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에 2조 투자해놓은 SK이노..LG화학과 조기 합의가 '최선'

노현 2020. 2. 1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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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ITC, SK이노베이션에 조기패소 결정 이후
미국서 생산·판매 어려워져
SK이노베이션, 합의 나설 듯
'SK 증거훼손' 인정한셈
최종 결정 10월 예정이지만
뒤집힐 가능성은 거의 '제로'
LG측 "대화의 문 열려있어"
이르면 이달 합의 가능성도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과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전에서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SK이노베이션에 대해 '조기 패소 판결'을 내리면서 "승리의 9부 능선을 넘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처럼 LG화학의 승소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ITC의 조기 패소 결정 배경과 전망 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ITC는 14일(현지시간)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2차전지 영업비밀 침해 소송과 관련해 SK이노베이션에 조기 패소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앞서 LG화학은 증거개시절차(discovery) 과정에서 SK이노베이션의 광범위한 증거인멸이 포착됐다며 조기 패소 판결을 ITC에 요청했다.

증거개시절차란 재판 상대방이 소송 정보를 요구하면 제출하도록 의무화한 제도다. 증거개시절차가 시작되면 소송 당사자는 증거로 사용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변경하거나 파기되지 않게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 같은 '증거보존' 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ITC는 추가적인 사실심리나 증거조사를 거치지 않고 원고 측 주장을 그대로 인용하는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LG화학은 "ITC의 포렌식 명령에도 SK이노베이션이 전문가를 고용해 자체 포렌식을 진행해 증거를 인멸했다"고 주장해 왔다. 포렌식을 해야 할 75개 엑셀 시트 중 1개만 진행하고, 나머지 74개 엑셀 시트는 LG화학 측 전문가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상태에서 자체 포렌식을 했다는 정황도 나왔다. 그동안 업계에서 LG화학이 승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ITC가 LG화학의 포렌식 조사 요구를 수용한 데다 ITC 산하 불공정수입조사국(OUII)이 LG화학의 조기 패소 요청에 찬성하는 취지의 의견서를 ITC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조기 패소 판결로 SK이노베이션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됐다고 지적한다. ITC 통계자료(1996~2019년)에 따르면 영업비밀 침해 소송은 조기 패소 판결을 포함해 ITC가 예비 결정에서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한 모든 사건의 결론이 최종 결정에서 그대로 유지됐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도 조기 패소 판결 내용이 최종 결정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조기 패소 판결이 최종 결정에서 확정될 경우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관련 부품·소재에 대한 미국 내 수입 금지 효력이 발생한다. 미국 조지아 공장에 1조9000억원 규모 투자를 단행한 데 이어 1조원 투자도 계획 중인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LG화학이 지난해 ITC 소송 제기 당시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 동시에 제기했던 영업비밀 침해 소송 재개도 관심거리다. 이 소송은 현재 ITC 재판 진행에 따라 소송 중지 상태지만, 10월 ITC의 최종 결정이 내려지고 LG화학이 소송 재개를 신청하면 다시 시작된다. LG화학이 델라웨어주 연방법원에서 승소하면 금전적 손해배상과 함께 미국 전역에서 SK이노베이션이 영업비밀을 침해한 것으로 결정된 모든 제품의 생산·유통·판매가 금지된다.

일각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ITC 최종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ITC 최종 결정 이후 60일 이내로 대통령 심의기간이 있는데, 이 기간 미국 대통령은 수입 금지 조치가 공정경쟁 등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경우에 한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다만 실제 거부권 행사 사례는 극히 드물다. 2010년 이후 ITC가 최종 결정을 내린 소송 600여 건 중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경우는 단 1건이다.

소송에서 최종 패소할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배터리 사업을 사실상 접어야 하는 만큼 SK이노베이션이 적극적으로 합의를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는 게 업계 전망이다. 실제 그간 ITC 소송 전례를 보면 최종 결정까지 가지 않고 양사 간 합의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조기 패소 판결이 10개월간 이어진 분쟁을 타결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SK이노베이션은 이날 ITC의 결정에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합의에 나설 것을 시사했다. SK이노베이션은 입장문에서 "LG화학과는 선의의 경쟁 관계지만, 산업 생태계 발전을 위해 협력해야 할 파트너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기조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LG화학 역시 중국 등 해외 배터리 업체들과 경쟁이 격해지는 상황에서 소송전을 오래 끌기가 부담스러운 실정이다. LG화학 관계자는 이날 "(합의와 관련한)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SK이노베이션 입장이 절박한 만큼 조만간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업계에 따르면 이번 판결 전에도 합의 가능성에 대해 양사 간 대화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ITC 영업비밀 침해 소송 외에 그동안 양사가 서로 제기했던 여러 소송들을 한꺼번에 조기종결하는 방향으로 합의가 추진될 것"이라며 "사태 조기 종결을 위해 양사 경영진이 대화에 나서고, 이에 따라 이르면 이달 중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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