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온라인 강의 내몰려.. 졸지에 유튜버 된 60대 교수님들

곽창렬 기자 2020. 3. 1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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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전면 인터넷강의 대학가 야단법석
일러스트= 안병현

“마이크 음질이 좋지 않은 것 같은데요.” “파워포인트에 내 필기(筆記)를 입히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난 10일 서울의 A대 문과대학 강의실. 이 대학 이모(63) 교수가 노트북 앞에 앉았다. 16일에 열릴 올해 첫 강의를 준비하려는 것이다. 노트북에 웹캠이 달려 있지만 얼굴 촬영은 피한다. '카메라 공포증' 때문이다. 이 교수는 강의 자료 슬라이드를 넘기며 녹음을 시작했다. 50분짜리 강의를 녹음하는 데 걸린 시간은 약 1시간. 컴맹에 가까운 그 나름대로 선방한 비결은 '디지털 조교' 덕분. A대는 교수들이 온라인 강의를 쉽게 하도록 디지털 기기와 동영상 촬영 등에 능숙한 학생 100명을 선발했다. 이 교수보다 마흔 살 어린 조교 B(23)에게 파워포인트 강의 자료에 필기를 입히는 방법을 배웠다. 수업 녹음을 마친 교수에게 소감을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나는 IT, 디지털에는 '젬병'이에요. 육십이 넘어서,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나이거든."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진 뒤 교육부는 각 대학에 온라인 수업을 하라는 학사 운영 권고안을 발표했다. 대학은 온라인 강의를 많게는 수천 건 준비하느라 야단법석이다. 30여 년간 분필과 지우개로 칠판에 썼다 지웠던 60대 인문대 교수까지 '유튜버(동영상 플랫폼 유튜브에 직접 제작한 영상을 게시·공유하는 사람)'가 돼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아무튼, 주말'이 유튜버가 된 교수들 목소리를 들었다.

준비 안 된 교수들 식은땀

교수들은 대개 첫 수업에는 강의 자료를 나눠주고, 한 학기 수업을 간략히 소개하고 나서 일찍 끝낸다. 하지만 올해 모습은 다르다. 개강과 동시에 최소 2주는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하는 대학이 대부분이다. 연세대는 16일 개강 이후 최소 2주간 세 캠퍼스(서울·원주·송도)에서 진행하는 8000여 강의를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지난 9일 개강한 성균관대는 4100여 수업을 온라인 강의로 대체하고 있다.

갑작스럽게 온라인 강의로 내몰린 교수들은 적잖이 당황한다. 나이가 든 교수들의 고충은 더 크다. 정년을 1년 반가량 앞둔 한 사립대학 김모(63) 교수는 "일단 조교 도움을 받아 마이크를 채우고, 파워포인트에 목소리를 입히는 50분짜리 강의를 힘들게 완성했다"며 "집에 갈 때가 되니 정말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영상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는 성황이다. 영상 연출·제작사 대표 김모씨는 "급박하게 온라인 강의 영상을 만들어야 하는 교수님들이 '한번 와서 녹화 세팅만 봐달라'는 문의가 많다"며 "그런데 대부분 속내는 자기 강의 영상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특히 나이 많은 교수님이 많다"고 말했다. "1시간 분량의 강의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데 10만원 정도다. 다만 영상 질에 따라 비용은 천차만별"이라고 덧붙였다.

주요 대학의 모든 교수가 의무적으로 온라인 강의를 해야 하는 것은 우리나라 대학 교육이 시작한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도 방송통신대, 사이버대 등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는 대학이 있지만, 수업 수는 극히 적다. 한국대학교수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일반 대학 213곳의 온라인 강의 비율은 0.9%에 불과했다. 서강대는 작년 한 해 동안 온라인 강의가 하나도 없었고, 고려대는 6건, 연세대는 7건이었다. 51세의 한 사립대학 교수는 "이전에도 기술적으로는 가능했지만 두렵기도 하고, 굳이 필요가 없어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온라인 강의를 전체 강의의 20% 이하로 제한해야 한다'는 교육부 지침도 한몫했다. 강의가 부실하면 안 된다는 취지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교육부는 이번 학기에 한해 이런 지침을 폐기했다.

젊은 교수는 생중계, 노교수는 사전 녹음

대학들은 대체로 ▲사전 녹화를 하거나 ▲실시간 스트리밍 생중계로 하거나 ▲사전 녹음을 하는 등 세 방법 가운데 한 가지를 골라 온라인 강의를 하도록 하고 있다.

①사전 녹화하는 교수

얼굴과 목소리가 나오는 동영상 강의를 미리 제작해 올리겠다는 교수들이 있다. 여기에는 안전하게 사전 제작하겠다는 의도가 깔렸다. 서울 사립대 이모 교수는 16일 강의 시작을 맞아, 실제 강의실에서 조교의 스마트폰을 이용해 50분짜리 강의를 녹화했다. 이 교수는 "해외 강의를 온라인으로 해본 적이 있어서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은 두렵지 않다"며 "생중계로 수업하다 실수하면 돌이킬 수가 없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사전에 만들어 놓는 게 낫다는 판단에 녹화하게 됐다"고 말했다. 성균관대가 전체 교수들에게 얼굴이 나오는 녹화나 생중계 수업 등 두 방식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더니 94%가량이 사전 녹화 방식으로 하겠다고 답했다.

②실시간 생중계로 강의하는 교수

비교적 젊은 교수들이 생중계 강의를 선호한다. 40대 중반인 연세대 이모 교수는 이번 학기에 맡은 세 수업 모두를 실시간 생중계 방식으로 2주간 강의하기로 했다. 강의 장소는 자기 연구실이다. 20인치짜리 컴퓨터 모니터에 달린 웹캠과 화상 회의 프로그램을 이용해 수업을 진행한다. 수업 화면 왼쪽에는 강의 자료를 띄워 놓는다. 오른쪽에는 자신을 비롯해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 얼굴이 모두 나오게 돼 있다. 이 교수는 "평소 다른 국제회의 등에서 온라인 수업을 해봤기 때문에 거부감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40대인 한 교수는 "제대로 온라인 강의를 하려면 각종 그래픽과 자막 등을 입히는 작업 등이 필요한데 이러려면 상당한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다"며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나마 학생과 호흡하려면 실시간으로 학생들과 얼굴을 보는 방식이 낫다"고 했다.

③강의 자료에 목소리만 입히는 교수

일부 교수는 파워포인트 강의 자료에 목소리를 '더빙'하는 방식을 택한다. 대체로 나이가 있거나 카메라 공포증이 있는 교수들이 선호한다. 여미영 연세대 국제대학 문화예술경영 겸임교수도 더빙을 선택했다. 그는 "친구들과 사진 찍기도 싫어하는 편이다. 몇 천 명 앞에서 강의해도 떨지 않지만, 카메라로 강의를 찍는 건 또 다른 부담"이라고 했다. 실제 연세대는 교내 두 곳에 방송 촬영 스튜디오를 개방해 강의 녹화를 원하는 교수 신청을 받았지만, 이를 이용한 사람은 10명이 채 안 됐다.

녹화·녹음 퍼질까 노심초사… '오프더레코드' 발언 손사래

교수들은 온라인 강의의 가장 큰 문제로 강의 질(質)을 꼽았다. 특히 정치나 사회 문제를 다루는 문과 계열 교수의 걱정이 컸다. 한 사립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정치학 수업을 제대로 하려면 반드시 현재 국내외 정치 상황을 언급해야 하는데, 온라인 수업은 녹화와 녹음이 돼서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꺼려진다"며 "밋밋한 이론만 얘기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수업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말실수를 걱정하는 교수도 있다. 사립대학의 한 보직 교수는 "오프라인 강의는 녹화가 안 되고, 한번 하면 잊어버리기 때문에 약간 말실수나 이런 게 용납되지만, 온라인 수업은 영원히 남기 때문에 교수들의 스트레스가 상당하다"고 했다.

일부는 저작권 문제를 우려했다. 동영상으로 강의를 제작하다 보면 강의 자료에 인용하는 각종 자료의 저작권 시비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소재 대학에서 디자인을 가르치는 임모 교수는 "스페인 디자이너 마르티 귀세는 자기 작품이 잡지에 실릴 때마다 100달러씩 받기도 한다. 디자인 작품을 화면에 띄워서 설명하기가 꺼려진다"고 말했다.

오프라인 강의보다 훨씬 더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는 점을 호소하는 교수도 있다. 연세대의 한 교수는 "벽에 대고 수업하는 건데, 완벽하게 준비하지 않고 녹화하거나 생중계하다 자칫 '저 교수 수업 한번 돌려 봐. 실력이 형편없어'라는 비판을 들을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급하게 준비한 강의에 자막이나 수어 통역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9일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등 장애인 시민 단체는 "코로나19 같은 재난 상황에 청각장애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한 기준을 마련하라"고 주장했다.

일부 지방대 등 재정 상황이 좋지 않은 대학에는 온라인 강의 자체가 '그림의 떡'이다. 온라인 강의를 위해서는 대학의 서버 용량을 크게 늘리고, 카메라나 노트북, 마이크 장비 등을 갖춰야 하는데 여기에는 수억원이 들기 때문이다. 전북의 한 사립대 교수는 "서울에 있는 대학은 조교도 지원한다고 하는데 우리 학교는 유튜브 강의를 찍든 주말에 나와 못 한 수업을 보충하든 교수가 알아서 처리하라고 한다. 답답한 상황"이라고 했다.

다만 이번을 기회 삼아 교수들이 온라인 수업에 잘 적응하면 앞으로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조창환 교수는 "교수들이 온라인 강의에 익숙해지면, 국내 다른 대학이나 외국 대학과 온라인으로 공동 강의를 하는 등 강의에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MIT 교수의 인공지능 수업 들어볼까… 에드엑스·코세라 8000개 무료강좌

한국형 무크도 745개 강좌 하버드·스탠퍼드대 등 해외 주요 대학은 대학생뿐 아니라 대중도 들을 수 있는 온라인 강의를 열고 있다. 이를 '무크(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s)'라고 부른다. 하버드대에 다니지 않아도 국가나 지역에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하버드 석학의 강의를 접할 수 있다. 인터넷과 강의를 볼 수 있는 디지털 기기만 있으면 된다.

하버드대 등 해외 대학은 온라인 강의 플랫폼 에드엑스를 통해 프로그래밍 강의를 열었다(위). 한국형 온라인 강의 플랫폼 ‘K-MOOC’에서는 여러 대학의 1학기 강의를 진행한다(아래).홈페이지 캡처

2012년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는 공동으로 온라인 강의 플랫폼인 에드엑스(EdX)를 설립했다. 간단한 회원 가입 절차를 밟고, 등록을 하면 수업을 들을 수 있다. 무료 강의가 대다수다. 현재 법학·수학·화학·심리학·경제학 등 4000여 개 강의가 개설돼 있다. 수업 대부분은 영어로 진행된다. 스탠퍼드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등이 만든 '코세라(Coursera)'는 190개 이상의 주요 대학과 기업이 참여해 4000개 이상의 강의를 진행한다. 구글 연구원 출신 인사 등이 만든 '유다시티(Udacity)'도 온라인 수업을 제공한다.

우리나라도 교육부 주관으로 한국형 온라인 강의인 ‘K-MOOC(www. kmooc.kr)’ 를 구축했다. 학생증 없이도 들을 수 있는 대중 강의다. 교육부에 따르면 이 서비스는 2015년 최초 27개 강의로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92개 대학·기관이 참여해 수업 745개를 열었다. 모두 무료다. 지난해까지 누적 회원 수는 50만5000여명, 누적 수강 신청 수는 117만건이다. 수강 신청이 가장 많았던 수업은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의 ‘문학과 영화를 통한 법의 이해’(2766건)였다. 수강생 만족도가 가장 높은 수업은 전우영 충남대 교수의 ‘심리학 START’였다. 교육부는 올해 ‘K-MOOC’ 강의를 900개 이상 늘리겠다고 했다. 특히 미래 산업인 인공지능(AI) 분야의 수업은 20개 이상 집중적으로 개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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