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릴 빈민 낙인찍나" 기생충 관광지 된 아현동 주민들의 한숨

이영빈 기자 2020. 2. 18. 03: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관광재단 투어코스 지정
주민들 "관광지 홍보는 부적절"

"우아, 와서 직접 보니까 정말 허름하네요."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아현동 주택가를 찾은 영화감독 지망생 권모(24)씨가 가파른 언덕과 계단을 보며 이렇게 감탄했다. 그는 "빛바랜 건물 외벽, 좁은 주택 출입문 등 빈촌(貧村) 구석구석이 살아 있다"며 "영화 속 배경이 세트가 아니라고 해서 놀랐다"고 했다. 이곳 계단은 영화 '기생충'에서 비어 있던 박 사장(이선균) 저택을 차지하고 놀던 주인공 기택(송강호)네가 박 사장 가족의 귀가(歸家)에 놀라 빠져나온 뒤 자기들의 반지하 집으로 향하는 길에 거쳐 가는 곳이다.

서울시와 서울관광재단은 지난 13일 이 길을 포함한 아현동 일대를 무대로 '영화 전문가와 함께하는 팸투어'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기생충 투어코스'다. 마포구청도 기택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친구 민혁(박서준)과 소주를 마시던 '돼지 슈퍼' 앞에 포토존(기념 촬영 구역)도 설치할 예정이다. 영화에서처럼 파라솔과 테이블, 의자를 비치하겠다고 했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관광객을 위해 가까운 화장실이나 식당 안내판도 세울 계획"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주민들 사이에선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우리를 빈민층이라고 낙인찍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날 만난 한 주민(37)은 "어떤 관광객은 '여기 진짜 사람이 사는구나'라는 말까지 하더라"며 "세계적 관광지로 만든다는데,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가 얼마나 가난하게 사는지 보러 온다는 거냐"고 했다. 또 다른 주민은 "요즘에는 밖에 나오면 사람들이 카메라로 우리 동네를 찍고 있다. 기분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고 했다. 한 공인중개사는 "관광 코스 소개에 '아현동'이 꼭 붙어 있더라"라며 "아파트를 내놓은 고객들이 '기생충 때문에 안 나가는 것 아니냐'고 물어본다"고 했다.

서울관광재단 관계자는 "영화에서 못사는 동네로 그려진 것은 계급 갈등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일 뿐이며, 관광객들에겐 영화에 나왔던 촬영지 정도로 설명할 것"이라고 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