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중국 우한에서 발견한 '세월호'.."국가란 무엇인가?"

안양봉 2020. 2. 1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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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현재 진행형 참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겪고 있는 중국 인민들이 '국가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우리도 앞서 같은 질문을 한 적 있다. 2014년 4월 16일, 그날이다. 세월호 참사와 중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빼다 닮았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재난 상황에서 국가의 책무란 무엇일까?

"그대로 있어라." vs "사람 간 전염은 없다."

세월호 참사가 미수습자 포함 304명의 생명을 빼앗는 결과로 이어진 데는 세월호 승무원들의 형사적, 윤리적 책임이 가볍지 않다. 여객선 승무원은 적어도 그 공간 안에선 전문성을 갖춘 리더다. 그럴 권한이 있고, 또 책임도 있다. 그런데 그들의 입에서 나온 "그대로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자기 구조를 할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을 빼앗아 버렸다. 그러고는 정작 자신들은 해경정 배에 몸을 피했다. 진도 관제센터와 목포해경이 세월호를 통제권을 넘겨받은 뒤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배를 탈출하라!"는 그 당시에 가장 필요한 말을 누구도 하지 않았다.

중국 우한에 첫 환자가 나온 게 작년 12월 8일이다. 원인 불명 폐렴 환자가 집단 발병한다며 우한시가 사실을 공개한 게 12월 31일. 이 역시도 결코 빨랐다고 할 순 없지만, 더 기가 막힌 건 그 후다. "사람 간 전염은 확인되지 않았다." 기자가 현장 취재를 위해 1월 20일과 21일 우한을 찾았을 때도 우한 시민 상당수는 마스크조차 착용하지 않고 일상생활을 하고 있었다.

중국 보건당국이 사람 간 전염을 공개 인정한 건 1월 중순 중국 감염병 권위자 중난산 박사의 인터뷰 직후다. 첫 환자가 나오고 거의 한 달 반 만에 중국 인민들에게 진실을 알린 것이다.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우한 시민들 역시 무능한 행정 탓에 스스로 자기 구조를 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을 빼앗겼다.


우왕좌왕 '초기 구조'와 '초동 방역'

배가 점점 가라앉는 순간. 한 명의 목숨이라도 더 구해야 한다. 그 순간 해경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니 여기서 다시 장황하게 쓸건 없겠다. 다만 세월호 구조자 172명 중 절반 이상은 해경이 아니라 어민들이 구했다.

"사람 간 전염은 없다"는 말에 남의 일처럼 살던 우한 시민들이 공포에 빠진 건 1월 23일이다. 중국 전역으로 퍼져 가는 전염병을 막겠다며 인구 1,100만 도시를 하루아침에 봉쇄한 것이다. 우한 사람들은 그때야 알았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앞다퉈 병원으로 달려갔다. 근데 그 병원이 더 큰 참사를 불렀다.

사람이 드나들 길목만 막을 줄 알았던 우한시는 정작 아픈 사람을 치료할 병원을 보강할 계획이 없었다. 병원으로 몰려든 사람들은 2차, 3차 감염을 나았고, 병이 또 병을 부르는 참사로 이어졌다. 의료진마저 전염돼 속절없이 중환자실로 실려 갔다. 천정부지 오른 마스크를 수십 배 값을 치르고서라도 사고 싶었지만, 물건이 없었다. 무능력한 행정력 앞에 우한 시민들은 그렇게 무너졌다.


세월호 가족 조롱과 후베이인 혐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혀달라며 가족들이 단식을 이어갈 때 광화문광장에서 치킨과 피자를 시켜 놓고 조롱하던 이들이 있었다. 교통사고를 왜 국가가 책임지느냐는 망발도 이어졌다. 아이들의 목숨값으로 장사하려 한다는 터무니 없는 비난도 있었다.

중국을 휩쓴 우한인과 후베이인에 대한 혐오도 이에 못지않다. 관공서가 현상금까지 내걸고, 탈출한 우한 사람들을 당국에 신고하도록 독려했다. 살려고 떠난 사람들을 중국은 그렇게 대접했다. 지금도 우한인들은 중국에서 범죄자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는다.

중국의 이런 파렴치함을 성토하는 여론과 반중·혐중 인식이 한국에 널리 퍼져있다. 그런데 세월호 가족들에게 쏟아부었던 수많은 혐오와 조롱을 기억해 보면 우리에게 과연 이런 중국을 욕할 자격이 있는 지 모르겠다.


어디에나 있는 의로운 사람들!

배가 가라앉는 절체절명의 시간. 자기 구명조끼를 건넨 세월호 승무원이 있었다. 아이들을 구한다며 다시 배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가 순직한 사람도 있었다. 아이들 목숨이 먼저라며 정작 본인은 차오르는 물을 피하지 못한 교사도 있었다. 당국의 갈팡질팡 구조 상황을 가감 없이 전했던 수많은 목격자. 그들이 있었기에 세월호의 진실은 한 걸음 내디딜 수 있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 당국이 故 리원량 씨의 말을 귀담아들었다면 어땠을까? 반성문을 쓰라고 겁박할 게 아니라, 의사라는 직업에서 온 윤리의식과 문제의식을 존중했더라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됐을까? 중국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영웅이라 칭하는 것도 이런 아쉬움이 배경에 있다.

이번엔 변호사 출신 시민기자 천추스 씨다. 故 리원량 씨와 동갑내기 34살이다. 천추스 씨는 우한 사람이 아닌데도 남들은 다 떠나고 싶어 하는 우한에 제 발로 찾아갔다. 사람들이 병들고, 죽어 나가는 현장을 돌며 그 모습을 영상과 기사로 전했다.

천추스 씨는 1월 30일 올린 영상에서 "무섭다. 내 앞에는 바이러스가 있고, 내 뒤에는 공안이 있다. 살아 있는 한 여기서 보도를 계속할 것이다. 죽는 게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데 중국 공안을 그런 천추스 씨를 지난 6일 붙잡아 아직도 가둬 놓고 있다. 반성 없는 중국 정부가 나중 돌려받을 게 무엇일까


중국인은 묻는다. "국가란 무엇인가?"

중국 지식인들이 성명과 매체 인터뷰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중국 정부를 성토하고 있다. 우한 화중사범대 탕이밍 국학원 원장과 동료 교수들은 소셜 미디어에 "리원량의 경고가 유언비어로 치부되지 않았다면 이 국가적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공개서한을 냈다. 친첸훙 우한대학 교수는 홍콩 매체 SCMP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여론이 슬픔과 분노라는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면서 "후야오방 전 공산당 총서기가 죽었을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후야오방 총서기는 1989년 천안문 사건의 도화선이 됐던 인물이다.

자연 재난이든 사회적 재난이든 재난 앞에 국민은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더구나 그것이 나태한 행정력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책임까지 물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농단 사건으로 탄핵이라는 결과를 맡긴 했지만, 근저에는 세월호 아이들이 있었다. 지금 중국은 시진핑 체제에 마찬가지로 그걸 묻고 있다. 중국 정부는, 국가는 책임을 다했는가?

안양봉 기자 (beebe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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