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아프다" 출동했더니 '우한 코로나' 의심자.. 늦장 고백에 2차 감염 노출된 소방서

박소정 기자 2020. 2. 2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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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증상’ 숨긴 119 신고 빈번…늦장 고백에 2차 감염에 노출

"보호복 착용만 최소 10분, 출동마다 대비 어려워"

소방대원들 "의심자 정보 공유 필요"...서울 소방대원 118명 격리

소방당국 "협조 요청하지만, 책임 미뤄"... 지자체 "개인정보 유출 우려"

최근 서울 북부지역의 한 119안전센터에는 심한 복통을 호소하고 있다는 내용의 신고가 접수됐다. 구급대원들은 즉시 이 환자를 인근 종합병원으로 이송한 뒤 평소처럼 안전센터로 복귀했다. 그런데 병원에서 엑스레이 검사를 받던 환자가 돌연 이렇게 실토했다.

"사실 오늘 낮에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하고 집에서 결과를 기다리던 중이었어요. 너무 배가 아픈데 의심자라고 하면 구급차가 오지 않을까봐 얘기를 못 했어요. 죄송합니다." 119안전센터는 감염 우려에 비상이 걸렸다. 환자를 이송한 대원 등 직원 3명은 소방학교로 격리 조치됐다. 최근 코로나 확산으로 분주한 가운데, 인력 공백까지 생기게 된 것이다.

서울 강남소방서 ‘우한 코로나’ 전담구급대 개포119안전센터 대원들과 구급차. /강남소방서 제공

복통·호흡곤란 등 일반 119 신고를 받고 병원에 이송된 다음에야 환자가 "보건소에서 ‘우한 코로나(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고 밝히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해, 일선 구급대원들이 2차 감염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대원들이 모든 상황마다 보호복을 갖춰 입고 출동할 수 없는 만큼, 소방과 보건당국 사이에 우한 코로나 의심자·확진자에 대한 정보 공유 등 협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배 아프다" 했는데 알고보니 ‘우한 코로나’ 의심자…2차 감염·인력난 우려

소방청은 발열·기침 등 우한 코로나 의심 증상이 있는 경우에만 ‘레벨D’ 방호복(전신을 가리는 방호복)을 입고 환자를 이송하도록 하는 지침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출동 전 이런 의심 증상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신고자의 말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만약 우한 코로나 검사를 받고 자가격리 중인 의심자가 이 사실을 숨기거나, 관련 의심 증상을 먼저 얘기하지 않는다면 대처를 못한 소방대원들은 바이러스에 그대로 노출될 수 밖에 없다.

일선 구급대원들은 이런 사례가 최근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소방 관계자는 "복귀하기 전에 병원에 도착한 환자가 말해주면 대원들이 바로 격리소에 갈 수 있어 그나마 감사할 따름"이라며 "이런 일이 서울에서만 하루에도 몇 건씩 발생하는 걸로 안다. 2차 감염 위험에 인력 부족 위험까지 배로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119에 신고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 병원에 가기도 어려울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증상이 악화돼 신고한 우한 코로나 의심자들 중에는 확진에 가까운 환자들이 있을 가능성이 크지 않느냐. 매일 걱정을 안고 출동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지난 23일 기준 소방대원 총 118명이 우한 코로나 의심 환자와 접촉해 격리 중이다. 우한 코로나 의심환자와 접촉한 서울 소방대원들은 감염병 정밀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서울 양천소방서 목동119안전센터 감염관리실, 은평구 소방학교 등 두 곳에 나눠 격리된다. 양천소방서에 71명, 소방학교에 47명이 격리돼 있는 상황이다.

소방당국은 모든 대원들이 매 출동 때마다 보호복을 완전히 갖춰 입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소방관은 "출동할 때마다 보호복을 갖춰 입으면 다른 위급한 상황에서 현장 도착 시간이 지체될 수도 있는 등 부담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실제 레벨D 방호복을 완전히 갖춰입긴 위해선 장갑, 마스크, 보안경, 모자, 토시까지 착용해야 해 아무리 숙련된 사람이라도 최소 10분 넘게 소요된다고 한다. 보호복 수급도 큰 문제다. 소방당국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대책 마련을 고심 중이다. 시 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보호복 수급이 어려워서 질병관리본부와 각 시도 자치부가 협의해 수급을 늘리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전국에서 차출된 119 구급대원과 구급차가 지난 23일 대구시 달서구 두류공원 야구장에서 ‘우한 코로나’ 확진자 이송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방 "의심자 주소라도 달라" VS 보건 "개인정보라 불가"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선 구급대원 사이에서는 소방서와 보건소 사이에 우한 코로나 의심자로 분류된 시민의 정보 공유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방 관계자는 "보건소 측에서 의심자로 분류돼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환자들의 주소라도 알려줘야 보호복을 입는 등 준비하고 출동하지 않겠느냐"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보건당국도 개인정보 유출 우려 때문에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한 보건소 관계자는 "소방서에서 공문을 보내 자신들이 이송한 환자가 우한 코로나 확진자인지 추후에 물어본다면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해 검사 결과 공유는 가능하다"며 "그러나 질본과 서울시 지침상 세부적인 의심자나 확진자의 선제적인 정보 공유는 개인정보 유출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 관련 민감 정보를 유출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시 5년 이하의 징역 혹은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시 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질본에선 ‘각 지자체가 담당해야 할 상황’이라고 하고, 서울시는 ‘자치구 차원에서 협의해 달라’고만 해 서로 책임을 미룬다"며 "현재까지 각 기관이 협의해 환자의 정보를 제공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고 말했다.

보건당국과의 협조가 어렵다 보니 일선 소방서에선 자체적으로 출동 지침을 손보는 움직임도 속속 관찰되고 있다. 종로소방서는 대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 21일부터 일반 119 출동 시에도 전신보호복을 입으라는 자체 지침을 내렸다. 시 소방재난본부 측도 "119 신고 받고 환자를 이송하는 동안 2차 감염에 노출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며 "현재 출동 체계를 다시 잡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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