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준의 의학노트] "그게 바로 우리가 이 직업을 선택했던 이유입니다"

입력 2020. 3. 4. 00:35 수정 2020. 3. 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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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준 서울대 의대교수·의학교육실장

2002년 사스, 2009년 신종 플루,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 2015년 메르스, 그리고 현재 진행형인 코로나바이러스19. 변종 바이러스로 인한 위협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인류가 처음 맞닥뜨리는 전염병과 벌이는 사투의 최전선에는 언제나 의료인들이 있었고, 그들의 헌신과 희생 덕에 어떤 도전이든 결국 극복해왔다.

2014년 7월 어느 날, 에볼라 바이러스가 한창 번지던 서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로부터 온 여행객 한 명이 나이지리아의 라고스 공항에 내리자마자 탈진해 쓰러졌다. 이 환자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고 말라리아라는 잠정 진단이 내려졌는데, 다음 날 출근하여 환자를 꼼꼼히 진찰한 의사 아메요 아다데보는 에볼라 감염을 의심하여 즉시 그를 격리했다. 결국 확진된 환자는 불행히도 며칠 뒤에 사망했는데, 더 안타까운 것은 그 환자를 돌보다가 에볼라에 감염된 아다데보 역시 얼마 후 사망했다는 사실이다. 나이지리아에서 그녀는 지금도 에볼라로부터 나라를 지킨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이번에는 미국인 의사 이야기다. 켄트 브랜틀리는 서른두 살이던 2013년부터 라이베리아에서 의료 봉사를 하고 있었다. 치사율이 90%라고 알려졌던 에볼라가 이듬해 그 나라를 덮친다. 그가 일하던 지역에서 수많은 에볼라 환자를 돌보는 의사는 단 두 명뿐이었는데, 2014년 여름 결국 자신도 감염되고 말았다. 브랜틀리는 입원을 거부하는 에볼라 환자의 딸과 얘기하느라 보호 장비를 벗었을 때 감염됐을 것으로 짐작했다. 체온이 40도가 넘어서는 등 상태가 악화하자 그가 소속된 단체에서 어렵사리 개발단계의 치료제를 구해 그에게 보냈다. 한 사람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분량이었다. 그는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함께 일하다 감염돼 상태가 더 나빴던 자원봉사자 낸시 라이트볼에게 치료제를 양보했다.

코로나19 의심 환자와 함께 선별진료소 대기실로 들어가고 있는 의료진. [연합뉴스]

그럼에도 두 사람의 상태가 나아지지 않자 결국 미국 정부는 이들의 본국 이송을 결정했다. 하지만 그들이 에볼라 바이러스를 들여와 창궐하게 할 것이라는 억측으로 일부 미국 국민들이 맹렬히 반대하는 것이 큰 문제였는데, 지금 미국 대통령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두 사람이 치료받고 있던 에모리 대학병원의 간호사 수전 그랜트는 2014년 8월 워싱턴 포스트에 ‘저는 에모리 대학병원의 수간호사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에볼라 환자의 미국 이송을 지지했던 이유입니다’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싣는다. 글 일부를 옮긴다.

“의료인으로서 우리가 훈련받았던 것이 바로 이런 경우를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우리에게 왜 그렇게 위험한 환자의 치료에 참여했냐고 묻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바로 우리가 이 직업을 선택한 이유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환자들의 진료에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간호사 두 명은 휴가까지 취소하며 우리 팀의 일원이 됐습니다.”

지난 2015년, 메르스 환자가 속출, 내가 일하는 병원의 격리병상이 위중한 환자들로 꽉 채워졌을 때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감염될 경우 사망확률이 30%가 넘는 메르스 환자들을 돌볼 의사들과 간호사들을 병원 안에서 모집했는데, 순식간에 자원자들로 진료팀이 구성됐다. 어느 후배 의사는 인공호흡기를 사용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던 환자의 방에 매일 몇 시간씩 머물러 동료들에게 걱정을 끼치기도 했다. 아무리 보호장비를 갖춰도 환자의 방에 오래 머물수록 감염의 위험은 높아진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온 국민이 근심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이 위기를 잘 극복해낼 것으로 믿는다. 그건 이 위중한 상황을 생색내거나, 정쟁이나 매명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다. 비록 알아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환자의 곁을 지키는 이들이 있고, 밀려드는 검체를 처리하기 위해 새벽까지 땀 흘리는 이들이 있고, 위험을 감수하며 매일 병실에 들어가 흉부X선을 촬영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 모두의 건투와 안녕을 빈다.

임재준 서울대 의대교수·의학교육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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