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면 후엔 혐오와 상처에서 깨어날까 [책과 삶]
[경향신문] ㆍ내 휴식과 이완의 해
ㆍ오테사 모시페그 지음·민은영 옮김
ㆍ문학동네 | 360쪽 | 1만5000원
뉴욕 맨해튼은 지구상에서 가장 독특하고 복잡한 도시다. 거리는 다양한 인종·민족들로 넘쳐나고, 걷다 보면
동네 분위기가 10여분마다 확 바뀐다. 명품으로 치장한 부자들과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는 노숙자들도 손쉽게 만날 수 있는 곳. 이 책은 꿈과 욕망, 자유가 뒤섞인 20년 전 맨해튼을 배경으로 하는 장편소설이다.
주인공 ‘나’는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금발의 백인 여성이다. 1973년생으로 20대 후반인 나는 명문대를 우등생으로 졸업했지만 직업은 없다. 부모 유산으로 일을 하지 않아도 고급 아파트에서 충분히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와 머리뿐 아니라 위노나 라이더를 닮은 외모도 가지고 있다. 겉으로 봤을 때 부족함 없어 보이는 나는 1년간 ‘동면’에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온갖 기억과 상처, 사람에 대한 혐오와 허무를 잊기 위해서다. 하루 2~3시간만 깨어 있고 1년 동안 약에 의존해 할 수 있는 데까지 잠만 잔다. 일어났을 때 하는 거라곤 음식 섭취와 비디오 감상이다.
동면 전후를 그린 소설은 잠만 자는 것을 묘사하지 않는다. 절친한 친구 ‘리바’, 전 남자친구 ‘트레버’, 약을 처방하는 정신과 의사 ‘닥터 터틀’ 등 뒤틀리고 병적인 면모가 가득한 주변 인물을 등장시킨다. 술에 절어 지내는 리바는 가짜 명품으로 치장하길 좋아하는 욕망과 질투의 화신이고, 월가 금융인 트레버는 비뚤어진 성의식을 가졌고, 닥터 터틀은 윤리 의식이라곤 찾기 힘들다. 작가는 주인공을 비롯한 이들 인물을 통해 현대사회와 현대인의 병폐·모순 등을 특유의 직설적이면서도 풍자적인 화법으로 이야기한다. 냉소와 염세주의가 가득한 블랙코미디로, 1990년대를 기억하는 이들은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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