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 봉준호답다는 것은
봉준호 영화세계 TMI 5가지

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LA 돌비극장에서 열린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는 봉준호 감독의 목소리는 처음으로 떨렸다. 이때껏 시종일관 유머러스하게 여유가 묻어났던 수상소감과 분위기부터 달랐다. 봉 감독은 그가 동경하는 마틴 스콜세지를 언급하며, 그의 영화 세계에 깊게 영향 받았다고 말했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등 아카데미 4관왕 달성을 계기로 봉 감독의 영화적 창의성에 영향을 미친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본다.

만화를 잘 그리기도 했다. 봉 감독은 연세대 사회학과 재학 시절 학보 ‘연세춘추’에 4컷 만화 ‘연돌이와 세순이’, 만평 ‘춘추만평’을 연재하며 날카로운 풍자를 곁들여 인기를 얻었다. 이 활동은 대학에 영화 동아리 ‘노란 문’을 만들고 영화를 찍은 것만큼이나 그에게 대학 시절 애정을 가졌던 기억으로 남았다. 이후에 감독이 되고 나서는 만화 그리던 실력을 콘티에 쏟아부어 ‘고퀄’ 콘티가 탄생했다. 카메라 감독도 콘티만 보면 카메라의 시선과 인물의 동선을 모두 읽을 수 있을 정도여서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라는 명성에 한 몫을 했다고 한다.
◇ 잠실의 풍경

그의 영화에는 일관되게 계단과 지하실이라는 공간이 나타나 수직적 이미지를 연출한다. ‘기생충’에서 가정부 문광이 자신의 남편을 숨겨놓은 지하실이나 영화 ‘살인의 추억(2003)’에서 형사들이 백광호(박노식)를 감금 조사하던 지하실이 대표적이다. 지하실 이미지는 사실 데뷔작인 ‘지리멸렬(1994)’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감독은 자신이 다녔던 잠실고등학교에 있던 지하실의 기억이 영감을 줬다고 설명했다.
◇ 삑사리인가 디테일인가

하지만 봉 감독과 작업해 본 적이 있는 영화인들은 ‘삑사리’ 역시 봉 감독의 머릿속에서 정교하게 계산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화면 안에 배치되는 소품 등의 모든 요소를 꼼꼼하게 챙기고, 스토리 측면에서 사소한 부분까지 치밀하게 복선을 배치한다. ‘살인의 추억’부터 함께 작업한 류성희 미술감독은 “감독님이 두만(송강호)이 들고 다니는 취재수첩으로 당시에 보급되던 농협 다이어리를 써야만 한다고 주장하셔서 진땀을 뺐다”며 ‘봉테일’의 치밀함을 설명했다. 하지만 ‘봉테일’은 꼼꼼함만으로는 설명하기 부족하다. 영화 ‘마더(2009)의 엄마(김혜자)가 관광버스에서 춤을 추는 장면에서 그는 세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컴퓨터 그래픽을 쓰지 않고, 둘째 실제 달리는 버스를 촬영하고, 셋째 태양광선이 버스를 수직으로 관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버스와 촬영차량이 나란히 달릴 수 있는 도로, 태양광선이 버스를 수직으로 관통할 때의 정확한 시점 등 제약조건에도 봉 감독이 이미 현장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디테일함이 좋은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었다.
◇ 송강호와 김뢰하

사실 송강호보다 먼저 봉 감독을 알아본 배우는 김뢰하다. 봉 감독은 대학 시절 첫 단편 영화 ‘백색인’을 연출하며 연극계의 무명 배우였던 김뢰하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한국영화아카데미 시절 졸업 작품인 ‘지리멸렬’, ‘플란다스의 개’ 등 봉 감독이 주목받지 못하던 시절 늘 섭외 1순위 배우가 됐다. 봉 감독이 이름을 알리게 된 영화 ‘살인의 추억’ 원작 ‘날 보러와요’를 소개해준 것도 김뢰하였고, 이 영화에서 형사 조용구로 출연해 강렬한 캐릭터로 남았다.
◇ 천재와 공포감

“항상 볼 때마다 이 사람은 정말 천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류승완 감독)
동 시대의 감독들은 봉 감독을 따라잡을 수 없는 천재로 평가하며 존경한다. 과연 이러한 천재에게는 어떤 공포감이 있을까 싶지만 머쓱해 하며 영화를 시작한 뒤 하루도 두려움 없이 보낸 적이 없다는 게 그의 말이다. 시나리오가 써지지 않을 때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죽이고 싶을 정도의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고 농담을 하는 그에게는 영화에 대한 두려움 외에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큰 동력이다.
“저 같은 경우는 공포감이 많은 편이에요 특히나 사회나 세상에 대한 불안, 공포감이 많이 있죠. 무언가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세상이 나빠져서 나도 그 구덩이로 빠져들면 어떡하나 그런 불안감. 그걸 잘 표현하는 데 자신이 있기 때문에 더 그런 쪽 느낌에 집착하는 것 같아요” 이러한 공포감은 감독 봉준호를 끊임없이 영화적 상상력의 세계로 이끌었고, 봉준호의 영화 세계를 더욱 봉준호답게 만들었다.
/정혜진기자 made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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