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대 오른 '학교의 2월'.. 봄방학이 사라진다
경기·세종시 등 방학 구조조정

학년 맨 끝에 달린 달, 2월은 별책 부록 신세다. 둘로 나눠 초반 1~2주는 겨울방학을 끝내고 등교하는 기간, 후반 1~2주는 봄방학(공식 명칭 ‘학년말 방학’)이다. 등교한다 해도 ‘반(半)방학’ 상태. 진도는 마쳤고, 시험도 끝났다. 붕 뜬 상태로 교실에서 영화 보며 시간 때우기 일쑤다. 봄방학 마치면 안 그래도 짧은 2월이 훌쩍 도망가버린다. 그래서 교육계에선 ‘취약 시기’라 부른다.
존재감 약한 '학교의 2월'이 수술대에 올랐다. 도려내는 환부(患部)는 겨울방학과 신학기를 잇는 환승역, 봄방학. 2월 말 찔끔하는 봄방학을 없애고 겨울방학을 두 달 동안 길게 하는 학교가 부쩍 늘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복병이 등장한 요즘, 봄방학과 겨울방학을 통폐합한 학교들은 상대적으로 한시름 덜었다.
별책 부록 2월의 변신
통상 겨울로 분류되는 2월에 하는데 왜 봄방학일까. 한때는 춘삼월(春三月), 진짜 봄에 했다. 일제강점기엔 일본처럼 4월 신학기제를 채택해 봄방학이 3월이었다. 1945년 광복 후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미국처럼 9월 가을 학기제로 바뀌었던 적도 있다. 3월 신학기제가 도입된 해는 1961년. 이때부터 2월 말 봄방학이 생겼다고 알려졌다. 이후 60년 가까이 이어졌다.
한 달 정도인 여름·겨울 방학의 절반도 안 돼 '방학인 듯 방학 아닌 방학 같은 방학'이다. 겨울방학에 딸린 방학이란 인상이 짙다. 봄방학 무용론이 등장한 배경이다. 교육부에서 '2015학년도 학사운영 다양화·내실화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봄방학 문제가 구체적으로 나왔다. 방학 일정을 학교장 재량에 맡기면서 몇 가지 모델을 제시했는데 그 중 하나가 '2월 등교 기간 최소화형'이었다. 겨울방학에 봄방학을 합쳐 길게 두 달 정도 하는 대신, 2월 수업을 아예 하지 않거나 종업식·졸업식만 하는 안이었다.
빛나는 12월·1월 졸업장
몇 년 새 방학 풍경이 완전히 바뀐 대표적인 지역이 경기도다.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2019학년도 기준 경기도 내 초등학교 91%(1286교 중 1166교), 중학교 82%(634교 중 517교), 고등학교 60%(476교 중 287교)가 2월 봄방학을 없앴다.
대신 겨울방학을 늦게, 길게 한다. 연쇄적으로 학사 일정이 바뀐다. 눈에 띄는 변화가 종업식과 졸업식 시즌이 1월로 앞당겨지는 것이다. '12월 말 겨울방학 시작→2월 초·중순 졸업식·종업식→2월 말 봄방학→3월 신학년 시작'이라는 전형적인 패턴이 깨지고 '1월 종업·졸업식 및 겨울방학→3월 개학 겸 신학년 시작'이라는 변격이 생겼다.
세종시의 경우 '봄방학'이란 말이 아예 사라졌다. 초·중·고 90곳 중 3곳만 제외한 97%가 올 1월 종업식·졸업식을 하고 학사 일정을 마무리했다. 세종시교육청 전우렬 공보담당 사무관은 "2017학년도에 '아이들과 함께 수업에 몰입하는 3월'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후 2018년과 2019년엔 100% 1월 졸업을 했고, 올해는 3군데만 2월 졸업을 했다"며 "세종시에선 봄방학이라는 말을 아예 안 쓴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충북 지역도 올 1월 초등학교 80%(259교 중 207교), 중학교 76%(127교 중 97교), 고등학교 46%(84교 중 39교)가 졸업식을 했다. '12월 졸업'까지 등장했다. 강원도교육청에 따르면 지역 고등학교 116곳 중 28곳이 지난해 12월, 85곳이 1월에 졸업식을 했다. 전통적인 2월 졸업식을 하는 학교는 단 세 학교밖에 없었다. 97%가 봄방학을 없앴다는 얘기가 된다.
서울은 상대적으로 봄방학을 고수하는 학교가 많다. 서울시교육청 통계를 보면 2019학년도 기준 봄방학을 없앤 학교 비율이 초·중·고 각각 4.8%(602교 중 29교), 21.0%(390교 중 82교), 9.4%(320교 중 30교)로 낮은 편이나, 2018학년도(각각 1.5%, 19.0%, 6.3%)보다는 증가했다.
서울 광장동 양진초 류덕엽 교장은 "교육청 차원에서 학사 일정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방침을 세우면 그 방향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서울 지역은 특별한 교육청 지침 없이 개별 학교에 전적으로 자율권을 주기 때문에 학년말 방학(봄방학)을 운영하는 학교가 많은 것 같다"고 했다. "'학교의 연말'은 2월인데, 송구영신하듯 2월에 학생들이 잠시 나와 전 학년을 마무리하고 새 학년을 준비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학교가 여전히 주변에 많다"고 했다.
2월 알차진다 vs 겨울방학 늦어

현장 반응은 뒤섞여 있다. 2년 전부터 봄방학을 없앤 경기도 구리시 구리중 이태희 교감은 "이전 학교에서 2014년 봄방학을 폐지해 보니 초반엔 저항이 있었지만 장점이 많아 지금 학교에 제안했다"며 "2월에 등교하지 않으니 학생 입장에선 어학연수 등 장기적인 방학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고, 교사들도 신학기를 준비할 여유가 생겨 좋다"고 했다.
올해 처음 봄방학을 없앤 남양주 A 초등학교 교감은 "3월 새 학기 전까지 쉬니 길게 체험학습을 갈 수 있어 학생과 학부모들 반응이 좋고, 학교에선 석면 철거 공사 등 크고 작은 공사를 할 수 있는 시간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반면 "교사 입장에선 성적 처리, 졸업식·종업식 준비, 다음해 업무 인수인계 등이 12월 연말에 한꺼번에 몰려 벅차다는 단점이 있다"고 했다.
고등학교는 봄방학을 유지하는 학교 비중이 높은 편이다. 대입에 중요한 학교생활기록부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구리 B 고등학교 관계자는 "1월에 학사 일정을 마무리하려면 12월 말에 생활기록부 작성을 거의 완료해야 한다. 시간이 촉박해 오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바짝 긴장한다. 크로스체크를 몇 번씩이나 한다"고 했다.
그래도 한계는 있다. 경기도 고양의 한 고등학교 교사 하모(43)씨는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기 때문에 학생부 기록이 잘못되거나 허술해질 가능성이 있는 건 사실"이라며 "졸업식이 끝난 1월 중순 이후 들어오는 대외상을 받을 수 없어 아이들에게 불리할 수도 있다"고 했다. 또 "합격자 현황을 전산 입력해 다음해 학생 진학 상담 자료로 쓰는데, 졸업해 버리면 완벽히 파악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고 했다.
정시를 치르는 고3 학생의 경우 입시가 완료되기 전 졸업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정시 추가 합격자 발표가 2월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한 학부모는 "정시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가 1월에 졸업해 버려 입시 상담을 누구에게 받아야 할지 애매했다"고 말했다. 봄방학을 없앴던 고양의 한 고등학교는 이런 이유로 2월 졸업과 봄방학을 부활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아이들 마음도 반반. 1월 초 종업식을 한 경기도 성남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박모(17)군은 "공부 흐름이 끊기지 않고 새 학기 공부를 할 수 있는 건 장점이지만 방학을 너무 늦게 해 12월 말에 좀 지친다"며 "종업식 이후에도 교과서 배부 등 방학 중에 등교해야 할 일도 생긴다"고 했다. 실제로 서울의 초등교사 박모(25)씨는 "학생들 관심사는 방학을 얼마나 빨리하느냐, 얼마나 길게 하느냐 딱 두 가지다. 겨울방학을 1월로 넘겨 하면 지겨워하는 아이가 많다"고 했다.
와중에 ‘잔머리’ 굴려 빈틈 놓치지 않는 아이도 있다. 봄방학이 없어지면 겨울방학 숙제 내는 선생님은 있지만 검사할 선생님은 없다. 3월 개학과 동시에 학년이 바뀌기 때문이다. “선생님 바뀌는데 숙제는 왜 해?” 반박 불가 논리로 무장한 ‘초딩’ 앞에서 뒷목 잡는 부모가 많아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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