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빛나고 있겠지! 제주 산간의 숨막히는 봄풍경
[프레시안 알림]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되고 있으나 아직 안심할 단계가 아니므로 4월 강의는 부득이 휴강하고 5월로 연기합니다.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2020년 5월 오름학교는 22(금)-23(토)일, 1박2일로 열립니다.
*참가회원님은 미리 항공편을 확인하시고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코로나19 관련, 발열·근육통·호흡기 증상이 있거나 본인 또는 가족이 14일 이내 국내외 감염지역 방문을 한 경우 참가를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승태 교장선생님은 얘기합니다.
꽃이 피었으나 향기를 탐할 수 없고, 창밖은 이리도 화창한데 봄소식 나눌 정다운 친구를 만나지 못하는 얄궂은 봄날, 시름에 겨운 시간이 지나고 있습니다. 모두 평안하신지요? 집안에 갇혀(?) 함께 갇혀 계실 모든 오름나그네의 안부를 여쭙니다. 그래도 정부와 온 국민의 헌신적인 협조로 유례없는 재앙 코로나19가 조금씩 잡혀가는 듯해서 다행입니다. 꽃 피는 봄은 빼앗겼으나 우리 마음의 봄기운은 날로 생명의 기운으로 넘쳐나길 바랍니다.
오름학교 제14강은 청정지대 제주의 동쪽과 서쪽의 오름을 두루 둘러보는 시간으로 준비했습니다. 첫날엔 작지만 아름답고, 오르는 즐거움이 쏠쏠한 제주 동부의 네 오름과 숨은 비경인 녹차밭 속의 동굴을 둘러봅니다.
둘째 날은 제주 산간의 원시림이 바다처럼 펼쳐진 한라산의 오름을 찾아갑니다. 삼형제샛오름과 거린사슴오름입니다. 지금까지 찾았던 오름과는 모든 것이 다른 걸음이 될 것입니다.
오름학교(교장 이승태. 여행작가·제주오름 전문가)의 2020년 5월, 제14강은 <여전히 빛나고 있겠지! 제주 산간의 숨막히는 봄풍경-세미오름, 낭끼오름, 녹차밭동굴, 통오름, 독자봉, 삼형제샛오름, 1100고지 습지, 거린사슴오름>을 찾아갑니다.
(원래 제14강으로 예정했던 <겨울이 가장 깊어! 겨울이 제맛인 오름들-대왕산, 대수산봉, 낭끼오름, 유건에오름, 삼의악(새미오름), 어승생악>은 코로나19 관계로 휴강했으며 여기는 다음 기회에 찾아갑니다.)
2017년 11월 개교한 오름학교는 제1강 <애월의 오름>, 제2강 <안덕의 오름>, 제3강 <표선의 오름1>, 제4강 <제주서부 중산간오름>, 제5강 <곶자왈 특집>, 제6강 <초지능선오름>특집, 제7강 <오름, 가을풍광 속으로>, 제8강 <제주 서부오름 소병악과 대병악, 비양도의 비양봉과 제주의 특별한 건축물 기행>, 제9강 <봄빛 가득, 제주 서남부 오름들>, 제10강 <제주스런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오름들>, 제11강 <그 깊고도 짙은 푸름 속으로! 한여름의 서부 제주 보석 같은 오름들>, 제12강 <제주의 바람, 초원을 흔드는 바람-제주의 가을바람과 가을하늘이 잘 어울리는 오름>, 제13강 <늦가을 서정으로 가득! 제주올레의 아름다운 오름들>에 이어 제14강 <여전히 빛나고 있겠지! 제주 산간의 숨막히는 봄풍경-세미오름, 낭끼오름, 녹차밭동굴, 통오름, 독자봉, 삼형제샛오름, 1100고지습지, 거린사슴오름>으로 향합니다.
제주 출신 화가 강요배 선생은 “오름에 올라가본 일이 없는 사람은 제주 풍광의 아름다움을 말할 수 없고, 오름을 모르는 사람은 제주인의 삶을 알지 못한다”면서 제주 오름의 소중함을 얘기했습니다. 이는 제주도가 오름과 오름이 세포처럼 유기적으로 이어진 곳이어서 제주를 알려면 반드시 오름을 알고 올라보아야 한다는 말일 겁니다. 들판 한가운데, 바닷가에, 작은 마을 뒤편에 순하디 순한 모양으로 솟아 제주의 자연풍광을 이룬 오름. 사람들이 뻔질나게 드나드는 유명 관광지에서는 만날 수 없는, 날것 그대로의 제주의 모습이 그곳에 있습니다.
아름다운 제주도 오름을 순례하는 <오름학교>는 격월로, 제주 자연풍광의 결정체이며 마을 형성의 모태인 오름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그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짚고 감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름’은 ‘산’의 제주도 방언으로, 한라산 산록으로부터 해안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있는 작은 화산체들을 이릅니다.
2020년 5월, <여전히 빛나고 있겠지! 제주 산간의 숨막히는 봄풍경>을 준비하는 교장선생님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제14강 1일차 / 5월 22일(금)
<세미오름, 낭끼오름, ‘오늘은 녹차밭’ 동굴, 통오름, 독자봉>
-북동쪽에 샘을 가진 한적한 오름
제주시에서 성읍과 표선으로 이어진 번영로를 따라 달리다가 봉개동과 조천읍 경계를 넘어갈 즈음 앞이 훤히 트이며 시선을 끄는 두 오름이 나타납니다. 오른쪽으로 둥그스름한 오름은 지난 12강 때 올랐던 바농오름이고, 왼쪽으로 봉긋 솟은 오름이 세미오름입니다.
오름의 북동쪽 자락에 샘이 있어서 ‘세미’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김종철 선생님은 저서 <오름나그네>에서 ‘새미오름’이라고 적었습니다. 우물의 제주 방언이 ‘세미’니까 ‘세미오름’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제주시 봉개동의 ‘안세미’와 ‘밧세미’, 구좌읍 송당리의 ‘거슨세미’, 애월읍 고성리의 ‘산세미’ 등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죠.
해발고도 421m에 오름 자체의 높이가 100m쯤인 아담한 산세의 세미오름은 남쪽 발치로 동부 제주를 대표하는 도로인 번영로가 생기면서 스쳐 지나기 쉬운 곳이 되었습니다. 많은 차량이 빠른 속도로 달리는 곳이어서 여차하면 들머리를 놓치기 십상이죠. 차량으로는 번영로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습니다.
표석과 주차장이 있는 오름 들머리에서 보면 바로 앞의 봉우리가 높고 북쪽으로 능선이 돌아간 듯 보입니다만, 실제 정상은 멀리 돌아간 북쪽 능선에 있습니다. 크고 작은 나무와 뒤엉킨 덤불 사이로 친환경매트가 깔린 진입로가 이어집니다. 짧지만 참 정겨운 길이죠. 곧 나타난 갈림길에서 ‘오름 정상’이라 적힌 작은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으로 갑니다.
길은 잠시 후 오른쪽의 둘레길을 버리고 산으로 향합니다. 소나무 숲 사이로 좁지만 쾌적한 오솔길이 구불거리며 능선으로 이어집니다. 동북쪽으로 완만하게 휘어지는 능선은 걷기 좋습니다. 세미오름은 여기서 왼쪽, 그러니까 서쪽으로 트인 말굽형 분화구를 품었습니다. 분화구라기보다는 동북쪽 화구벽만 남은 듯한 모양새죠.
능선 일대에 소나무가 많다 보니 쌓인 솔잎으로 길이 푹신합니다. 능선 양쪽으로는 간간이 조망이 트이며 송당리와 제주시 남쪽의 한라산 자락에 솟은 오름들이 가늠됩니다. 오름과 오름 사이로 펼쳐진 드넓은 뱅듸도 펼쳐지며 비로소 제주다운 풍광을 보여줍니다.
곧 산불감시초소가 서 있는 정상부를 만납니다. 가을이면 억새가 볼만한 이곳에서 조천읍 일대가 훤히 조망됩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오름은 아니나 길이 또렷하고, 쉬엄쉬엄 오르내려도 1시간이 채 안 걸리는 세미오름입니다.
낭끼오름
-작은 오름의 재발견
낭끼오름은 어지간한 지도에도 안 나오는 작은 오름입니다. ‘남거봉’으로도 불리는 낭끼오름은 수산리에서 좌보미와 백약이오름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있습니다. 작은 동산처럼 생겨서 별 게 있을까 싶었는데, 올라보니 참 기분 좋은 곳이었습니다.
식은 죽 먹기 정도죠. 동남쪽에서 서북쪽으로 비스듬히 누운 산체를 가졌으며, 길에서 억새 가득한 들녘을 따라 조금 들어선 곳에서 시작되는 탐방로는 150m 후에 정상에 닿을 만큼 작고 아담합니다. 이리 작아도 이름은 수두룩합니다. 낭곶오름, 낭껏오름, 낭케오름, 남케오름에 남거봉, 낭끼오름까지. ‘낭’은 나무고, ‘끼’는 변두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무가 선 곳의 변두리쯤의 뜻을 가졌습니다. 북동쪽에 분화구 흔적이 희미하며, 오름의 남쪽과 동쪽은 드넓은 벵듸가 펼쳐집니다. 오름자락을 따라 억새지대가 많아서 가을에 더 제격일 낭끼오름이지만 사철 언제라도 오르는 즐거움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정상에 독특한 형태의 산불감시초소가 있는데, 초소를 가운데 두고 육각형의 넓은 전망데크가 펼쳐집니다. 이곳에서의 조망 또한 압권입니다. 영주산부터 한라산을 지나 좌보미, 다랑쉬, 지미봉, 성산일출봉에 대수산봉까지 제주 동쪽이 한자리에서 가늠됩니다.
전망대를 지나면 동남쪽 능선을 따라 울창한 삼나무숲 속으로 탐방로가 이어집니다. 10분쯤 간 곳에서 능선이 낮아지며 오름을 벗어나고요. 그 뒤 오름자락을 서쪽으로 돌아 출발지로 옵니다. 억새가 가득한 길을 가로질러서요.
낭끼오름은 덩치가 작고, 오르내리는 시간도 짧아서 금세 다녀올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 오름에서 느끼는 제주 풍광의 감동은 오래갑니다. 제주가 한 걸음 성큼 다가오는 듯한 곳입니다.
‘오늘은 녹차밭’과 동굴
-제주 토박이도 모르는 감추인 비경
화산섬 제주에는 수많은 동굴이 있습니다. ‘만장굴’과 ‘김녕굴’, ‘협재굴’, ‘당처물동굴’, ‘벵듸굴’, ‘용천동굴’ 같이 널리 알려진 용암동굴 외에도 이름조차 없는 동굴이 허다합니다. 그리고 땅밑엔 아직 발견되지 않은 굴도 많다고 하죠. 중산간 지대를 다니다 보면 가끔 이런 동굴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짧고 작은 것이 대부분이지만 어떤 것은 수백 미터에 이르기도 합니다. 김녕의 ‘빌레왓길’에서 만나는 ‘남문동굴’과 ‘궤네기굴’이 그렇습니다. 이러한 동굴들은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며, 남문동굴은 동네의 하수구로 이용되고 있기도 하죠.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에, 지금은 영업하지 않는 ‘오늘은’이라는 이름의 카페를 겸한 쇼핑센터가 있습니다. 관광객을 상대로 기념품 같은 것을 팔던 곳이었는데요, 이 건물 서쪽으로 구릉을 따라 드넓은 녹차밭(오늘은 녹차밭)이 펼쳐져 있습니다. 오설록 녹차밭이 있는 서광다원의 거대한 규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한적하면서도 무척 예쁜 곳입니다.
이름 없는 이 동굴은 원래 넓은 지하공간이었는데, 한쪽 끝의 천장이 무너지며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무너진 면적이 꽤 넓습니다. 3층짜리 건물쯤은 지붕도 안 보일 만큼 내려앉았고, 테니스 코트 하나는 들어서고도 남을 면적입니다.
무너지지 않고 남은 동굴(북서쪽) 바닥에 여러 개의 장독이 보입니다. 다원에서 사용하던 것일 테죠. 동굴 안으로 들어설수록 좁아져서 끝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작지 않은 동굴임엔 틀림없습니다.
통오름
-다섯 봉우리가 감싼 통을 닮은 오름
제주제2공항 예정지와 성읍민속마을 사이에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통오름과 독자봉은 이곳 신산리의 오름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저 유명한 오름들과 달리 바다가 멀지 않은 제주의 변두리, 낮은 지대에 다소곳하게 솟았죠.
두 오름은 중산간동로의 8자 모양 신산교차로를 가운데 두고 남북으로 사이좋게 붙었습니다. 그래서 연결해 오르내리기가 좋습니다. 제주올레 3코스가 두 오름을 이어 지납니다. 당연히 올레꾼들에게 널리 알려졌고 사랑받습니다.
북쪽에 있는 통오름은 해발고도 143.1m에 오름의 높이가 43m로, 전체적으로 완만한 경사를 가졌습니다. 능선을 따라 부드럽고 나지막한 다섯 개의 봉우리가 서쪽으로 트인, 원형에 가까운 말굽형 분화구를 감싸고 있습니다. 오름의 모양이 물통을 닮아서 ‘통’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탐방로는 교차로에서 바로 시작됩니다. 능선까지 네모난 통나무 계단이 구불거리며 이어지는데, 그 모습이 마치 천국의 계단을 떠올리게 합니다. 오르는 길엔 참나무가 많아 여느 오름과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죠.
계단을 올라 만난 능선에서 왼쪽으로 조금 가면 산불감시초소가 나옵니다. 여기서 서북쪽의 영주산을 시작으로 멀리 백약이오름과 좌보미, 동검은이, 다랑쉬, 따라비 등 수많은 오름이 늘어선 풍광이 여전한 감동을 줍니다. 발아래엔 수많은 무덤이 산담도 없이 다닥다닥 붙은 신산공동묘지가 눈길을 끕니다.
통오름 탐방로는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우리에서 분화구를 왼쪽에 두고 동북쪽으로 휘어 도는 능선을 따릅니다. 올레 3코스와 같은 노선입니다. 능선엔 소나무가 많지만 억새와 띠 같은 풀도 자주 나타나며 온통 초지대였던 옛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몇 개의 무덤과 봉우리를 지나며 내려선 곳에 올레의 상징인, 하늘빛 조랑말 모양의 간세가 보입니다. 여기서 올레길은 오른쪽으로 갈리고, 출발지로 돌아오려면 왼쪽 길을 따릅니다. 억새가 무성한 둘레길을 따라 나오다 보면 통오름 분화구에 들어선 널찍한 밭도 만납니다.
독자봉
-봉수대 터와 전망대를 갖춘 오름
통오름 바로 남쪽에 솟은 독자봉은 해발고도 159.3m, 오름 자체의 높이가 79m로 통오름에 비해 제법 당찬 산세를 가졌습니다. 우뚝 솟은 모양이 외로워 보여서 ‘독자봉(獨子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예로부터 주변 마을에 외아들을 둔 집이 많은 게 이 오름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오름을 ‘독자망(獨子望)’ 또는 ‘망오름’이라고 부릅니다. 조선시대에 봉수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독자봉 또한 통오름처럼 말굽형 분화구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분화구가 서쪽으로 트인 통오름과는 반대로 동남향으로 열렸습니다. 그래서 두 오름은 서로 등을 맞대고 돌아앉은 모양새를 하고 있죠.
독자봉 들머리는 신산교차로에서 신산리 쪽으로 350m쯤 내려선 도로 옆입니다. 신산리 주민들이 자주 찾는 곳이라서 들머리엔 번듯한 주차장에 화장실, 운동시설까지 마련되었습니다. 매화나무와 소나무, 여러 늘푸른나무가 섞인 숲 사이로 통나무 계단이 능선에 닿기까지 이어집니다.
통신사 기지국을 지나 조금 더 간 곳에 북쪽을 조망하는 전망대가 나옵니다. 전망대에 오르니 건너편의 통오름부터 유건에오름, 모구악, 백약이, 좌보미, 다랑쉬 같은 제주 동쪽의 내로라 하는 오름들이 하늘금을 이루며 널려 있습니다. 북동쪽으론 바다를 맞대고 솟은 대수산봉과 두산봉, 성산일출봉이 또렷하고, 섭지코지도 훤합니다. 동남쪽으로 도드라져 보이는 하얀 탑은 성산기상대입니다.
소나무 사이로 난 능선길은 평탄하고 쾌적합니다. 왼쪽에 움푹 파인 분화구를 끼고 부드럽게 돌아간 건너편에서 독특한 모양을 한 봉우리를 만나는데, 독자봉수터입니다. 지름 20m는 족히 될 만한 너른 원형의 둑이 이중 구조로 둘려졌고, 가운데가 봉긋합니다. 전체가 억새로 뒤덮였습니다. 이곳 독자봉수는 서쪽의 남산봉수, 북동쪽의 수산봉수와 교신했다고 합니다.
봉수대를 지나면서 길은 부드러운 내리막입니다. 얼마 후 제주올레 3코스가 오른쪽으로 갈리고, 독자봉 탐방로는 왼쪽으로 향합니다. 내려선 곳에서 굼부리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보입니다. ‘굼부리 쉼터’라 적힌 이정표도 보여 잠시 들어섰다가 웃자란 수풀 때문에 돌아섰습니다.
제15강 2일차 / 5월 23일(토)
<삼형제샛오름, 1100고지 습지, 거린사슴오름>
삼형제샛오름
-1113m 고봉의 위용
제주시에서 한라산 서쪽 자락을 타고 넘어 서귀포시 중문으로 가는 산간도로인 1139번 지방도를 사람들은 자주 ‘1100도로’라고 부릅니다. 한라산의 울창한 숲 사이를 이리저리 굽어 돌던 길이 해발 1100m 고지대까지 올랐다가 내려서기 때문입니다. 이 길은 한라산 산행코스 중 가장 인기 좋은 ‘영실~윗세오름~어리목 코스’의 들머리로 이어지기에 많은 관광객이 찾습니다. 고지대의 울창한 숲을 관통하기에 가을철 단풍이 아름답고, 봄의 새싹과 여름의 신록 또한 환상적이어서 드라이브 코스로도 인기가 좋습니다.
해발 1100m 지점에는 ‘1100고지휴게소’와 제주가 낳은 세계적인 산악인인 고상돈을 기념하는 ‘고상돈 상’, 한 사냥꾼과 백록담에 얽힌 전설을 상징하는 ‘백록 상’, ‘1100고지 습지’까지 있어서 고개를 넘던 많은 이들이 쉬어가는 곳이기도 하죠.
이 1100고지에서 서쪽으로 세 개의 오름이 겹치며 늘어서 있는데, 바로 삼형제오름입니다. 세 개의 오름은 거의 같은 구조와 형태, 크기를 보여줍니다. 쌍둥이화산이라고 해도 될 정도죠. 1100고지휴게소가 들어선 바로 뒤의 산이 삼형제오름 중 맞이인 큰오름(1143m)입니다. 큰오름 뒤로 샛오름(1113m)과 족은오름(1075m)이 겹치며 동서로 나란히 서 있습니다. 영실에서 윗세오름으로 오르며 영실분화구를 지날 때 뒤돌아보면 이 점을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삼형제오름은 달리 ‘세오름’이라고도 부릅니다. 한라산 백록담 서쪽에도 세 개의 오름이 동서로 나란히 누워있습니다. 아래에 있는 삼형제오름의 세 개 오름에 비해 위쪽에 있어서 ‘윗세오름’이라 부르죠. 신기하게도 삼형제오름과 윗세오름은 모두 백록담에서 정서(正西)로 이은 선상에 있습니다.
삼형제오름 주변은 모두 무인지경의 제주 원시림을 이룹니다. 1100도로에 인접한 삼형제큰오름엔 방송사 송신탑이 들어서 있어서 출입이 통제됩니다. 막내인 삼형제족은오름은 아예 길조차 없죠. 중간의 삼형제샛오름만 희미한 숲길이 실처럼 이어집니다.
1100도로상의 한 지점에서 접근하는 샛오름은 울창한 숲 사이로 좁디좁은 길이 끊어질 듯 이어집니다. 눈썰미가 여간 아니면 길을 잃기 십상이죠. 정강이 높이로 자란 제주조릿대를 헤치며 수많은 작은 계곡과 습지대를 품은 빽빽한 숲을 지나야 합니다. 하늘을 덮은 제주 산간 원시림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영실 입구에서 돌오름과 영아리를 찾아갔을 때 만났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자연 그대로의 숲입니다.
이 숲을 걷노라면 한 마리의 물고기가 되어 짙푸른 신록의 바다를 자유로이 헤엄치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다행인 것은 길이 험하거나 가파르지 않아서 숲의 정취를 오롯이 만끽하며 걸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정표나 아무런 인공 시설이 없는 숲속을 헤치며 2.5km쯤 간 곳에서 샛오름 정상을 만납니다. 넓지 않은 정상부지만 조망 하나만큼은 압권입니다. 사방으로 거대한 숲의 바다가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바로 앞으로 삼형제큰오름이 적나라하고, 그 너머로 영실분화구와 한라산이 장엄한 산세로 다가옵니다. 남서쪽으로는 돌오름과 중산간 숲을 지나 군산, 월라봉, 산방산이 우뚝한 가운데 송악산과 형제섬, 가파도도 또렷하게 가늠됩니다. 5월이면 낮은 지대에서 한라산 정상으로 번져가는 환상적인 신록의 스펙트럼을 감상할 수 있을 겁니다.
하산은 들어섰던 길을 그대로 되짚어서 나와야 합니다. 왕복 5km의 짧지 않은 길이지만 제주 원시림의 아름다움과 샛오름 정상에서 조망하는 그 숲의 바다는 충분히 감동적입니다.
1100고지 습지
-람사르 습지에 등록된 곳
1100고지휴게소 앞에 한라산 고원지대에 형성된 1100고지 습지가 있습니다. 이곳은 지표수가 흔치 않은 한라산의 지질적인 특성을 고려할 때 무척 중요한 곳입니다. 멸종위기 야생식물과 고유생물, 경관과 지질 등 보전할 가치가 뛰어나서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으며, 람사르 습지로도 등록된 귀한 곳입니다. 습지 둘레를 따라 데크가 깔린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총 길이는 675m며, 둘러보는데 30분 남짓 걸립니다.
거린사슴오름
-한라산의 경계에 솟은 서귀포 전망대
영실 입구와 서귀포자연휴양림을 지나온 1100도로는 서서히 내리막길을 달리다가 급히 꺾이며 서귀포시로 내려섭니다. 이 꺾이는 지점에 ‘거린사슴전망대’가 있습니다. 한라산의 원시림과 드넓은 목야지가 경계를 이루는 곳이죠. 여기서 바라보는 서귀포시와 제주 남쪽 바다는 놓쳐서는 안 될 명풍광입니다. 망원경도 있어서 먼 지점을 살피기도 좋습니다.
거린사슴전망대 바로 뒷산이 거린사슴오름입니다. 해발고도 743m에 오름 자체의 높이가 100m쯤으로, 가운데 주봉을 중심으로 동북쪽에 ‘갯머리오름’이라는 이름을 가진 야트막한 봉우리가 있고, 남서쪽에도 봉우리 하나가 더 있습니다. 즉 북동에서 남서로 길게 발달한 산등성이를 가진 오름입니다. 북동쪽 봉우리와 주봉 사이로 1100도로가 지납니다.
이 모양새가 사슴이 온몸을 뻗어 뛰어가는 자세를 닮았다고 ‘거린사슴’이라 부르는가 하면, 옛날에 이 오름에서 사슴을 길렀다는 이야기도 있어서 이런 이름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거린’이라는 말은 ‘갈리다’의 옛말인 ‘거리다’에서 온 것으로, 오름을 이룬 세 개의 봉우리가 서로 갈라져 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거린사슴전망대 한쪽에서 길이 이어집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길이 정상까지 계속되기에 오르는 길이 편치는 않습니다. 여느 오름 탐방로보다 가파른 편이어서 줄도 매어져 있습니다. 소나무와 활엽수, 잡목이 뒤섞였다가 삼나무숲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길지 않습니다. 넉넉잡아 10여 분이면 정상에 닿습니다.
아무런 시설이 없는 정상은 넓지 않은 터에 바위가 돌출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숲의 바다인 서귀포자연휴양림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휴양림 안에 있는 오름인 법정악도 훤하죠. 그리고 그 뒤로 한라산이 우뚝합니다. 백록담과 영실분화구, 사라오름도 또렷하고, 남동쪽으로 고근산과 서귀포 앞바다도 멋들어집니다.
오름학교 제14강은 2020년 5월 22(금)~23(토)일, 1박2일로 제주도에서 열립니다. 상세한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08:50 제주공항 1층 3번 게이트 오른쪽(공항 내부임)에서 집합합니다, 참가자는 각자 항공편, 배편을 이용해 제주공항에 도착합니다. 정시에 출발하니 집합시각 엄수 바랍니다. 참가신청 전에 교통편을 반드시 체크해주세요^^ 제14강 여는 모임. 참가지 확인과 인사 나누기
09:00 버스 탑승, 공항 출발
-세미오름
-낭끼오름
-점심식사
-‘오늘은 녹차밭’ 동굴
-녹산유채(지움)
-통오름
-독자봉
18:00 하산 후 저녁식사. 숙소 도착(새마을금고 제주연수원. 다인실)
<5월 23일(토)>
07:00 아침식사
08:00 숙소 출발
-1100고지와 1100고지 습지 탐방
-삼형제샛오름
-삼형제샛오름 탐방 마침(점심식사는 도시락 제공)
-거린사슴전망대와 거린사슴오름
-거린사슴오름 하산, 공항 이동
15:50 제주공항. 제14강 마무리모임. 해산
※당일 현지 상황에 따라 코스나 대상지가 변경될 수 있습니다.
※돌아가는 항공편은 17:00 이후 출발편으로 예약하시기 바랍니다.
준비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분증(항공탑승용. 반드시 지참하세요!)
*봄 트레킹에 적합한 복장(등산복, 등산화, 배낭, 스패츠, 장갑, 목도리나 버프, 따듯한 외투), 스틱(쌍으로), 무릎보호대, 방수방풍의, 모자, 선글라스, 수통, 우의(+접이식 우산), 따뜻한 여벌옷(여벌양말), 간식, 자외선차단제, 헤드랜턴(또는 손전등), 세면도구, 세수수건, 개인용 겁, 필기도구 등(기본상비약은 준비됨)
*당일 반드시 마스크 착용, 꼼꼼하게 손씻기, 기침·재채기는 옷소매로 가리기를 지켜주세요!
<참가신청 안내>
★포털사이트 검색창에서 '인문학습원'을 검색해 홈페이지로 들어오세요. 유사 '인문학습원'들이 있으니 검색에 착오없으시기 바라며 꼭 인문학습원(huschool)을 확인하세요(기사에 전화번호, 웹주소, 참가비, 링크 사용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이 있어 이리 하니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홈페이지에서 '학교소개'로 들어와 '오름학교‘의 5월 기사를 찾으시면 뒷부분에 상세한 참가신청 안내가 되어 있습니다^^
★인문학습원 홈페이지를 방문하시면 참가하실 수 있는 여러 학교들에 관한 정보가 있으니 참고하세요. 회원 가입하시고 메일 주소 남기시면 각 학교 개강과 해외캠프 프로그램 정보를 바로바로 배달해드립니다^^
★오름학교는 생활 속의 인문학 체험공동체인 인문학습원(대표 이근성)이 지원합니다.
이승태 교장선생님은 캠핑과 등산, 트레킹을 전문으로 하는 여행작가입니다. 한국여행작가협회 정회원으로, 그동안 산악전문지 <사람과산> 기자를 거쳐 편집장을 지냈고, 그 시절 우리나라 산줄기 답사를 위한 등산지도 가이드북인 <1대간9정맥 종주지도집>과 <한국100명산 등산지도집>, 국립공원 탐방안내서인 <북한산국립공원>, <지리산>, <설악산>을 제작했습니다. 2012년에는 일본 큐슈 지역의 대표적인 산 열다섯 곳을 소개한 산행보고 프로그램인 <마운틴TV>의 ‘큐슈의 산(9부작)’에 출연했으며, 일본 큐슈올레 전 구간을 취재했습니다. 현재 <한국관광공사> ‘이 달의 걷기길’ 선정위원이자 취재작가, 한국여행작가협회 부회장으로 협회에서 진행하는 ‘여행작가학교’ 강사진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동아일보> <화광신문>을 비롯한 여러 매체와 사보에 여행기사를 기고 중입니다.
2013년부터 제주 오름에 빠져 툭하면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으며, 그동안 여러 매체에 오름에 관한 기사를 기고했습니다. 2018년에 오름 트레킹 안내서인 <제주 오름>(가칭)을 출간할 계획입니다. 지은 책으로는 <북한산 둘레길 걷기여행> <캠핑 주말여행 코스북>(공저), <걸어유 충남도보여행>(공저)이 있습니다.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오름학교>를 여는 취지를 들어봅니다.
올라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세상
화산섬 제주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오름이 모여 있습니다. 그 수가 자그마치 368개라고 하니 매일 하나씩 올라도 한 해가 모자랄 정도죠. 제주 섬 어느 곳을 가도 오름이 있고, 그 오름에 기대어 마을이 있습니다. 그 오름으로 억새를 베러 다니고, 거기서 고사리를 꺾으며 제주인들은 살아왔습니다. 오죽했으면 제주 사람들이 ‘오름에서 태어나 오름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을까요! 오름은 제주의 마을과 마을을 형성하는 모태가 되었습니다. 각 오름에는 제주 사람들이 떠받들던 신들이 자리 잡고 있고, 오름과 그 주변으로 넓게 펼쳐진 거친 황무지인 ‘뱅듸(버덩)’는 예부터 말과 소를 키우는 터전이었습니다.
제 경험으로 볼 때 제주 풍광의 아름다움 80퍼센트쯤은 오름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제주 오름은 ‘육지’의 숱한 산들과 달리 오르기가 편하고, 어지간한 오름을 둘러보는데 한두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또 험한 곳이 거의 없으니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그리 부담이 없죠. 무엇보다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오름 자체가 그렇고, 오름 능선에 올라 조망하는 사방의 풍광은 숨을 멎게 할 정도입니다. 소와 말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오름 능선에 아무렇게나 앉아 제주의 바람을 느끼는 행복을 무엇에 비할까요! 기생화산인 오름은 대부분 분화구를 가졌고, 그 형태 또한 제각각입니다. 그 독특한 지형을 살피는 것 또한 흥미진진한 즐거움입니다.
다시 ‘오름나그네’가 되어
368개의 오름은 한라산 백록담 바로 아래의 방애오름, 윗세오름을 시작으로 바닷가에 솟은 성산일출봉과 송악산, 비양도와 사라봉에 이르기까지 사방으로 흩어져 있습니다. 제주 동쪽 송당리 일대엔 가장 많은 오름이 분포해 오름들이 겹치며 산너울처럼 펼쳐지는 신비로운 풍광을 보여줍니다. 그에 비해 서쪽의 오름들은 하나씩 뚝뚝 떨어져 있죠. 그러나 저마다 빼어나 찾는 걸음이 즐겁습니다.
1927년 제주에서 태어나 1995년, 일찍 생을 마감하기까지 제주의 산악인이자 언론인으로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고(故) 김종철 선생은 제주의 모든 오름을 답사한 기록을 <오름나그네>라는 세 권의 책으로 남겼습니다. 지금까지도 오름의 바이블로 통하는 귀한 책입니다. <오름나그네>의 책장을 넘기다가 오름을 향한 그의 열정과 사랑, 감동과 호흡이 전해져 가슴 뜨거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래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려 합니다. 오를 수 있는 모든 오름을 올라보는 게 목표입니다. 모두 함께 ‘오름나그네’가 되어!
프레시안 알림 (huschool@naver.com)
▶독자가 프레시안을 지킵니다 [프레시안 조합원 가입하기]
[프레시안 페이스북][프레시안 모바일 웹]
Copyright © 프레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