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타임머신 ⑮ 1997년] 세 개 대회 전관왕, 부산의 '리즈 시절'

임기환 2020. 3. 25.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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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타임머신 ⑮ 1997년] 세 개 대회 전관왕, 부산의 '리즈 시절'

(베스트 일레븐)

한창 뜨거워야 할 피치가 아직 차갑게 식어 있다. 코로나19가 이 땅의 모든 축구를 식힌 탓이다. 덩달아 우리들의 가슴도 달궈지지 않아 서늘하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언제고 다시 뜨거워질 K리그를 기다리며, 과거 <베스트 일레븐(월간 축구)>이 전한 기사와 함께 지난 37번의 시즌을 돌아봤다. 큰 이슈부터 작은 기록까지 가능하면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고, 당시의 생생함을 전달하기 위해 잡지에 실린 내용을 그대로 사진으로 옮겼다. 아직 숨죽이고 있는 K리그를 기다리는 데 ‘K리그 타임머신’이 작은 보탬이 됐으면 싶다. / 편집자 주


1997시즌은 라피도컵 프로축구대회로 명칭이 바뀌고 치르는 두 번째 시즌이었다. 직전년도 아홉 팀에서 하나 늘어난 열 팀 체제로 대회가 개최됐다. 대전 시티즌·부산 대우 로얄즈·부천 SK·수원 삼성 블루윙즈·안양 LG 치타스·울산 현대 호랑이·전남 드래곤즈·전북 현대 다이노스·천안 일화 천마·포항 스틸러스였다. 대전이 막내로 들어와 리그는 짝수 팀 체제로 완비됐다. 정규 리그인 라피도컵을 중심으로, 컵 대회인 아디다스컵과 프로스펙스컵까지 크게 세 개의 대회로 굴러 갔던 시즌이었다. 타이틀 스폰서인 라피도의 후원 금액은 12억 3000만 원으로, 아무래도 정규 리그 스폰서니 만큼 아디다스(3억 5,000만 원), 프로스펙스(3억 5,200만 원)보다 훨씬 컸다.

리그 방식은 또 바뀌었다. 정규 리그는 3년 만에 단일리그로 복귀했다. 이유가 있었다. 전기에 미리 우승한 팀이 후기에는 대회에 집중을 안 하게 된다는 문제가 제기됐고, 이어지는 챔피언 결정전은 경기 특성상 지나치게 과열된다는 게 이유였다.

정규 리그와 아디다스컵 두 개 대회만 존재했던 직전 시즌과 달리, 대회가 세 개로 세분화됨에 따라 정규리그 경기 수는 대폭 줄었다. 아홉 팀이 총 146경기를 치른 직전년도보다 56경기가 줄은 90경기 체제로 진행됐다. 10개 팀이 90경기를 치렀다. 그러나 아디다스컵에서 아홉 경기가 늘어 45경기를 하고, 신설된 프로스펙스컵에서 44경기가 새로 생겨났기 때문에 사실상 아랫돌 빼어 윗돌 괴기나 다름이 없었다.

승점 제도는 그대로 유지됐다. 90분 안에 이기면 승점 3이, 비기면 승점 1이 주어졌다. 연장전이나 승부차기 승점은 폐지됐다. 2003년부터 시작해 최근까지 이어 내려져 오는 승점 방식과 똑같다고 보면 된다.


이 시즌은 부산이 진정한 명가 반열에 올라 선 시즌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차만 감독이 이끈 부산은 이미 아디다스컵을 제패했고, 라피도컵에서도 울산과 함께 양강 구도를 형성하며 순항해 나갔다. 여름에는 수원 삼성이 치고 올라오며 부산·울산·수원의 3강 구도로 재편했다. 그럼에도 마니치와 정재권 등을 앞세운 부산은 꿋꿋하게 무패 행진을 이어 나갔고, 더블을 향한 꿈은 조금씩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부산의 독주를 기존의 전통 명가들이 가만 두고 보고만 있진 않았다. 포항과 울산에 수원까지 대권에 뛰어 들며 부산을 앞질렀다. 7월 13일 기준으로, 포항·울산·수원이 승점 15로 공동 선두권을 이뤘고, 부산은 이들에 승점 1 차이로 밀려 나며 4위까지 처졌다. 어느새 부산은 2패를 당했고, 다섯 팀씩 두 개 조로 나눠 치른 프로스펙스컵 B조에서도 3위로 처지면서 더블 달성에 비상이 걸렸다. 시즌 초 5주차까지만 하더라도 부산의 강세 속에 울산과 수원이 뒤를 바짝 추격하는 형국이었으나, 부산과 울산이 각각 전북 현대와 포항에 덜미를 잡히면서 상위권 판도가 틀어졌다. 황선홍의 장기 부상과 라데와 홍명보의 J리그 이적으로 전력 누수가 심한 포항의 반전은 놀라운 일이었다. 황선홍과 라데의 공백을 코놀과 박태하가 메워내고 서효원이 살림꾼 노릇을 착실히 했다. 박성화 감독의 용병술도 한몫했다.

하지만 부산은 후반부 뒷심을 발휘했고 천안 일화와 치른 최종전에서 고졸 선수 류병훈의 결승 축포에 힘입어 1-0 승리를 따내 정규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부산은 해당 시즌 전관왕, 프로 축구 사상 첫 4회 우승 등 겹경사를 맞이했다. 7월까지만 하더라도 중위권에 그쳤던 전남 드래곤즈는 후반기 맹렬한 기세로 부산을 턱밑까지 추격했고 최종전에서도 포항에 2-1로 이겼지만, 부산에 승점 1 차이로 뒤져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다. 신생 구단 대전이 10개 팀 중 7위로 괜찮은 신고식을 한 반면, 부천은 최하위로 처지며 몰락했다. 부산·전남·현대·포항이 이룬 4강에선 전남의 대약진이 돋보였다.


개인상 부문에서도 전관왕에 빛나는 부산이 강세를 보였다. 현역 시절 발이 느려 ‘똥차’라고 불렸던 이차만 감독이 감독상을, 김주성이 최우수선수상(MVP)을 받았다. ‘가물치’ 울산 김현석과 수원 데니스는 각각 득점왕과 도움왕에 올랐다. 김현석은 아홉 골로 1983년 유공 코끼리 박윤기 이후 최소 골 득점왕에 등극했고, 데니스 역시 K리그 최소 어시스트 도움왕(5개)에 올랐다. 데니스는 최연소 도움왕에 오르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베스트 11에도 부산 선수가 네 명이나 들어섰다. 최전방에 마니치와 미드필드에 정재권, 그리고 수비 라인에 김주성과 신범철 골키퍼가 포함됐다. 전남의 스카첸코가 마니치와 파트너를 이룬 가운데, 미드필드 나머지 네 자리에는 김현석과 대전의 신진원, 전남의 김인완, 수원의 이진행이 선택을 받았다. 수비는 스리백으로 전남의 마시엘, 포항의 안익수가 선정됐다. 준우승 돌풍을 선보인 전남도 세 명의 베스트 11을 배출하는 등 최남단 팀들의 강세가 돋보였던 시즌이다.

울산의 김현석은 세 시즌 연속, 부산의 김주성은 두 시즌 연속 베스트 11에 선정됐다. 두 선수는 거기에 더해 득점왕과 MVP까지 개인상 더블을 차지했다. 이 항목엔 대전의 신진원도 이름을 올렸는데, 신진원은 신인상과 베스트 11을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글=임기환 기자(lkh3234@soccerbest11.co.kr)
사진=베스트 일레븐 DB
그래픽=박꽃송이·김주희(www.bestelev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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