구 중위도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때 지금 동남아 상황에서 예측한 것보다는 뚜렷한 계절성이 나타날 수 있지도 않을까. 아직까지는 유럽과 북미가 고전하고 있지만 4월에 확산세가 꺾인다면 최근 국내 발생 환자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해외입국자 환자 수도 줄어들 것이고 5월부터는 사회적 거리두기도 완화될 수 있지 않을까. 

설사 이렇게 되더라도 인구의 극히 일부만이 바이러스와 접한 상태이기 때문에 찬바람이 불면 십중팔구 북반구에서 코로나19 확산이 재현될 것이다. 그리고 2020-2021년 독감 시즌 내내 지금보다도 엄격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보내야 할지도 모르겠다(물론 효과적인 백신이 나온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렇더라도 이건 나중 일이고 지금 당장은 코로나19바이러스가 뚜렷한 계절성을 보이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많은 전염병이 계절에 따라 발생 빈도의 차이를 보이는데 그 정도와 시기는 제각각이다. N. Desai/사이언스 제공

※필자소개
강석기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8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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