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보고서] 약자의 참상 고발한 '코로나19 징비록'

배수강 기자 고재석 기자 이현준 기자 문영훈 기자 2020. 3. 2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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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값도 못내요, 신용불량자 됐어요"

[신동아]

3월 3일 대구 중구 서문시장상인회 사무실 앞에서 특례보증 상담 신청이 시작되자 많은 상인이 길게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뉴스1]
불행히도 재난은 약자부터 덮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은 사회의 저변부터 야금야금 질식시킨다. 예고 없이 불어닥친 감염병이 계급 격차의 민낯을 까발린다. 밑바닥에서는 '나와 가족의 미래'가 '나와 무관하게' 결론 난다. 정권과, 질병과, 책임자만 바꿔 수년간 되풀이돼온 레퍼토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 기사에 등장하는 직종은 13개다.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1만1000자가 쓰였다. '재난은 빈자에게 덮친 재앙'이라는 딱 한 구절을 풀어내는 데 그만한 삶의 두께가 필요했다. 견고하던 범부(凡夫)의 삶에 밀어닥친 충격을 연필로 꾹꾹 눌러쓰며 기록에 담았다. 서애 유성룡은 임진왜란 직후 '지난 잘못을 징계해 미래의 환란을 경계'하기 위해 '징비록(懲毖錄)'을 남겼다. 이 글은 사회적 약자를 주어로 삼은 '코로나19 징비록'이다.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생각하니…"

3월 10일. 기자와 만난 J씨는 회사 긴급경영자금을 빌리려 이곳저곳 알아보고 있었다. 경기도 구리시에서 직원 6명과 공연시스템업체를 운영하는 그는 서울시 등 지자체의 대형 행사와 각종 공연, 이벤트 행사에서 조명을 설치하고 운용하는 일을 하고 있다. 

"코로나19로 2월 행사 실적은 '제로'였어요. 3, 4월은 성수기인데 예정된 행사도 모두 취소됐죠. 저희는 행사를 해도 2~3개월 있다가 행사비를 지급받는데, 5월부터 일을 시작한다고 해도 7, 8월은 돼야 입금이 되죠. 그때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더군요. 그런데 2월 초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소상공인 지원 종합안내' 공문이 왔고, 언론에서도 보도하더군요. 그나마 숨통이 트일 거 같았어요. 그런데…." 

기자가 확인한 중소벤처기업부의 안내서에는 신용보증재단과 신용·기술보증기금, 국세청 및 관할세무서, 행정안전부, 관세청 등 관계 당국의 지원내용과 함께 연락처와 시행일자가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J씨는 우선 여행, 공연, 음식, 숙박업 종사자 등에게 연말 매출에 따른 부가가치세와 법인세 등 신고납부기한을 최장 9개월간 연장해 준다고 해서 전화를 했다. 처음 문의했을 때 담당 공무원이 " '소상공인 종합안내'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해서 일주일 정도 기다렸다가 다시 전화를 했다. J씨와 세무서 관계자와의 두 번째 통화 내용이다.

"코로나 확진자 나온 것도 아니잖아요"

2월 24일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칼국수골목의 상인들이 코로나19 예방 차원으로 일주일간 휴업에 들어가 상점에 불이 꺼져 있다. [뉴스1]
J "확인차 다시 전화했어요. 코로나 피해 지원 관련 아직도 공문이 떨어진 게 없나요." 

공무원 "네 없어요. 일전에 저와 통화한 분이시죠? 구체적으로 내려온 게 없어요. 어디서 (J씨가) 공문을 받았는지 모르겠네요." 

J "중소벤처기업부에서요. 안내서에는 주관 기관은 국세청 증세과이고 연락처(126)에 사업자등록번호를 입력하면 이쪽(관할 세무서)으로 연결됐어요.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공무원 "(부가세) 세목 자체는 1월 25일까지 신청해야 했어요." 

J "종합안내서에는 시행일이 2월 5일부터라고 돼 있는데요." 

공무원 "그럼 안 돼요. 납부기간이 지난 세목이면… 몇 년 전 세금까지 소급할 수 없잖아요." 

J "몇 년 전이 아니라 1월 신고한 부가세 납부를 유예해 달라는 건데요." 

공무원 "저도 잘 몰라요. 저보고 어디로 하라는 건지…저도 다른 업무가 있잖아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측에 전화해 보세요. 사장님 사업장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한 것도 아니잖아요." 

J "확진자가 발생해서가 아니라 제가 하는 업종이 지원 대상에 포함돼 지원받으라는 공문이 와서 연락드린 겁니다. 말씀하신 진흥공단에는 백번 넘게 전화해도 통화가 안 되고, 공무원들은 모른다고 하면 우린 어떻게 합니까. 소상공인들과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그럼 공문을 보내지 말았어야죠." 

통화 다음 날 관할 세무서 공무원은 "코로나19 관련 지원이 아니라 사정이 딱하니 직권으로 두 달가량 부가세 납부를 유예해 주겠다"고 했다. 여전히 관련 안내 공문을 받은 게 없다고 했다. 

J씨는 급한 마음에 소상공인 경영안정자금을 신청하러 관할 소상공인진흥공단을 찾았다. 중기벤처부가 보낸 공문에는 '한도 7000만 원 융자 지원, 대출기간 5년'으로 적혀 있었다. 공단은 소상공인들로 꽉 차 있었고, 전화가 안 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전화가 안 되니 어떤 서류가 필요한지도 모르고 무작정 찾아간 터. J씨는 현장에서 국세납세증명서와 부가가치세과세표준증명,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 지난해와 올해 매출 비교 자료 등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다음 날 자료를 챙겨 재방문했다.

평소대로 대출…긴급지원 '생쇼'

"대출을 해주는 줄 알았는데 '코로나 피해기업 인증서'를 발급해 주더니 다시 지역 신용보증재단으로 가라고 하더라고요. 안내서에는 분명 대출을 해준다고 돼 있는데 어이가 없었죠. 그래도 한 푼이 급하니 보증재단에 가서 다시 서류 내고 심사를 받았어요. 그런데 또 화가 치밀더군요." 

수억 원대의 고가 조명장비는 차량처럼 임차(리스)해 쓰다가 일정 기간 비용을 다 내면 소유한다는 게 J씨의 설명이다. 그도 앞서 신용보증재단에서 7000여만 원을 빌려 쓰다가 매월 상환해 현재 절반 정도 갚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재단 관계자는 J씨의 대출 이력 등을 이유로 '해당 사항 없음'이라고 결정했다. 

"코로나19로 긴급자금을 지원한다고 안내하면서 실제 가보니 기존 방식대로 대출해요. 이게 무슨 긴급자금입니까? 그리고 정부 기관끼리도 서로 협의 안 된 사항을 발표하면서 마치 소상공인을 살려줄 것처럼 '생쇼'를 하니 기가 막혔죠." 

결국 J씨는 정들었던 직원 4명을 내보냈다. "9월경 다시 함께 일하자"는 서로가 믿지 않는 약속을 했다. 경영 자금을 빌릴 여력도 없었고, 경영 계획을 세울 수도 없었다. 

그런데 3월 12일, 관할 세무서에서 연락이 왔다. 담당 공무원은 "이제야 공문을 받았고, 안내서에 나온 9개월 유예는 아니고 3~5개월 유예해 줄 수 있다"고 했다. 

"공문에는 시행일이 2월 5일이었는데 이제야 공문을 받았고, 유예기간도 안내서보다 대폭 줄었더라고요. 정부의 공식 문서에 대한 신뢰가 확 떨어지면서, '대한민국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욕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세무서 공무원에게) 되도록 5개월로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애초 중소벤처기업부 공문에 대출 자격 요건을 특정하거나 필요 서류를 명기했다면 관련 기관을 두세 차례 재방문하는 수고를 덜 수 있었을 텐데 그런 배려는 전혀 없었어요. 요즘 같은 엄혹한 시기에 느끼는 박탈감을 오히려 더 키우더군요. 생색내는 행정에 씁쓸했어요."

마스크 취약계층…"이건 아닌 것 같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2000명을 넘어선 2월 28일 서울 서초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이 전관 임시휴점에 들어가 문이 닫혀 있다. [뉴스1]
이번에는 사소하면서도 중차대한 질문에 마주할 때다. 사업주는 다수의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근로자에게 감염병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지급할 의무가 있는가. 경기도 소재 행정복지자치센터에서 사회복지 업무를 담당하는 30대 공무원 K씨부터 씁쓸하게 말을 뱉었다. 

"하루에 30~40명이 상담을 위해 창구로 찾아와요. 하루 5시간 이상, 수십 명의 사람과 대면 상담을 하는데 마스크를 제공받지 못했어요. 개인이 구해야 하는데 구하기도 어렵죠.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다가 사진이 찍혀 민원을 당한 사람도 있는데 난감합니다." 

같은 지역에서 근무하는 사회복무요원 K씨 역시 부당함을 호소했다. 사회복지관, 관공서 등에서 사회복지 업무를 담당하는 사회복무요원은 도시락 배달, 구호 물품, 방역 물품 등을 집집마다 나눠주는 업무를 수행한다. 여러 집을 방문해야 하니 거주자와 접촉이 잦을 수밖에 없다. 하루 20곳 정도 방문한다는 그의 하소연이다. 

"집을 방문하면 대개 마스크를 쓰고 계시지 않아요. 물건을 직접 전하다보니 거리가 가까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안전을 위해 마스크를 꼭 쓰고 다녀야 한다고 느끼지만, 지급받는 마스크가 없어요. 사회복무요원 월급으로는 마스크 가격도 부담스럽습니다. 적어도 마스크는 주면서 일을 시켰으면 좋겠어요." 

경기 안양시의 한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 P씨는 "이건 아닌 것 같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하루에 100명 넘는 환자가 병원을 방문해요. 그중 열이 나는 사람도 있고, 기침을 심하게 하는 사람도 많아요. 확진자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마스크를 주지 않아 부당함을 느껴 병원 원장에게 마스크를 지급해 달라고 했어요. '내가 왜 마스크까지 줘야 하나. 지금 마스크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줄 여유가 어디 있나. 각자 구해서 착용해라'라는 핀잔만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착용하지 않고 갔더니 '어딜 마스크도 없이 일하나, 당장 마스크를 구해서 써라'는 불호령을 들었습니다. 울고 싶은 심정입니다." 

법률가에게 자문했다. 한영화 변호사는 "산업안전보건규칙 601조 1항은 '사업주는 근로자가 공기 매개 감염병이 있는 환자와 접촉하는 경우에 감염을 방지하기 위하여 조치를 취해야 함'을 규정하고 있다"며 "같은 조 1호엔 근로자에게 결핵균 등을 방지할 수 있는 '보호마스크'를 지급하고 착용하도록 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번에는 당국에 물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현재 코로나19가 '심각' 단계에 이른 만큼, 다수의 사람과 접촉이 많다는 것은 감염병에 대해 노출 위험이 크다고 봐야 한다. 평시에는 그렇지 않겠으나 지금은 사업주가 마스크를 지급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는 견해를 보였다. 현장에서 법률가와 공무원의 말은 유령처럼 부유하다 가뭇없이 사라진다.

"사람에 대한 예의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에요?"

"카드 값 못 내게 생겼어요. 이러다 신용불량자 되는 거죠. 수입이 완전히 끊겼습니다." 

비정규직 강사 Y씨는 "생계에 위협을 겪고 있다"고 했다. 감염병의 확산 앞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운명은 첨예하게 갈린다. "이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잖아요. 기약이 없으니 막막해요." 그의 목소리에 체념이 스쳤다. 이야기는 2월 초에서부터 시작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2월 초, 늦어도 2월 하순부터 기관 및 학원이 잇달아 휴강·휴원을 발표했다. 단체로 수업이 이루어지다 보니 감염의 위험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이른바 '빅3' 백화점이라 불리는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의 문화센터도 휴강 및 개강 연기를 선언했다. 서울 올림픽공원 스포츠센터도 2월 24일 휴관을 발표했다. 요가, 필라테스, 피트니스 센터도 차례대로 셔터를 내렸다. 

누군가에게 휴강은 무료함일 뿐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밥벌이할 기회의 상실이다. 문화센터 강사 상당수는 프리랜서와 비정규직이다. Y씨의 말에 따르면 공공기관의 경우 전임강사(정규직)와 프리랜서 강사 간 비율은 3:7 수준이다. 사설 기관은 프리랜서 강사의 비율이 더 높다고 한다. 한 군데에서 오래 일하지 않다 보니 여러 곳을 오가며 강의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겨우 삼시세끼를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다. 

Y씨는 서울 강서구, 마포구, 구로구, 경기 부천시의 국·공립기관 4곳을 종횡무진 오가며 아쿠아로빅, 줌바댄스, 필라테스를 가르쳤다. 하지만 2월 초순부터 한 곳 한 곳씩 문을 닫기 시작하다 이내 모두 휴강했다. Y씨는 통장에 입금받을 급여가 없는 처지로 내몰렸다. 

요가를 가르치는 C씨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근무하던 학원 3곳이 모두 휴원해 졸지에 '강제 휴가'를 얻게 됐다"고 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월급이 찍히지 않는 모습을 보는 건 C씨에게 아픈 일이었다. 

"1주일 정도야 쉬는 셈쳤는데, 한 달 이상 이어지고 있어요. 다른 일을 바로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미리 알고 준비라도 했다면 모를까, 그럴 일도 아니었잖아요. 한 달 수입이 통째로 사라지니 피해가 막심하죠." 

같은 나이대인 스포츠댄스 강사 S씨는 출강하던 학원에서 수업이 있기 하루 전날 "내일 수업에 나오지 마세요"라는 문자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격앙된 어투로 말을 쏟아냈다. 

"문을 닫아야 하는 이유는 이해하지만, 최소한 사람에 대한 예의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언제부터 다시 나오란 말도 없고, 우리도 스케줄 조정하면서 대비해야 하잖아요. 그래야 먹고사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일방적으로 통보를 해오면 너무 무책임하죠. 계약직이라고 물건 취급하는 거예요. 사람이라 생각하면 이렇게 안 하겠죠."

"정규직은 월급 70% 보전받는데…"

20대 중반의 공공기관 미술강사 K씨는 "아무리 비정규직이지만 우리에겐 생계가 달린 일"이라면서 분개한 목소리로 성토했다. 

"1주일 쉰다고 해놓고 아무런 통보도 없이 2주로 휴원 기간을 연장하더니, 이제는 무기한으로 연장한다고 해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습니다. 최소한 계획은 세울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비정규직 강사 대부분은 사업소득자로 분류돼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자연히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다. 퇴직금 또한 먼 나라 얘기다. 근로기준법 제46조에는 '사용자의 귀책사유로 휴업하는 경우에 사용자는 휴업기간 동안 그 근로자에게 평균임금의 100분의 70 이상의 수당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휴업수당을 규정한 조항이다. 하지만 비정규직 강사들은 대개 계약기간이 1년 미만이라 관련 조항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K씨는 "정규직 강사보다 강의 시간이 더 많지만 월급은 적다"면서 "게다가 그들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 월급의 70%를 보전받고 있다. 하지만 나는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체념하듯 되뇌었다. 그는 "생계형 강사들은 수입이 끊기면 바로 빚이 된다. 빚이 늘면 결국 빈곤층이 된다"며 힘없이 토로했다. 

코로나19의 기세가 어디까지 치달을지, 지금은 그 누구도 모른다. 이번에는 전문가에게 자문했다. 

안덕모 노무사는 "비정규직 강사들이 처한 상황을 구제할 수 있는 현행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도 "하지만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는다면 상황에 따라 법리적 검토를 거쳐 구제받을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고 조언했다. 

한영화 변호사는 "근로기준법만 놓고 보면 이들에게 휴업수당을 줄 수는 없다. 그렇다고 도움 받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 근로자 지원센터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에 따라 설립돼 운영 중인 '비정규직 근로자 지원센터'를 통해 법률지원 및 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입사하자마자 임금 삭감

신입사원 K씨는 2월 24일 생애 첫 직장에 마스크를 끼고 출근했다. 31번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확진자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을 무렵이었다. 지역사회 감염이 가시화하고 거리에 인적이 사라지면서 소상공인들이 먼저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27세 파릇파릇한 신입사원의 운명도 급변하기 시작했다. 

K씨가 입사한 기업은 15명이 일하는 소규모 온라인 광고대행사다. 코로나19의 여파로 광고를 의뢰하는 업체가 급감했다. 사장은 근무 시간을 줄이는 대신 임금을 삭감하자고 직원들에게 제안했다. K씨 또한 3월 9일부터 하루 8시간 근무를 5시간으로 줄였다. 대신 임금의 30%를 덜 받기로 했다. 이를 '확인한다'는 서명도 해야 했다. 

당초 K씨가 입사하며 계약한 기본급은 월 180만 원 안팎이다. 하지만 이번 달 K씨는 약 126만 원 안팎을 수령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코로나19가 오래 지속되면서 회사가 힘든 상황에 처한 것은 이해하지만 원래도 많지 않은 월급이 또 줄면 생활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사태가 4월까지 이어지면 무급휴가를 써야 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세계 각국이 한국 입국자에게 빗장을 걸어 잠갔다. 이와 관련해 3월 12일 중소기업중앙회는 수출 중소기업 312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코로나19 영향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 기업 중 70.8%는 입국 제한 조치로 수출이 악화할 것이라고 답했다. 예상되는 피해 유형(복수응답)으로는 '해외전시회 취소 등으로 수주 기회 축소'(73.8%), '입국금지로 해당 국가 내 영업활동 제한'(62%)이 가장 많았다. 또 '부품 및 원자재 수급 애로로 인한 계약 취소'(18.6%), '한국산 제품의 이미지 하락으로 인한 수출 감소'(15.4%)가 뒤를 이었다. 

설상가상 저비용항공사(LCC)들은 벼랑 끝에 놓여 있다. 2월 28일 저비용항공사 6곳(에어부산, 에어서울, 이스타항공, 제주항공, 진에어, 티웨이항공)의 사장단은 정부에 무담보·장기 저리 조건으로 긴급 경영안정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이들 LCC 업체 중 한 곳에서 지상직으로 근무하는 30대 초반의 P씨는 2월 말 평상시보다 80만 원 적은 월급을 받았다. 2월 중 2주간 출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50여 명의 팀원이 돌아가면서 무급휴가를 쓰는 분위기라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최진규 노무사는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고용 관련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직장갑질 119는 직장인들을 상대로 상담을 제공하는 시민단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이 단체가 운영하는 오픈 채팅방 상담에서는 코로나19 관련 질문이 쏟아졌다. 주요 내용은 ▲ 강제 연차 사용 ▲ 임금 삭감 ▲ 무급 휴가 등이다. 직장갑질 119 측은 회사의 귀책사유에 따라 임금의 70~100%를 지급해야 하는 터라 무급휴가는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막상 사측이 경영난을 이유로 근로자에게 무급휴가를 권고하면 근로자가 마냥 거부하기는 어렵다.

"월 120만 원도 사라졌다"

2월 2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 공연장 매표소에 방역을 알리는 게시물이 붙어 있다. [뉴스1]
"국립공연장을 잠정 휴관하고 국립예술단체 공연도 일시 중단합니다." 

2월 25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공지한 내용이다. 문화계도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았다. '위윌락유' '영웅본색' 등 대형 뮤지컬이 1월 31일과 2월 10일 각각 공연 중단 결정을 내렸다. 이 밖에도 각종 공연이 연기·취소 됐다. 공연예술 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1월 약 102만 건이던 공연 예매 횟수는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한 2월 들어 약 52만 건으로 반 토막 났다. 

공연장에서 관객을 안내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을 하우스어셔(house usher)라 한다. 공연이 '엎어지자' 하우스어셔 일자리가 사라졌다. 다른 업무와 달리 어셔는 공연에 따라 채용되는 단기 계약직이다. 관련 업종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에게 인기다. 서울시내 한 공연장의 경우, 예정된 공연이 잇따라 취소되면서 약 20개의 하우스어셔 자리가 안개처럼 사라졌다. 

연극계도 사정은 매한가지다. '연극의 메카' 대학로에서 '그녀를 믿지 마세요' '수상한 흥신소' 등 수많은 연극이 공연 중단이나 조기 종영이 결정됐다. 한 편의 공연이 막을 올리려면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1) 공연기획사가 공연을 기획 후, (2) 배우·스태프와 고용계약을 맺는 한편 (3) 공연장을 대관한다. 규모가 큰 공연의 경우, 티켓을 판매하는 마케팅 회사와 대행 계약을 맺는 경우도 종종 있다. 

따라서 지금 상황과 같이 공연이 연이어 취소되면 계약에 얽혀 있는 당사자 모두가 피해를 본다. 특히 고통이 큰 피해자는 배우다. 30대 중반의 배우 N씨는 "규모가 큰 일부 연극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사정도 열악하긴 마찬가지지만,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투자를 유치받고 대형 극장에서 열리는 '메이저' 연극은 연습 수당을 준다"면서 "배우의 출연료도 상대적으로 높다. 그렇기에 사정이 좀 나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연습 수당은 문자 그대로 공연을 올리기 위해 연습하는 기간에 제공되는 수당을 뜻한다. 이 기간은 3개월에서 6개월가량이다. 대략 공연 수당의 20~30% 비중밖에 제공되지 않아 '열정 페이'나 마찬가지지만 주머니 사정이 빈곤한 배우들에게는 꼭 필요한 수입이다. 코로나19로 공연이 잇달아 취소되면서 연습수당을 얻을 기회도 사라졌다. N씨가 말했다. 

"배우는 공연을 해야 어떻게든 소액이나마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대학로의 한 유명 연극을 기준으로, 월 30~40회 이상 공연 횟수를 꽉 채워 일해도 한 달에 받는 액수는 110만~120만 원 정도예요. 그 역시 '열정 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만, 지금은 그조차 사라진 겁니다." 

비슷한 나이의 또 다른 배우 K씨의 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사정이 열악하다 보니 부업을 하지 않으면 생계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20대 배우의 경우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경우가 많아 집안의 지원을 받곤 하지만 30대들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월세를 내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사람도 있어요. 여자들은 커피숍이나 식당 등에서 알바하고, 남자들은 일용직 노동을 하거나 대리운전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아요. 코로나19로 상황이 더 나빠진 거죠."

"일용직 일자리마저 줄어…"

부업 일자리 사정도 녹록지 않다. 30대 초반의 배우 C씨는 일용직 노동과 운전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코로나19 탓에 일용직 일자리가 줄어 생계가 더 어려워졌다"고 했다. 그가 체념한 듯 말을 이었다. 

"그래도 꿈이 있으니까 연습 수당 못 받는 것도 그동안 참아왔어요. 무대에 올라갈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얼마 해보지도 못하고 공연이 취소돼 벌어놓은 돈이 없어요. 코로나19 탓에 일자리도 줄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할 때가 많아요. 따로 반찬 살 돈이 없으니 먹다 남은 라면 국물에 밥을 여러 번 말아 먹기도 해요. 제가 '타다' 드라이버 일을 하는데 곧 '타다'가 금지된다고 하니 또 걱정입니다. 어디 도움 받을 곳도 없는데." 

2월 20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예술인을 돕기 위해 '코로나19 예술인 특별 융자' 제도를 신설, 긴급 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문체부 관계자는 "이 융자를 신청하려면 기존에도 필요하던 '예술 활동 증명'이 있어야 한다"면서 "하지만 신청요건이 까다롭다는 지적이 있어 기준을 더욱 완화할 예정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예술인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가 만들어놓은 카오스의 한복판에서 국가에 도움을 청해야 하는 운명이 얄궂다.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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