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피가 안 멎어 사망"..'TV는' 정호근, 우여곡절 가족史 '눈물' [종합]

박소영 2020. 2. 21.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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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박소영 기자] 정호근이 ‘TV는 사랑을 싣고’를 통해 끊어진 인연을 찾았다. 

21일 오후 전파를 탄 KBS 1TV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배우 겸 무속인 정호근이 게스트로 나왔다. 김용만과 윤정수는 그가 신점을 보고 있는 곳으로 찾아가 인사를 나눴다. 정호근은 “처음엔 대단히 센세이션 했던 프로그램인데 점점 에너지가 빠지고 있다. 올해부터 제 방송을 시작으로 다시 잘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부터 무속인의 길을 걷고 있다. 정호근은 “우여곡절이 많은 인생을 살았다”며 “결혼 후 다섯 아이 중 둘을 잃잃었다. 어느 날 신당에서 기도하고 있는데 ‘너는 이제 죽어, 꽂꽂하게 내가 세웠는데’라며 제 밑으로 내려간다고 하더라. 아이들에게 간다는 거 아닌가. 아이들 대신 제가 받은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신내림을 받자 주변의 지인들이 홍해 갈라지듯 쫙 빠졌다. ‘정호근이 무당 됐잖아’ 이러면서 만남이 이뤄지지 않았다. 오늘 만나고 싶은 분도 흔쾌히 나올지 우려가 된다”고 씁쓸해했다. 

그가 찾고자 하는 이는 중앙대 연영과 5년 선배 이송이었다. 정호근은 “제가 드라마에서는 주연을 못했지만 연극에서 주연을 한 적이 있다. 처음으로 주연으로 써준 연출가 형이다. 배우 정호근을 가장 인정해 준 선배”라며 “무속인 1~2년 생활 동안 섭외가 들어왔는데 이젠 없다. 이송 형이라면 날 이해해 주지 않을까 싶더라”고 기대했다. 

세 사람은 대학로에 있는 중앙대 공연예술원을 찾았다. 정호근은 “그 형한테 나는 난제였을 거다. 혼자 잘난 척하고 고고하게 있었다. 뛰는 망아지처럼 다녔는데 그 형만 절 잡아줬다. 넌 언젠가 때가 온다고 해줬다. 나이 먹어야 된다고 했다. 투박한 칭찬이 너무 따뜻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두 번째 추억 장소를 사당동이었다. 정호근은 “아버지의 권유로 호기롭게 가게를 시작했다. 5년간 운영했다. 아는 사람이 오면 돈을 안 받았다. 그래서 망했다. 가게 운영하며 결혼하고 아이 낳고. 여기서 큰 딸을 보냈다. 가슴 아픈 사연이 다 있는 장소”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큰 딸이 살아 있다면 25살이다. 임신 29주 만에 태어났는데 600g이었다. 인큐베이터에서 키웠는데 내성이 약했는지 폐동맥 고혈압 판정을 받았다. 미국에 병원 알아보러 갔는데 가자마자 연락 왔다. 4살 된 딸에게 잘 갔다올게 했는데 그리고서 떠났다”고 안타깝게 말했다. 

정호근은 다섯 아이를 낳고 첫째 딸과 막내 아들을 잃었다. 그는 “아들은 내 품에서 죽었다. 2004년 이란성 쌍둥이 남매를 낳았다. 아들 둘, 딸 둘. 큰 딸이 축복을 주는 구나 싶었다. 그런데 날 때부터 건강이 안 좋았다. 작은 몸을 수술했는데 피가 안 멎었다. 내 품에서 죽었다. 기가 막힌 일을 눈으로 겪었다”고 씁쓸해했다. 

아내와도 문제가 생겼다. 정호근은 “자식 관련 우환을 겪으면 부부 문제가 생긴다. 제가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터라 가정에서도 독불장군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자살소동을 벌이더라. 이제 나가서 죽을 테니 다른 여자 만나라고 하더라. 딸 뿌린 곳에 갔는데 거기에 줄을 달고서 밑에 앉아 있더라”고 밝혀 듣는 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어 그는 “발이 얼어붙어서 간신히 이름을 부르며 아내 곁으로 기어갔다. 보니까 못 죽겠다고 하더라. 임신 7개월째였는데 뱃 속 아들이 발길질 해서 못 죽겠다고 했다. 둘이 부둥켜 안고 무지 울었다. 우리 오래 살자고 칼국수 먹고 왔다”고 덧붙였다.  

현재 정호근은 기러기 생활 17년 차다. 가족들 모두 다들 미국에 있다고. 정호근은 “어느 날 전화로 내림굿 받았다고 했다. 아내가 전화를 팍 끊더라. 이혼하자고 했다. 2014년 12월 중순이었다. 1월 1일에 손님 받기로 했는데 12월 말에 전화가 왔다. 가족들이 응원하겠다고”라고 밝혀 훈훈함을 더했다. 

그를 위한 깜짝 영상편지가 도착했다. 미국에 있는 아내는 “잘 지내? 우린 잘 지내. 내가 옆에서 보살펴 주지 못하니까 잘 먹고 튼튼하게 잘 있어”라고 말했고 넷째 딸은 “저는 늘 고마운 마음으로 힘내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며 아빠에게 응원을 보냈다. 

셋째 역시 “항상 아빠 건강하고 많이 보고 싶고 사랑해요”라고 인사했고 둘쨰도 “손가락질 하고 사람들이 욕도 하고 황당한 소리 들으면서 마음 상처 크고 증오와 원망이 컸다. 그런데 우리를 위한 희생이니까. 공부 열심히 하고 있겠다. 응원합니다. 파이팅”이라고 외쳤다. 가족들의 응원에 정호근은 눈물을 흘렸다. 

드디어 이송을 만날 시간. 정호근은 첫 아이를 잃고 슬픔을 나눈 곳에서 이송을 만나 반갑게 포옹했다. 두 사람은 무려 23년 만에 만나 연탄불에 고기를 구워 먹었다. 식당으로 이동하는 길에 이송은 펑펑 울었다고. 

그는 “많이 울었다. 두렵기도 했다. 감정을 억누를 수 있을가 싶더라. 옛날의 동생을, 무속인이 된 동생을 어떤 마음으로 만날 수 있을까 싶더라. 처음에 어떤 인사를 해야 하나 호근이라고 불러야 할지 도사님이라고 불러야 할지. 어떤 복장으로 나타날지 궁금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옛날 그대로 정말 똑같은 모습이구나, 그래도 예전 모습 그대로 만나게 돼 좋았다. 왜 무속의 세계로 갔는지 듣고 싶었다”고 물었다. 정호근은 “가족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그랬다. 인간의 힘으로 이길 수 없는 일이 많다. 나는 엎드렸다”며 “형과 함께 공연하고 싶다. 우리 저질러야지?”라고 화답했다. 

/comet568@osen.co.kr

[사진] TV는 사랑을 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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