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챙 없는 양털 모자를 '개리슨 캡'이라고 부른 이유

남보람 2020. 3. 1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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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람의 전쟁 그리고 패션-136] 개리슨 캡(Garrison Cap)(하)

1. '샤포 드 푸라지'가 '개리슨 캡'이 되기까지

프랑스군으로부터 받은 '샤포 드 푸라지'를 '포리지 캡', 스코틀랜드군의 '글렝개리'에서 착안해 '플라이트 캡'을 '개리슨 캡'이라 부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군은 남다르게 군사와 관련된 것에 이름을 붙이고 바꾼다. 어찌 보면 이런 현상은 세계 공통이다. 한국군 병사들이 겨울에 입는 보온용 내피를 '방상내피' 대신 '깔깔이'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개리슨 캡이 전장 속에서 지나온 여정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글렝개리를 끄고 있는 스코틀랜드 군인의 모습(좌). 글렝개리는 지금도 왕실 스코틀랜드 연대 제식 복장으로 유효하다. /출처= ⓒ위키피디아미디어커먼스

2. 제2차 세계대전과 '개리슨 캡'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개리슨 캡'(당시 명칭 '오버시즈 캡')은 가장 인기 있는 쓸 것이었다. 영내 활동에서 이만큼 편한 모자는 없었다. 장병들은 훈련, 작업, 외출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썼으며 야구와 같은 스포츠 경기를 할 때도 썼다.

위기는 있었다. 미군은 비실용적이며 군기가 빠져 보인다는 이유로 착용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전쟁이 발발했고(제2차 세계대전) 개리슨 캡은 다시 '쓸 것의 왕좌'를 차지했다. 미국이 참전을 공식 선언한 1941년부터 육해공군 장병 모두 전투 상황하에서 헬멧을 쓸 때가 아니면 개리슨 캡을 썼다. 물론 장군도 개리슨 캡을 썼다.

개리슨 캡을 쓴 장군들. 좌로부터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패튼 장군, 미 제34대통령을 역임하는 아이젠하워 장군,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총사령관을 역임한 클라크 장군 /출처= ⓒ위키피디아미디어커먼스

1944년부터는 미국 보이스카우트 대원도 개리슨 캡을 썼다. 보이스카우트 정신, 조직, 복장이 군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 보이스카우트는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직후 공식적으로 지지를 선언하고 정부의 전쟁 정책에 적극 협조했는데 이때 미국 전쟁부 장관은 보이스카우트의 군복 착용을 허가했다. 미국에서는 1916년부터 민간인이 군복 혹은 군복과 유사한 디자인의 의상을 착용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보이 스카웃의 복장 변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좌측에서 세 번째), 이후(좌측에서 네 번째)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가 있다. /출처= ⓒreedsms.com/boy-scouts
보이 스카웃 포스터. 모두 개리슨 캡을 쓰고 있다. /출처= ⓒreedsms.com/boy-scouts

3. 개리슨 캡과 한국군

한국군도 개리슨 캡을 쓴다. '개리슨 모'라고 부르며 현재 공군, 해군, 해병대가 쓰고 있다. 이들이 개리슨 캡을 도입한 이유는 편리성과 이미지 때문이다. 그러나 '편하지도 않고 이미지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다.

한국 공군(좌)과 해군(우)의 개리슨 캡 /출처= ⓒ국방일보

2014년 해병대가 올리브색 개리슨 캡을 복제 규정에 넣는다고 했을 때 논란이 일었다. 해병대 업무 담당자는 '(기존 팔각모는) 실내 근무 시 착용하거나 보관할 때 불편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팔각모는 디자인이나 색깔이 다소 시대에 뒤처진다는 지적이 있었다'(중앙일보 2014년 12월 1일자)고 했지만, 정작 해병대 장병(예비역을 포함한)은 그런 의견이나 지적의 출처가 어디냐며 의아해했다. 더불어 "변덕쟁이처럼 왜 자꾸 바꾸냐? 해병대 역사와 전통을 우습게 보는 거냐" "복지에 쓸 돈은 없고 모자 바꿀 돈은 있냐"는 비판도 있었다.

해병대 전투복에 팔각모 착용 모습(좌)과 근무복에 개리슨 캡(우) 착용 모습 /출처= ⓒ해병닷컴

유사한 논란이 육군에서도 있었다. 2011년에 '기존의 전투모 대신 베레(모)를 채택한다'고 발표했을 때, 그리고 2019년에 다시 '지금의 베레 대신 전투모로 회귀한다'고 했을 때다. 마찬가지로 의견 수렴을 제대로 하라, 그만 좀 바꿔라, 병사 복지에 더 신경 써라 등의 비판이 나왔다.

한국 육군 베레와 해병대 개리슨 캡 도입은 운용 환경을 잘못 분석해 나온 실패라는 구체적 지적도 있다. 한국의 기후 특성상 챙이 없는 개리슨 캡과 베레는 오히려 불편하다. 해가 뜨면 햇빛을 가리지 못하고, 비가 오면 비를 바람 불면 바람을 막아주지 못한다.

또한 비판자들은 해병대와 육군이 주장한 이미지 개선도 현실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했다. 삐딱하게 쓴 개리슨 캡과 베레만큼 군기 빠져 보이는 것이 또 있을까. 쓰기라도 하면 다행인데 거리에 나가보면 많은 장병들이 베레를 벗은 채 시내를 활보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길(술집, PC방)에서 군인 모자 주웠음'이라는 게시물이 떠다닌다.

분실한 베레를 찾아가라는 웃픈 사연이 종종 SNS에 올라온다. /출처= ⓒ페이스북페이지

프랑스군에서 시작된 이래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쳐 오늘날까지도 미군 복제의 일부로 기능하는 개리슨 캡 이야기는 흥미로우며 미군의 역사와 정체성 일부를 구성한다. 미군에 개리슨 캡은 전장 환경에 맞는 모자를 찾아나가는 과정 속에서 나온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한국군의 개리슨 캡에는 유래, 이야기, 역사가 없다. 논란을 불러일으켜 오히려 한국군 정체성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한국군의 개리슨 캡은 미군이 찾아낸 결과물을 모방한 것이어서 사용자들이 납득할 만한 인과관계, 담론이 없기 때문이다.

[남보람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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