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MA 기술종속 털어내고 세계 첫 5G '스포트라이트' 받다

김은지 2020. 3. 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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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CDMA 세계 첫 상용화
음성 넘어 인터넷시대 막 올라
3G WCDMA, 모바일게임 등장
와이브로로 4G LTE 늦은 출발
5G 주도로 구겨진 자존심 회복

경제종합일간지 재창간 1년ㆍ창간 20년 통신, 5G를 주도하다

통신 분야의 첨단 기술과 장비 주도권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지난해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5G 상용화라는 축포를 쏘아 올렸다. 5G 킬러 서비스 제공을 위한 각계의 움직임이 분주한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가 6G 준비에 어떤 공을 들이고 있는지에 대한 국내외 관심도 막대하다. 5G가 태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지금이 6G 관련 기술 개발의 적기라고 보고, 한국이 6G 시대에도 리더십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6년 세계 최초 CDMA(2세대 이동통신) 상용화를 이루며 글로벌 시장에 큰 존재감을 드러냈다. 정작 퀄컴에 휴대폰과 장비, 네트워크 등 기술 종속이 되며 실질적인 과실은 얻지 못했단 평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CDMA 상용화 과정에서 우리 산업계와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가 얻은 경험과 자신감 등은 4세대 와이브로의 등장, 5G 세계 최초 상용화를 거치는 동안 통신 리더 국가의 위상을 다지는 거름이 됐다.

◇2G (CDMA), 존재감 드러냈지만 퀄컴 위세 커= 2G 이동통신 기술인 코드분할다중접속 'CDMA' 세계 최초 상용화는 우리나라 ICT 발전의 중요한 초석이 됐다. 그러나 그림자 역시 컸다. CDMA 상용화는 원천기술과 칩셋을 가지고 있는 퀄컴에 산업이 종속되는 기형 구조를 낳았기 때문이다. 퀄컴은 CDMA 상용화를 통해 한국과 연을 맺었다. CDMA 원천기술 보유업체였던 퀄컴은 당시 작은 벤처기업에 불과했지만 이를 계기로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기도 했다.

당시 국책연구기관인 ETRI가 퀄컴과 함께 CDMA 상용화 기술을 개발했으며 1994년 4월 17일 ETRI 6연구동 실험실에서 마침내 CDMA 시스템을 이용한 첫 통화에 성공했다. 2년 후인 1996년에는 세계 최초로 CDMA 상용화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로써 단순한 음성 통화 기능을 제공하던 1G 이동통신(1984, 아날로그 통신)에서 나아가 저속 인터넷, 문자 등의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CDMA를 통한 이동전화 상용 서비스는 SK텔레콤(당시 한국이동통신)이 처음 개시했다.

◇3G(WCDMA), 유심·모바일 게임의 등장=영상통화, 멀티미디어 콘텐츠 전송 등 '데이터 통신'의 시작으로 대표되는 광대역부호분할다중접속 'WCDMA'는 국내에서 2003년 상용화됐다. 유심의 등장, 모바일 게임 등도 WCDMA가 바꾼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WCDMA 세계 최초 상용화 타이틀은 2001년 일본이 NTT도코모를 통해 가져갔다. WCDMA 서비스는 지난 2003년 말 국내서 첫 서비스를 시작했으나 몇 년 동안 가입자들의 큰 반응을 이끌지는 못했었다.

초기에는 SK텔레콤과 KTF가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지 않았던 데다 커버리지 제한과 단말기 다변화 등이 이뤄지지 않아 부진이 이어졌다. 국내 사업자들은 WCDMA보단 기존 CDMA 시장에서의 마켓 리더십을 유지하는 쪽으로의 전략을 택했고, 2007년에 이르러서야 3G 확산 분위기가 국내에 일기 시작했다.

2007년 3월 KTF(현 KT에 통합)가 전국 서비스를 시작하고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치면서 가입자가 크게 늘기 시작했다. 이후 SK텔레콤도 전국 서비스 및 마케팅 경쟁에 가세하면서 대중의 관심도 커졌다. 이때 등장한 브랜드가 KTF의 쇼, SK텔레콤 T(티), LG유플러스 OZ(오즈)였으며, 특히 KTF 쇼는 "쇼를 하라"라는 카피로 뇌리에 각인되기도 했다. 현재 쇼와 오즈 브랜드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다만, 당시 LG유플러스는 경쟁사와 달리 WCDMA로의 전환을 하지 못했고, 대신에 2G인 CDMA를 개선해 2.5G라고 불리는 리버전A와 B를 구현했다. 당시 국내 통신 시장에서 LG유플러스는 하루라도 빨리 4G LTE로 전환해야 한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4G, 와이브로는 '뼈와 살'됐지만…LTE 시장 합류= 2009년부터 4G LTE로 글로벌 통신 시장의 판도가 변화했다. 고속·대용량 데이터 전송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동영상을 즉각적으로 전송할 수 있으며, 카카오톡 등이 스마트폰 무료 메신저 시대를 활짝 연 시기 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4G LTE 시대 늦은 출발로 자존심을 구겼다. 국내에서 주력한 기술은 와이브로였고, 와이브로는 삼성전자와 ETRI 주도로 개발돼 2006년 개시됐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발 빠른 와이브로 개발과 단말 개발에도 불구하고 5년 늦게 상용화된 LTE에 밀려 빛을 발하지 못했다.

세계는 LTE에 주목했고, 우리나라가 와이브로에 주목하는 사이 2009년 말 유럽 이동통신사 텔리아소네라가 LTE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한 템포 느린 LTE가 진행됐지만, 3세대까지 퀄컴이 주축이 됐던 이동통신 기술 진화에서 탈피해, 삼성전자 등 우리 기업이 주축이 돼 독자적인 이동통신 서비스가 가능해졌다는 의의는 가지게 됐다.

특히 이런 과정을 겪으며 축적한 OFDMA(직교주파수 분할 다중접속) TDD(기술과 시분할 송수신) 기술은 LTE에 이어 5G 구현에 있어 국내 통신 기술 개발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와이브로는 SK텔레콤과 KT에서 제공했으며, 엘지유플러스는 와이브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다. 당시 국내에서는 후발업체로서 기댈 곳이 없었던 LG유플러스가 절치부심하던 시기였기도 하다. LG유플러스는 2.5G 통신에서 진화한 LTE 상용화를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으며, 결국 2011년 7월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동시에 LTE를 상용화하게 된다. LG유플러스는 그동안의 설움을 씻어내듯 LTE 전국망을 가장 먼저 구축하면서 점유율을 확대에 비로소 시동을 걸었다. LG그룹에서 통신 사업에 대한 포기론이 거론돼왔지만 LTE 시대를 맞아 LG유플러스는 통신 시장에서 후발주자이지만 무시 못할 강자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구겨졌던 자존심 회복, 5G 세계 최초 상용화=LTE 시절 구겨졌던 자존심은 2019년 4월 세계 최초 5G 이동통신 상용화와 최초의 5G 스마트폰인 삼성전자 '갤럭시S10 5G' 를 통해 회복했다. 5G 전파는 이보다 앞선 2018년 12월 1일 서울과 수도권, 주요 광역시 거점에서 발사했다. 당초 국내 통신 3사는 5일에 세계 최초로 5G 상용서비스를 개시한다는 계획이었으나, 미국 버라이즌이 5G 상용화 일정을 4일(현지시간)로 급작스럽게 앞당기면서 개통 일정을 앞당겼다.

첩보작전을 방불케 한 아슬아슬한 차이로 세계 최초 5G 상용국가 타이틀을 따냈다. 5G 시대에는 AR(증강현실)과 VR(가상현실)로 대표되는 초실감 융합 미디어와 콘텐츠가 확대되고, 클라우드 게임 영역을 둘러싼 각축전 역시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실감 콘텐츠에 아울러 정부는 중점을 두고 있는 스마트공장, 자율주행차 , 스마트시티,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와 같은 5G 융합 산업 분야가 막대한 이익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5G 세계 최초 상용화란 업적을 달성했지만 5G 리더십을 계속해서 공고히 하게 위해서는 범정부 차원의 '5G+전략(5G 융합사업, B2B)'의 무조건적인 성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미 화웨이를 필두로 한 중국, 노키아를 내세운 유럽연합 등 보다 속도가 늦은 6G 패권 다툼에서도 기술 연구와 표준 확보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김은지기자 kej@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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