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 두 번 괴물이 된다
[한겨레21] 테마소설집 엮은 젊은 작가 10명이 마주한 괴물은
당신이 생각하는 몬스터(괴물)는 어떤 모습인가?
2월, 괴물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을 모은 테마소설집 두 권이 나왔다. <몬스터: 한낮의 그림자>와 <몬스터: 한밤의 목소리>(한겨레출판 펴냄). 지난해 하반기 독서 애플리케이션 ‘밀리의 서재’에 연재한 10편을 단행본 2권으로 엮었다. 출판계에서 주목받는 젊은 작가들 손원평, 윤이형, 최진영, 백수린, 임솔아, 듀나, 손아람 등 10명이 참여했다. 그들이 만든 10개의 괴물 이야기는 평범한 일상에서 우리도 몰랐던 우리 안의 괴물을 발견하는 작품들이다.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일상의 공포와 폭력을 들여다보며, 삶 속에 존재하는 괴물 형상을 생생하게 그렸다.
백수린 작품에는 ‘죽음’
괴물의 얼굴은 다양하다. 경쟁 구조가 만든 괴물, 혐오와 차별 그리고 분노를 먹고 자란 괴물, 미처 몰랐던 자신의 내면에 있는 괴물…. 그들을 마주하며 반대로 인간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되묻는 괴물 테마소설집에 참여한 백수린 작가와 손아람 작가를 2월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몬스터: 한낮의 그림자>에서 ‘해변의 묘지’를 선보인 백 작가가 말했다. “테마소설집에서 정한 ‘괴물’이라는 주제로 소설을 쓰는 건 또 다른 창작 방식이었어요. 항상 내가 정한 주제로 글을 쓰던 형태와는 다른, 내 바운더리(경계)를 넘는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테마소설집에 참여한 작가들은 정해진 주제에 자신의 개성과 문학적 상상력을 입혔다. 한 주제로 여러 명이 각각 작품을 쓰고 그것을 책으로 엮은 ‘앤솔러지’다.
백 작가는 처음에 우리 내면의 괴물성에 대해 쓰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관심 있었던 ‘늙음’과 ‘죽음’이라는 주제와 괴물을 연결했다. “미지의 대상인 괴물을 떠올릴 때 드는 건 공포와 두려움이잖아요. 그 공포와 두려움은 인간이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느낄 때 오지요. 삶의 유한성, 죽음 또한 공포의 영역이잖아요.”
백 작가의 괴물 이야기 ‘해변의 묘지’는 프랑스 니스로 유학 간 21살 다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다희는 시내 한복판에 있는 낡은 아파트에서 다른 유학생과 함께 세들어 산다. 그가 사는 아랫집에는 ‘마녀’라고 불리는 사나운 인상의 모렐 부인이 있다. 모렐 부인은 위층의 작은 삐거덕 소리에도 천장을 쿵쿵 치며 항의한다. 다희는 어느 날 모렐 부인의 집을 방문한다. “시큼한 냄새와 지린내가 뒤섞여” 난 그곳에서 다희는 “불운의 냄새, 죽음의 냄새”를 맡는다. 어두운 방에 있는, 병들고 늙은 모렐은 “시커먼 무덤 속에서 일어난 시체” 같았다.
소설은 극명한 대비라는 장치로 공포의 그림자를 깊게 드리운다. 다희로 상징되는 찬란한 젊음의 모습과 모렐 부인의 늙음, 아름다운 바다와 그곳에 산다는 무시무시한 괴물. 그 명암에서 나오는 어떤 그림자가 두려움이다. 그 두려움은 마지막 장면에서 극대화된다. “다희는 자신의 허벅지와 배를 거쳐 가슴에서 목까지 천천히 뒤덮기 시작하는 검버섯을 차마 볼 수 없어 눈을 질끈 감았다. 어디선가, 빛나는 바다의 저 깊은 밑바닥에서부터 가혹하고 불가해한 무언가가 가래 끓는 듯한 소리를 내며 그녀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해변의 묘지’ 중에서)
손아람 작품에는 ‘욕망’
손 작가의 괴물 이야기 ‘킹메이커’는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괴물의 얼굴을 보여준다. 작품은 상대 후보의 룸살롱 출입 동영상을 입수해 선거에서 승리한 정치 컨설턴트와 그를 영입하려는 상대 후보를 등장시킨다. 권력을 얻기 위해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는 현실을 꼬집는다. 그 치열한 세계 속 경쟁과 욕망, 그리고 그 안에 서린 폭력성을 이야기한다. 싸우는 정치와 네거티브선거전(상대 후보를 비방하는 선거운동)에 빠진 현실정치를 풍자한다. 그 괴물 옆에 있는, 괴물을 키우는 사람으로 등장하는 정치 컨설턴트 영경이라는 인물도 보여준다. 항상 이기는 선거를 하는 ‘킹메이커’ 정치 컨설턴트의 전략은 이렇다. “문제가 될 때마다 상대의 더 큰 약점으로 덮어야 해요.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되갚는 사람이란 걸 깨닫는 순간 어떤 적도 감히 후보님의 동영상을 거론하지 않게 될 겁니다.”(‘킹메이커’ 중에서)
작품의 모티브가 된 건 몇 년 전 만난 정치 컨설턴트의 이야기다. 손 작가가 말했다. “여러 정치인을 상대한 정치 컨설턴트를 만났어요. 그의 직업이 궁금했어요. 어떻게 커리어(경력)를 쌓고 선거 전략을 세울까. ‘킹메이커’는 그의 이야기에서 비롯됐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분이 서울 인사동에서 유명한 점집을 운영하던 분이었어요. 그를 찾아온 많은 정치인의 이야기를 들으니 한 편의 괴기스러운 이야기 같았어요.”
영화, 드라마 등 여러 장르에서 다양하게 변주돼온 괴물은 소설가들의 손을 거쳐 단편소설로 탄생했다. 소설은 좀더 깊이 인간의 심연을 비춘다. 자신도 인정하지 못하는 내면의 공격성, 두려움, 불안 등을 담아낸다. 백 작가는 “괴물이라는 소재는 상상력을 자극해요. 상징과 압축미를 중요하게 여기는 단편소설에 담아낼 수 있어요. 그런 장르적 속성을 가지고 괴물 이야기를 담은 창작의 즐거움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더불어 문학이란 장르를 통해 “인간과 괴물 사이에 빠지는 딜레마, 인간성에 대한 고민을 찬찬히 보여주는 강점이 있다”고 말한다.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지 않도록
작가들은 소설을 쓰기 시작한 처음부터 마침표를 찍는 순간까지 간직한 ‘괴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괴물은 모습을 지니지 않는다. 괴물이란 우리의 이해를 초과하는 것, 실체를 파악할 수 없거나, 파악하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부르는 이름이므로.”(백수린 작가) “괴물의 이름과 형체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괴물을 만든 사람의 이름은 프랑켄슈타인. 사람들은 그걸 알면서도 끝끝내 괴물을 프랑켄슈타인이라고 부른다. 덕분에 괴물은 명성을 얻었고 괴물을 만들어낸 이는 깨끗하게 잊혔다.”(손아람 작가)
누구나 인간과 괴물의 경계에 설 때가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선악을 넘어서>에서 말했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자신 역시 괴물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그대가 한참 동안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심연 또한 그대를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우리 내면의 괴물성은 언제든 나타날 수 있기에. 손 작가는 “차별, 혐오 등에 반대하는 주장을 하면서 ‘난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는 괴물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 해요. 어느 순간에 내가 가해자가 되고 폭력을 휘두르는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의 자세 말이죠”라고 말했다.
글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또 다른 괴물들
망각, 가족, 희생 강요…
“제가 생각하는 괴물 중 하나는 망각이란 괴물입니다. 잊어선 안 될 것을 잊는 것 말입니다.”
<몬스터: 한밤의 목소리>에서 ‘마주치면 안 되는 아이돌’을 쓴 김동식 작가는 괴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의 소설 배경은 경쟁이 치열한 연예계. 어느 날 한 걸그룹 멤버가 무대장치가 떨어져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쉽게 잊어버린다. 심지어 아무도 그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김 작가는 그렇게 망각의 괴물을 작품에 담았다. 괴물은 현실에서 살아 숨 쉰다. “악플, 폭력, 배신 등 우리는 그 괴물을 잡기 위해 ‘이건 정말 아니잖아!’ 하고 분노하지만 매번 잊어버린다.”
<몬스터: 한낮의 그림자>에서 ‘괴물들’을 쓴 손원평 작가가 정의하는 괴물은 “이해 불가의 타인을 이르는 말. 하지만 실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가 그리는 괴물은 가족이다. 쌍둥이 아이들이 남편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떠는 엄마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가족이지만 서로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자식과 부모의 단절된 모습을 그린다.
이혁진 작가 역시 ‘달지도 쓰지도 않게’에서 처가의 빚으로 괴로워하는 가장의 고민과 그 돈 때문에 파괴되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분노하고 사람을 믿지 못하는 남편은 아내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다. “당신 지금 어떤지 알아? 괴물 같아. 사람 말려 죽이려는 괴물 같다고! 정말 왜 이래, 서연이 아빠!” 이 작가가 말하는 괴물은 “거울 속의 나”다. 매일매일 괴물로 변하지 않는지 나를 살펴야 한다.
윤이형 작가는 ‘드릴, 폭포, 열병’에서 횡령했다는 무고를 당한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혜서를 향한 죄책감에 사죄문을 공개하려는 윤경과 그를 만류하는 ‘나’의 이야기를 그린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가 윤경의 입을 막으려 설득하는 독백으로 이뤄졌다. 부당한 현실에 맞서는 진정한 용기와 정의가 무엇인지 묻는다. 윤 작가는 괴물에 대해 “올바름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시스템이 지닌 한계나 오류 때문에 같은 약자가 다치는 일이 생겨도 아무도 그들을 구제하지 않는 것. 그 한계와 오류를 눈앞에서 보면서도 더 큰 올바름을 위해서는 그들이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 가엾긴 하지만 원래 마음에 안 들었고 모두가 원하는 올바름의 형상에도 들어맞지 않으니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희생시켜도 무방한 사람들이 계속 생겨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내가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주위 사람들이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조금만 더 자세히 천천히 서로를 살피면서 가면 안 될까”라고 인간으로서의 바람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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