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금방 안 끝난다" 기업들 장기전 체제로

추인영 입력 2020. 2. 28. 00:04 수정 2020. 2. 28.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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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통근버스 식별번호 붙여
확진자 발생 대비 직원 동선 파악
롯데·신세계, 배송차 수백대 증차
SKT·은행, 재택근무로 체력 비축
사업장 무조건 폐쇄 대신 핀셋방역
기업들이 코로나19에 맞서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4일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오전 출근조 근로자들이 퇴근하는 모습. [뉴스1]

현대자동차 노사는 26일부터 ‘봉쇄 투쟁’에 돌입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에 맞서서다. 통근 버스에는 1번·2번 식으로 이전에 없던 번호표가 일제히 붙었다. 식별 번호가 있으면 확진자가 발생하더라도 동선을 최단시간 안에 파악해 핀셋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체 공장의 셧다운은 어떻게든 막겠다는 의지다.

현대차 노사는 25일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특별합의도 맺었다. 분규가 잦았던 현대차에선 이례적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가능한 여름 휴가 전에 올해 노사 교섭을 마쳐서 하반기라도 안정적 생산이 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이 코로나 장기전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코로나 위험을 상수로 놓고 긴 호흡의 대응책을 마련 중이다. 공장 운영이 불가피한 업종은 컨틴전시 플랜을 수립해 선제 대응에 나섰고, 유통 업체는 비대면 거래에 대한 인력·장비 투입을 늘리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T) 인프라가 잘 갖춰진 업종에선 재택근무를 통해 ‘기업 체력’을 비축하고 있다.

점포 매출 타격이 컸던 유통업체는 썰렁한 오프라인 점포 대신 주문이 몰리는 온라인 배송을 강화해 사태 장기화에 대응 중이다. 백화점·대형마트·면세점은 코로나19로 3000억원 대의 매출 손실이 발생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급속 확산한 19~24일에는 온라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4%(롯데마트 기준)나 늘었다.

장기전불가피한경제심리.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에 따라 롯데마트는 배송 차량(20%)과 물류센터 인력(13%)을 늘린 데 이어 김포물류센터 배송 차량을 220대로 증차했다. 신세계그룹의 온라인 쇼핑 플랫폼인 SSG닷컴은 전국의 배송 차량을 60대 이상 확충했다. 수도권 일부에서 진행하는 새벽 배송 물량도 50% 늘릴 예정이다. 홈플러스는 점포 인력의 10%를 온라인 주문에 따라 제품을 담는 작업(피킹)에 투입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52시간제 근무, 대형마트 의무 휴업 등의 규제는 코로나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는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4시간 가동이 불가피한 정유 공장에서는 위험을 국소화하는데 초점을 둔 컨틴전시 플랜을 가동 중이다. SK이노베이션은 울산 정유 공장에 방역복을 확보하고, 확진자가 나오면 해당 조만 업무에서 배제할 방침이다. ‘무조건 폐쇄’로 대응하던 확진 후 방역도 최적 방역으로 진화하고 있다. 방역 당국은 26일 치아염소산나트륨 소독제가 아니면 소독 후 30분~2시간 환기 후 시설을 사용할 수 있다는 지침을 새로 내렸다.

금융·통신 업종에서는 사무실 중심의 ‘책상머리’ 근무를 탈피하는 방식으로 위험을 분산하고 있다. SK텔레콤은 2년 전 클라우드(인터넷에 접속해 어디서든 데이터를 주고받는 시스템)를 마련한 덕에 필수 인력을 제외하면 재택근무가 가능한 상태다. LG상사도 다음 달 4일까지 필수 인력을 제외한 직원은 재택근무를 한다. 회의도 클라우드 기반의 화상회의로 대체했다. 한국씨티은행·신한은행·카카오뱅크 등 금융사도 본점 직원을 중심으로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정부도 52시간제·의무휴업 등 규제 한시적 완화 필요”

정부특단대책강조한전문가제언.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IT 인프라에 기반해 업무 공백을 최소한 곳에서는 핵심 기반인 전산센터 등에 대한 관리는 대폭 강화했다. 주요 통신사에서는 통신망을 관리하는 직원은 방역복을 입고 근무하고 있다. 한국전력은 특정 지점에서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인접 지점에서 통합 근무 및 관리를 하도록 해 전력 수급에 차질이 없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노사 분규를 최소화하는 것도 장기 대응의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연초부터 노사 문제가 불거졌던 금융권이 대표적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금융권은 지금 당장보다는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 후에 대출 상환 등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코로나 이후 영향을 최소화하는 과정에서 노사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조와 협력적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체적인 대응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은 중소기업중앙회나 업종별 협회 중심으로 안간힘을 쓰고 있다. 중기중앙회는 25일 대책본부를 출범하고, 중소기업 애로사항에 대한 긴급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일시적인 자금난에 빠져 흑자 도산하지 않도록 긴급 경영자금 지원이 시급하다는 답이 많았다. 중앙회 관계자는 “외국 바이어들이 오지도 않고, 만나주지도 않는 상황”이라며 “코리아 포비아가 커지지 않도록 외교 라인이 총력을 기울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위험 대비를 강화하고 있는 만큼 정부의 과감하고 빠른 정책 집행 요구도 커지고 있다. 보안 문제로 재택근무가 허용되지 않던 금융사에 발 빠르게 재택근무 허용을 결정한 금융위원회처럼 속도전이 필요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체 공급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소재·부품 산업에 대한 선제적인 수급 관리에 재정을 직접 지원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소비 심리를 살리는 첫걸음은 정부의 방역 조치에 대한 믿음을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조만간 내수 활성화, 수출 지원 등을 아우르는 종합 경기 지원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추인영·정용환·임성빈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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