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대담①, 고고학과 사료의 만남, <요하문명>과 <레지 고조선 사료>

김동호 기자 2020. 2. 4.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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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요하문명>과 고조선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뜨겁다. 작년 ‘아스달 연대기’와 같은 드라마가 제작된 것 역시 이런 대중적 관심을 반영하는 듯하다. 이 중심에는 국내 대표적 <요하문명> 연구자인 우실하 교수(한국항공대, 58)와 300년전 프랑스 레지 신부의 <레지 고조선 사료: RHROJ> 기록을 제대로 해제/사료교차검증/상호보완해 이슈화시킨 역사학자 유정희(동양고대사 전공, 38)가 있다. 2020년 2월을 맞이하여 때마침 이들의 대담이 성사되었다. 이들의 대화를 통해 관련 분야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보고자 한다. 다음은 이들의 ‘고조선 대담 총 4부작’ 중 1부이다.

◆ 현재 요하문명과 고조선의 접점을 찾고자 하는 대중들의 관심이 높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견해를 부탁드린다.

우실하 : 우선 ‘고조선’과 ‘단군고조선’을 구별해야한다. 아직도 ‘신화’ 취급을 받는 ‘단군고조선’은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된 최초의 고조선이다. 1980년대 초부터 요하(遼河)의 중-상류 지역에서 지난 5000여년 동안 누구도 모르고 있었던 새로운 ‘요하문명’이 발견되면서, 기원전 2333년에 건설되었다는 ‘단군고조선’의 실존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요하문명 지역에서 새롭게 발굴된 고고학적 유물들이 황하 문명과는 이질적일뿐 아니라 한반도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정희 : 사람은 누구나 전통 있고 유서 있는 오래된 그 무엇의 후손이고 싶어 한다. 그에 대한 일례로 발굴된 요하문명이 우리 민족과 어떤 식으로든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실제로 그쪽에서 발굴된 유적 등과 전통적으로 우리가 인지하는 고조선에 대한 상이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 그렇다면 요하문명과 고조선에 대한 두 분의 견해는 어떠한지 말씀 부탁드린다.

유정희 : 요하문명이 우리 민족의 시원이거나 아니면 최소 어떤 연관이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사료가 필요하다. 곧, 발굴된 요하문명과 일치하는 사료가 있는지 찾아야 한다. 현재로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유사>의 기록이다. 그러나 <삼국유사>의 기록은 정치적인 기록이 아니다. 정치적인 사건의 기록은 <레지 고조선 사료: Regis’s historical records on Old Joseon, RHROJ - 유정희 명명>, 일명 <레지 사료>이다.

<레지 사료>에는 소략하나마 고조선(레지가 Coree로 기록)과 중국 하(夏), 상(商)왕조와 전투 장면이 기록돼 있다. 내가 이를 백년 전 독립운동가 김교헌 선생 등이 쓰신 <신단민사/실기> 등과 사료 교차검증(cross-examination) 하였고, 다른 신문에서도 고맙게 언급해 주셨지만, 이를 더 나아가, ‘서경-후한서 동이열전-삼국유사-레지사료-신단민사/실기’ 등으로 사료 상호보완(reciprocal complementation)하여 고조선 역사의 기본 틀과 큰 뼈대를 만들었다. (한국강사신문 2019. 2. 12. 고조선 논쟁, 역사학자 유정희, 살아나는 사료들 참고)

우실하 : 현재도 우리나라 중-고 역사교과서에서는 비파형동검 등이 분포하는 만주 일대를 ‘고조선 영역’, ‘고조선의 문화권’, ‘고조선의 세력 범위’ 등으로 가르친다. 요하문명이 발견된 곳이 바로 이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새롭게 발견된 요하문명이 우리와 상관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미 중국학계에서도 ‘요하문명의 꽃’인 홍산문화(紅山文化: BC 4500~3000)의 후기(BC 3500~3000)에는 ‘초기 문명 단계’ 혹은 ‘초기 국가 단계’에 진입했고, 청동기시대인 하가점하층문화(夏家店下層文化: BC 2300~1600) 시기에는 국가 단계에 진입했다고 보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 고고학의 대부인 (고)소병기(蘇秉琦: 1909~1997) 선생은 홍산문화 시기에는 ‘고국(古國)’이, 하가점하층문화 시기에는 하-상-주와 같은 ‘방국(方國) 단계의 대국(大國)’이 존재했었다고 본다. 설지강(薛志强)은 하가점하층문화 시기에 ‘하(夏)나라보다 앞서 건설된 문명고국(文明古國)’이 있었다고 본다. 나는 홍산문화를 바탕으로 하가점하층문화 시기에 건설된 ‘방국 단계의 대국(소병기)’, ‘하나라 보다 앞서서 건설된 문명고국(설지강)’이 바로 ‘단군고조선’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며 시기적으로도 일치한다.

◆ 관련분야의 국내 연구 진척에 대한 두 분의 평가는 어떠한가.

우실하 : 나는 요녕대학교 한국학과 교수(2000.2~2002.8)로 있던 시기부터 20년 동안 요하문명 지역을 답사하고 요하문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여러 논문과 4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러나 아직도 국내 고고-역사학의 주류학계에서는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위 재야학계에서 열광할수록, 오히려 주류학계에서는 멀리하는 내가 예기치도 않는 이상한 형국이 벌어지고 있다.

유정희 :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현 한국고대사 관련 역사학계에서는 되도록 요하문명과 고조선이 연관 없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연관이 있든 없든 그러면 일단 검토를 제대로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문제는 검토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이슈화시킨 <레지 사료>는 요하문명과 고조선을 연결시켜 주는 중요한 연결고리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레지 사료>는 고조선이 유구한 나라라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증명해줄 거의 유일한 ‘해외작성사료(historical record of Old Joseon produced by non-Korean writers)’이기 때문이다.

/김동호 기자 dongh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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