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군 투신' 중국인 독립유공자 쑤징허 별세..문대통령 조화(종합)
위기닥친 한인 탈출 도와 광복군 부대까지 호송 등 지하공작원 활동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일본강점기 때 중국에서 한국 광복군의 지하공작원으로 활동했던 중국인 독립운동 유공자 쑤징허(蘇景和) 선생이 별세했다. 향년 102세.
11일 유족에 따르면 쑤 선생은 지난 9일 상하이시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숨졌다.
상하이시 푸둥신구의 한 아파트에서 아들 내외와 함께 살던 쑤 선생은 평소 고령에도 비교적 건강한 편이었지만 지난 9일 갑자기 건강이 악화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쑤 선생은 외국 국적의 독립운동 유공자 중 마지막 생존자였다.
1918년 중국 허베이성에서 출생한 쑤 선생은 당대 중국의 최고 명문 대학으로 손꼽히던 난징 중앙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한인 청년들과 인연을 맺었다.
학생 비밀결사 단체를 조직해 항일 활동을 펼치던 조일문(2016년 작고) 지사와의 만남은 엘리트 청년이던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일제가 한반도를 넘어 많은 중국 지역까지 집어삼킨 상황에서 청년 쑤징허와 조일문은 '항일로 나라를 되찾자'며 의기투합했다.
이후 쑤 선생은 난징 내 일본군 동향 수집, 광복군 모병 활동, 광복군 입대 청년 호송 등의 다양한 비밀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난징을 점령한 일제 경찰의 감시가 심해지자 쑤 선생은 1944년을 전후해 세 차례에 걸쳐 한인 청년들을 탈출시켜 시안의 광복군 부대까지 호송하는 임무를 완수했다.
그의 도움을 받아 시안으로 탈출해 광복군에 합류한 한인 청년들은 줄잡아 100여명.
쑤 선생은 작년 3월 자택에서 이뤄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일본군의 감시를 피해 이동시키느라 매우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며 "특히 많은 인원의 숙식 문제가 가장 힘들었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까지 살아 있는 감회가 남다르다"고 돌이켰다.
하지만 이후 쑤 선생은 격변하는 현대사 속에서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신중국 건국 직후인 1950년 우리나라의 행정고시와 같은 간부 선발 시험에 합격해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지만 문화대혁명 시기 당시 적대 관계이던 '한국'을 도운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정치적 박해를 받고 온 가족이 안후이성 시골 농장으로 하방돼 생활하는 고난의 시기를 보내야 했다.
한참 뒤에야 상하이로 돌아와 복직했지만 원래의 간부 직위로 대접받지 못하고 한직을 전전하다 퇴직했다.
1992년 한중수교 뒤에 그는 조일문 지사 등 생사를 같이했던 옛 동지들과 감격스러운 재회를 했다.
조일문 지사 등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쑤 선생은 우리 정부로부터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아 명예를 회복하면서 다소간의 위로를 받았다.
다만 그는 외국 국적자여서 관련 법령상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유공자 연금 등 경제적 지원을 받지는 못했다.
청년 시절 잠깐의 인연을 맺었지만 그는 한국에 늘 큰 관심을 보였다.
쑤 선생은 연합뉴스와 생전 인터뷰에서 가늘고 떨리는 목소리로 "분열된 한반도가 통일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쑤 선생의 빈소에 조화를 보냈다. 또 유족들에게는 별도의 위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선생의 아들 쑤시링(蘇希齡)씨는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부친께서는 젊은 시절에 한국 정부를 도운 것이 항일전쟁 과정에서 중국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며 "중국인인 아버지를 한국 정부와 많은 한국인들이 기억해 줘 너무나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영삼 주상하이 총영사는 "우리 민족이 어려웠던 시기에 중국인으로서 한국 지사들과 뜻을 같이했던 분인데 이렇게 떠나셔서 너무나 안타깝다"며 "지사님께서는 가셨지만 숭고한 뜻은 길이 남아 우리 한중 양국 국민의 가슴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시안에서 만났던 광복군 구대장 출신 안춘생(2011년 작고) 전 광복회 회장은 50여년 만에 다시 연락이 닿은 지난 1993년 쑤 선생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50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단절된 상태로 흘려보냈네요. 역경과 곤경을 헤쳐나갔던 지난 세월을 회상할 때마다, 형이 어려움을 무릅쓰고 고생스럽게 난징과 시안을 오간 노고가 떠오르며 굉장히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년이던 우리가 벌써 두발이 하얗게 센 노인이 되었고 주변에는 고인이 되신 분들도 계십니다. 편지로는 저의 그리움을 다 담을 수 없네요."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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