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판 질서에서 빠져나온 뒤, 미선 언니의 '무해한 웃음'이 빛난다 [이로사의 신콜렉터]
[경향신문] ㆍ박미선의 유튜브 채널 ‘미선임파서블’

그녀의 유튜브를 보는 일은 그저 54살 여성이
단독으로 뭔가에 도전하는 것을 지켜보는 일에 가깝다.
그녀는 평범한 젊은이들의 문화를 자기 스타일로 소화한다.
프로그램은 큰 자극적 멘트나 ‘드립’도 없이
박미선의 깔끔한 예능감에 기대어 편안하게 흘러갈 뿐이다
그녀의 능력은 ‘~느님’ ‘~형님’ 끼리끼리 줄서고
말하기 바쁜 예능판의 질서에서 빠져나온 뒤에야
비로소 온전한 에너지를 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 개그우먼 박미선이 출연 중인 TV프로그램은 JTBC의 건강 교양 프로그램 <미라클푸드> 하나다. 한때 MBC <세바퀴>, KBS2 <해피투게더> 등 주요 예능 프로그램의 보조 진행자로 오랫동안 자리했던 그녀는, 조금씩 TV에서 사라졌다. 2018년부터 양희은, 이지혜와 함께 진행을 맡아 좋은 평가를 받았던 시사교양 프로그램 KBS2 <거리의 만찬>에서도 지난 1월 하차했다.
박미선의 유튜브 채널 <미선임파서블>은 ‘일없는’ 박미선이 찾아낸 새로운 예능판이다. TV 밖 새로운 플랫폼에서의 시험은 성공의 길을 가고 있는 듯 보인다. ‘나이: 54세, 주요 경력: 미달이 엄마, 33년차 개그우먼, 요즘 것들 문화에 도전한다!’는 콘셉트의 이 웹 예능은 첫 영상을 올린 지 한 달 만에 13만 명의 구독자를 모았다.
유튜브에서의 박미선은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녀와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다. 같은 점은 박미선 특유의 무리 없이 자연스러운 입담이다. 그녀는 여전히 균형 잡혀 있고, 무례하지 않으며, 불편하지 않은 예능감을 선보인다. 다른 점은 댓글을 빌려 말하면 “방송보다 흑화”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할 말은 하고 눈치 보지 않는 박미선 특유의 재치 있는 캐릭터가 보다 자유로운 유튜브라는 플랫폼에 걸맞게 강화되었다. 그 결과 박미선은 54살 여성 예능인으로서 기존 판에 없던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발견이 단지 TV와 유튜브라는 플랫폼의 차이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지금의 박미선 캐릭터는 어쩌면 본래 그녀가 갖고 있던 것인데, 단지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 아닐까. 그것은 혹시 그녀에게 지금까지 단독으로 드리블을 할 기회가 없었거나, 혹은 기존 남성 중심의 방송판 자체가 현재의 홀로 선 환경과는 다른 맥락을 그녀에게 제공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주류 바깥의 새로운 판에서 비로소 이봉원의 아내도, 이유리의 엄마도, 남성 엠씨들의 몇 안 되는 ‘여성’ 보조 엠씨도 아닌 단독자로 서게 된 그녀는 이제 성취욕에 불탄다. ‘최애짤 월드컵’ 편에서 박미선은 ‘성욕 짤’에 관해 코멘트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미선임파서블>을 하면서 해보고 싶어, 해내고 싶고, 이기고 싶고. 뭔가 해내고 싶다는 성취욕. 어떤 성욕보다 좋아.(웃음)”
■ 미선의 미션
<미선임파서블>이 많은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올초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벌인 ‘세배 이벤트’ 때문이었다. 박미선은 한복을 차려입고 병풍과 방석을 들고 이동하며 세배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 자리를 깔고 앉아 세배를 받고 덕담을 건넸다. 세뱃돈으로 그냥 절은 1만원, 한복 입고 절하면 3만원, ‘그랜절’(물구나무서서 하는 절)에는 5만원을 내줬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렸고 이 이벤트는 ‘박미선 파산각’, ‘그랜절 세배’와 같은 ‘짤’을 중심으로 화제가 됐다.
그러나 <미선임파서블>이 단기간에 인기를 끌게 된 것이 비단 세배 이벤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처음 <미선임파서블>을 볼 때는 다른 많은 유튜브 콘텐츠들과 달리 너무 편안해서 이렇게 해도 되나 싶었을 정도로, 이 프로그램에는 별다른 설정도 콘셉트도 없다. ‘박미선이 젊은이들의 문화에 도전한다’는 것이 전부다.
그녀의 유튜브를 보는 일은 그저 54살 여성이 단독으로 뭔가에 도전하는 것을 지켜보는 일에 가깝다. 대단히 어려운 미션도 아니다. 그녀는 공유 전동 킥보드 타기, 코스프레 하기, 실내 스카이다이빙 하기, 링피트 게임하며 운동하기, 오락실에서 게임하기 등 평범한 젊은이들의 다양한 문화를 자기 스타일로 소화한다. 프로그램은 9~10분 동안 큰 자극적 멘트나 ‘드립’도 없이 박미선의 오랜 방송생활로 다져진 깔끔한 예능감에 기대어 편안하게 흘러갈 뿐이다.
다만 늘 ‘노잼’ 개그우먼으로 명명됐던 박미선은 여기서 조금 다른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녀는 중년의 나이지만 모든 것에 열심이며, 처음 접하는 것도 척척 해내는 매력을 선보인다. 스튜디오에서는 수많은 자신의 ‘짤’에 대한 솔직하고 재치 있는 입담으로 구독자를 유혹하고, 현장에서는 일반인들 사이로 걸어 들어가 그들과 잘 어울린다. 특유의 ‘큰 언니’ 같은 ‘54금’ 입담을 쉴 새 없이 펼쳐놓는다.
그렇게 그녀의 ‘능력’은, ‘~느님’ ‘~형님’을 중심으로 끼리끼리 줄을 서고, 자극적으로 남을 헐뜯거나 깎아내리는 것에 익숙하고, 듣지 않고 말하기 바쁜 예능판의 질서에서 빠져나온 뒤에야 비로소 온전한 에너지를 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이 같은 캐릭터를 기다려온 누군가에게 마음 편히 웃을 수 있는 무해한 웃음, 기존 TV에서 보아온 50대 여성 예능인 박미선의 전형성을 깨는 전복적인 웃음을 선사한다.
더구나 박미선의 도전기는 나이 들수록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여성 예능인이 홀로 벌이는 투쟁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어느 순간 소리 없이 사라져버리거나 남편, 육아 이야기 말고는 온전한 혼자로 설 수 없는 많은 기혼 여성 연예인을 대신해 ‘나 아직 여기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녀는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유튜브로 대박 나는 거야. 소원 좀 들어주라’며 솔직한 욕망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러한 박미선의 캐릭터는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녀가 늘 말하던 “가늘고 길게”라는 모토는 실은 나이 들수록 설 자리가 좁아지는 여성 예능인으로서의 자각이었으며, 얼마 전 <스탠드업>에서 화제가 됐던 “우리 여성 예능인들은 조금만 자리가 나면 비비고 들어가 앉아야 한다”는 말도 오래전부터 “나는 진행 욕심을 버렸고, 우리는 틈새를 노릴 수밖에 없다”고 말해오던 것의 연장선이었다. 그녀는 ‘방송에서 원하는’, 적당히 평균적인 한국 여성으로서의 여성 예능인 이미지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방송활동을 하던 예능인이었으며, 워커홀릭에 버킷리스트 공개 등 원하는 건 다 하겠다는 ‘까칠한’ 욕망을 숨기지 않는 드문 중년 여성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는 최근 <까칠남녀>, <거리의 만찬> 등을 거치며 젊은 여성들의 감각을 업데이트해 붙잡아오고 있다. 라디오에 출연해 “젊은 친구들한테 배워가며 후배들과 일하는 게 즐겁고, 제가 다른 사람의 말에 웃어주는 게 좋다”고 말한다. 그녀의 솔직한 모습을 담은 각종 ‘짤’은 젊은 층에 어필하며 요즘 세대의 가치관과 만난다. 이제 시대는 그녀의 곁에 가까이 와 있는 듯 보인다.
■ 귀한 중년 언니
<미선임파서블>에서 한참 단독으로 입담과 재치를 마음대로 펼치는 그녀를 보다가, 얼마 전 <해피투게더>에 게스트로 출연한 박미선의 모습을 보니 생경했다. 그날의 주제는 ‘언니들의 만찬’이었고 박미선은 여전한 말투로 “남자 셋이 아직도 해요? 변한 줄 알았더니 그대로네”라며 일침을 놓기도 했지만, 분명 남성 진행자 중심의 기존 예능판으로 돌아갔을 때 그녀의 모습은 유튜브에서와 미묘하게 달라 보였다. 그녀는 비교적 온건한 공중파용 캐릭터로 돌아가 있었고 대화는 자주 남편 이봉원에 대한 이야기, 자식 키우는 엄마로서의 이야기로 흘렀다. 다만 그녀가 함께 출연한 심진화의 고민 상담을 할 때, 그녀는 유독 빛이 났다. 심진화는 아무 데서나 울음이 터지는 감정 기복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울고, 박미선은 같이 눈물을 보이며 말했다. “그게 왜 고민이죠? 그래도 어떻게 해, 울어야지. 울어도 괜찮아. 울고 싶으면 울고, 못해도 되고, 천천히 가도 괜찮고.”

유튜브의 댓글 중 하나는 이렇게 말한다. “마냥 마음 편히 즐길 예능이 그리 많지 않은 한국에서 미선 언니는 젊은 여성들에게 귀중한 웃음화수분이세요.” 없던 길을 개척하는 여성 예능인으로서 그녀의 여정 자체가 ‘임파서블’한 미션을 수행 중이다.
이로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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