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발로 기면서 짖어"..텔레그램엔 '남성노예방'도 있다

정한결 기자 2020. 3. 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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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가서 '코로나19' 걸린 척 해라."

텔레그램의 한 '남성노예방'에서 내려진 지령이다. 약점을 잡힌 10대 피해자는 이내 기침을 하며 편의점에 들어선다. 지시대로 코로나 걸린 것 같다고 말하자 편의점주가 당황한 모습을 보인다. 이어 경찰까지 출동한다.

피해자는 모든 과정을 스스로 영상으로 촬영해 채팅방 운영진에 보낸다. 피해자의 '나체 사죄' 영상도 요구하던 운영진이 비로소 만족했다. 그의 지옥 같던 '미션'이 끝났다. 운영진은 피해자가 촬영한 영상을 한 번에 채팅방에 공개하며 구구절절 경위를 설명한다.

10대 남자 청소년들의 약점을 잡아 강제로 성 착취·가학 영상을 제작해 유포하는 텔레그램 채팅방이 포착됐다. 나체 영상과 성적인 영상은 기본이고, 더 가학적인 요구도 서슴지 않는다. '박사' 조주빈이 구속됐지만 유사 성범죄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삐뚤어진 성인식이 약점된 '남자 노예들'…신상 공개·나체 사진은 기본

28일 머니투데이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문제의 텔레그램 방에는 20여명의 남성들이 성 착취 피해를 입은 영상이 올라왔다. 상당수가 10대 청소년으로 가장 어린 나이로는 14살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텔래그램 방은 지난 14일 개설됐다. '박사' 조주빈 체포 이틀 전으로, 성 착취 영상 제작은 더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대화방은 현재 사라졌지만 다른 대화방에서 비슷한 성착취가 지속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방에 풀린 것은 일부다.

피해자의 약점을 잡아 성 착취·가학 영상을 제작·배포한다는 점에서 '박사방'과 그 수법이 유사하다.

다만 피해자가 연루되는 과정이 다르다. 조주빈이 고액의 알바를 소개해준다는 명목으로 피해자들에 접근했다면 이 방 운영자는 '지인의 얼굴을 음란물에 합성해준다'는 서비스를 미끼로 피해자들을 꾀어낸다. 피해자 역시 그릇된 성 인식을 가진 이들인 셈이다. 방 운영자들이 피해자들을 옭아매는 고리이기도 하다.

방 운영자는 이렇게 꾀어낸 피해자들의 나이, 전화번호 등 신상을 파악한 뒤 성 착취·가학 영상 촬영을 강제한다. 피해자가 못 버티고 이탈한 경우 "탈주했다"고 묘사하며 대화방 참여자들에게 그동안 찍은 영상 등을 공유한다.

"네발로 기면서 개처럼 짖어"…성 착취부터 악랄한 협박까지
사진=김창현 기자 chmt@

결국 협박에 못 이긴 피해자들은 방 운영자가 요구하는 '미션(임무)' 수행 영상을 올린다. 초기에는 피해자들이 나체로 잘못했다고 운영자들에게 비는 성 착취 영상이 상당수였다.

그러나 미션은 성 착취에서 끝나지 않고 날이 갈수록 그 내용도 악랄해졌다. '네발로 기면서 개처럼 짖어라,''동성 친구에게 고백해라', '칼을 들고 영상을 찍어라' 등 인권 유린이 이어졌다.

금품을 요구한 정황도 포착됐다. 운영자는 "피해자들에게는 보통 벌금형과 사회봉사명령을 선고한다"고 운영 지침을 밝히면서 "벌금형 외에 절대 사적으로 금전을 요구하지 않고, 납부된 벌금은 운영진의 실적에 따라 주급으로 지급한다"고 공지했다.

인권 유린의 현장에서도 운영진들은 스스로를 "필요악"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금전을 위해 이 방을 꾸린 것이 아니다"라면서 "성범죄자도 피해자와 같은 수치심을 느끼게 하기 위한 취지를 통해 만들어진 집단"이라고 수시로 언급했다. '지인의 얼굴을 음란물에 합성해달라'는 그롯된 성인식을 가진 이들을 벌주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다.

받은 피해를 그대로 돌려준다는 일종의 '미러링'이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운영진 중 몇 명이 이탈하자 특정 지역 비하 발언으로 이탈자를 욕하는 등 혐오 표현을 서슴없이 쓰기도 했다.

채팅방 운영진은 전날 오전만 해도 "홍보 좀 해달라"고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관련 보도가 나오자 급격히 방을 폐쇄했다.

'폭력은 폭력을 부른다'...전문가 "강력한 처벌제도 필요"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가 디지털 시대를 맞이했지만 성 규범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이같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진단한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그동안 남성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성적인 행동들을 놀이처럼 여겼다. 이제는 그런 놀이들이 디지털 시대에는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남는다"면서 "이같은 맥락에서 (성별만 바꾼 채) 성적 놀이로 미러링을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폭력의 고리를 끊기 위해 강력한 처벌제도를 도입하고 인식 개선을 위해 힘써야 한다고 말한다.

정 교수는 "미러링도 결국 대상이 사라지면 사라질 수 있다"면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남성중심적 성규범과 문화를 바꿔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디지털에 대응하는 강력한 법적 처벌을 통해 고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모든 교육 과정에서 이를 가르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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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결 기자 hanj@mt.co.kr, 김남이 기자 kimnami@mt.co.kr, 임찬영 기자 chan0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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