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타임머신 ⑰ 1999년] '리그 최강' 수원에 맞선 '인기 최고' 부산

조남기 2020. 3. 27.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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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타임머신 ⑰ 1999년] '리그 최강' 수원에 맞선 '인기 최고' 부산

(베스트 일레븐)

한창 뜨거워야 할 피치가 아직 차갑게 식어 있다. 코로나19가 이 땅의 모든 축구를 식힌 탓이다. 덩달아 우리들의 가슴도 달궈지지 않아 서늘하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언제고 다시 뜨거워질 K리그를 기다리며, 과거 <베스트 일레븐(월간 축구)>이 전한 기사와 함께 지난 37번의 시즌을 돌아봤다. 큰 이슈부터 작은 기록까지 가능하면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고, 당시의 생생함을 전달하기 위해 잡지에 실린 내용을 그대로 사진으로 옮겼다. 아직 숨죽이고 있는 K리그를 기다리는 데 ‘K리그 타임머신’이 작은 보탬이 됐으면 싶다. / 편집자 주


K리그의 르네상스. 현대의 모두가 아련한 추억을 소환하며 꼭 언급하곤 하는 바로 그 르네상스. 1999년은 르네상스의 ‘정점’이었다. 1998년 2,117,448명의 관중이 모여 새 시대를 열었다면, 1999년은 도합 2,561,617명이 경기장에 운집하며 그야말로 한국 프로 축구의 ‘전성기’가 도래했다. 리그 평균 관중은 14,311명. 그때 그 시절엔 전국 웬만한 경기장을 가더라도 평균 관중 1만 명은 거뜬했다.

부산 대우 로얄즈(現 부산 아이파크)는 그중에서도 인기가 으뜸이었다. 그들의 홈구장 구덕 운동장은 늘 인산인해였으며, 부산 시민 대부분은 축구의 매력에 흠뻑 취해버린 것만 같았다. 당시 부산 대우 로얄즈의 단장은 “우리에겐 5백만의 부산 시민이 있다”라고 의기양양하게 큰소리를 쳤는데, 그럴 만도 했다. 구덕 운동장을 가득 채웠던 평균 관중 22,870명은 부산 대우 로얄즈 선수단의 사기를 하늘 끝까지 치솟게 했다.

관중을 따지면, 수원 삼성 블루윙즈도 만만치 않았다. ‘리그 최강’답게 수원 삼성 블루윙즈 역시 수원 종합운동장에서 홈경기가 벌어질 때마다 구름 관중을 모았고, 그 결과 1999시즌 평균 관중은 20,486명을 기록했다. 한 시즌에 평균 관중 2만 명을 넘기는 클럽이 리그에 두 팀이나 탄생한 셈이었다. 이뿐이랴. 울산 현대 호랑이(現 울산 현대), 포항 스틸러스, 전남 드래곤즈, 안양 LG 치타스(現 FC 서울), 부천 SK(現 제주 유나이티드) 등 타 팀들에도 텅 빈 관중석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1999년 K-리그(現 K리그1)는 정말 그랬다. 꿈같았던 시기다.


리그 흥행의 원동력은 역시나 ‘트로이카’였다. 부산 대우 로얄즈의 안정환,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고종수, 포항 스틸러스의 이동국은 이른바 ‘빅 3’로 불리며 팬들을 매료시켰다. 외관은 물론 실력까지 두루 갖춘 스타들의 유려한 플레이는 모두를 열광케 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1999년의 <베스트 일레븐>엔 ‘프로 축구 TOP 10’이라고 해서 10개 구단 대표 선수들의 이야기를 따로 다루는 월간 코너까지 존재했다. 밤하늘을 수놓듯 수많은 별들이 리그에 쏟아졌고, 그런 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하는 게 대단한 관심사였다. 당대 TOP 10으로 거론되던 이들이 앞서 언급한 트로이카 안정환·고종수·이동국을 비롯해 천안 일화 천마(現 성남 FC)의 신태용, 전북 현대 다이노스(現 전북 현대)의 박성배, 전남 드래곤즈의 노상래, 울산 현대 호랑이의 김병지, 안양 LG 치타스의 최용수, 부천 SK의 윤정환, 대전 시티즌(現 대전하나 시티즌)의 김은중 등이었다.

리그 시스템은 1998년과 동일했다. 각종 컵대회를 마무리하고 5월 말에 개막한 리그는 전·후기가 아닌 단일 리그 이후 플레이오프로 진행됐다. 정규리그에선 무승부가 없었다. 연장전을 가서 골든골로 승부를 내든, 그것도 안 되면 승부차기까지 가서라도 어떻게든 승자와 패자를 가렸다. 무조건 끝을 봤던 거다. 승점 취득 방식은, 정규 시간 승리 시 3점, 연장전 승리 시 2점, 승부차기 승리 시 1점이었다.


정규리그를 리드했던 클럽은 예상대로 디펜딩 챔프 수원 삼성 블루윙즈였다. 샤샤·데니스·고종수·서정원·올리·이기형·박건하·이운재 등으로 구성된 푸른 전사들은 슈퍼컵·대한화재컵·코리아컵을 모두 석권하며 최강의 위용을 뽐냈고, 그 기세를 그대로 정규리그까지 몰고 왔다. 덕분에 챔피언 결정전 직행 티켓을 획득하는 정규리그 1위도 일찌감치 확정했다. 정규 시즌이 한참 남았던 9월,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그즈음에 이미 시즌을 끝내버렸다. 정규 시즌이 종료가 됐을 때 1위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2위 부천 SK의 승점 차는 무려 12점이었다.

푸른 전사들이 질주에 질주를 거듭했던 반면 그 아래로는 엎치락뒤치락하는 국면이 계속됐다. 플레이오프에 참여 가능한 리그 4위에 들기 위해 부천 SK·전남 드래곤즈·부산 대우 로얄즈·포항 스틸러스가 처절한 경쟁에 돌입했다. 힘이 부족하긴 했어도 안양 LG 치타스 또한 당대 최고의 공격수였던 최용수를 앞세워 끝까지 이를 악물었다. 각축전 결과, 4위 부산 대우 로얄즈까지가 포스트 시즌 진출에 성공했고, 5위 포항 스틸러스 밑으로는 아쉽게도 정규리그를 끝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이제 시선은 리그 2연패를 노리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상대가 어떤 팀이 될지에 쏠렸다. 일단은 부천 SK가 유력해보였다. 부천 SK 역시 기세가 대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레이오프에서 위력을 발휘한 건 부산 대우 로얄즈였다. ‘판타지 스타’ 안정환을 앞세운 부산 대우 로얄즈는 준플레이오프에서 전남 드래곤즈를 1-0으로 격파해 플레이오프에 올랐고, 플레이오프 1·2차전에선 합계 2-0으로 부천 SK를 꺾으며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대기하던 챔피언 결정전으로 향했다. 그때 부산 대우 로얄즈는 시즌 중 신윤기 감독이 안타깝게도 사망하며 분위기가 뒤숭숭했는데, 와중 장외룡이 감독 대행 역을 잘 수행하며 시즌 막판까지 기세를 이어갔다. 아울러 선수들의 뒤에서 열렬한 응원을 펼치던 부산팬들의 존재감도 막판 상승세에 한몫했다.

10월 27일 구덕 운동장에서 벌어졌던 챔피언 결정전 1차전은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2-1 승리로 귀결됐다. 부산 대우 로얄즈는 후반 26분 류웅렬이 한 골을 넣기는 했으나, 후반 5분 설익찬, 후반 38분 박건하에게 거푸 실점하며 패했다. 그러나 2차전이 남아서 우승의 향방은 아직 장담할 수 없었다.

2차전이 벌어지던 10월 31일의 결승전은 비가 추적추적 떨어지던 날이었다. 푸른 군단의 홈이었던 수원 종합운동장엔 우천에도 개의치 않는 36,456명이 모여들어 해당 시즌 리그의 인기를 또 한 번 실감케 했다. 한 해의 주인공을 결정하는 마지막 경기답게 내용은 흥미진진했다. 전반 30분 안정환의 패스를 받은 부산 대우 로얄즈의 이기부가 선제골을 터뜨리며 경기는 알 수 없는 분위기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후반 36분 데니스의 프리킥이 굴절되며 부산 대우 로얄즈 손현준의 자책골로 이어졌고, 연장 전반 8분엔 샤샤가 또 한 번 골을 넣으며 경기는 그대로 종료됐다. 통합 스코어 4-2.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리그 2연패이자 ‘시즌 4관왕’이라는 대위업을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경기 후엔 크나큰 이슈가 발생하기도 했다. 샤샤의 마지막 득점이 손을 맞고 들어가며 논란이 됐는데, 그때 피치를 관장했던 중국인 심판 순바오제는 이를 알아채지 못한 채 경기를 그냥 종료해버렸다. 이 사건은 ‘K리그판 신의 손’이라 불리며 지금까지도 팬들에게 회자되곤 하는데, 골을 넣었던 샤샤는 경기 후 “잘 모르겠다”라는 애매한 멘트를 남겼고 이어 “경기는 끝났다. 우리가 챔피언이다”라며 줄곧 당당한 자세를 유지했다. 샤샤의 이런 태도는 연말 시상식에서 그에게 악영향을 주고 말았다.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1999시즌이었던 만큼, 한 해를 정리하는 시상식에도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렸다. 무엇보다도 최우수선수(MVP). 1999년을 빛낸 별들이 워낙 수두룩했기에 MVP에 유독 이슈가 집중됐다. 주인공은 안정환이었다. 1983년 리그가 시작한 이래, 최초로 비 우승팀에서 탄생한 MVP, 그게 바로 안정환이었다. 부산 대우 로얄즈는 비록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으나, 안정환의 활약상만큼은 단연 독보적이었다. 부드러운 움직임과 아름다운 외모로 피치를 휘젓던 그는 1999년의 ‘슈퍼스타’였다. 18골 3도움을 기록했던 샤샤는 강력한 MVP 후보군이었으나 비신사적 행위였던 신의 손 사건의 영향으로 끝내 최고가 되진 못했다. 1999년 리그에서 MVP를 거머쥔 안정환은 이듬해 여름 한국 최초의 이탈리아 세리에 A 선수가 된다.

감독상을 비롯한 베스트 11의 대부분은 최강 전력을 과시했던 수원 삼성 블루윙즈 출신들이 차지했다. 김호 감독은 또 한 번 최고의 사령탑이 됐고, 푸른 사단의 주역들인 샤샤·서정원·데니스·고종수·신홍기·이운재는 각자 베스트 11의 한 자리씩을 꿰찼다. MVP 안정환에게도 한 자리가 주어지는 건 당연했고, 이밖에도 포항 스틸러스의 고정운, 부산 대우 로얄즈의 김주성과 강철, 전남 드래곤즈의 철벽 마시엘도 한 해를 빛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글=조남기 기자(jonamu@soccerbest11.co.kr)
사진=베스트 일레븐 DB
그래픽=박꽃송이·김주희(www.bestelev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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