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 한우물 판 '젊은 노포' "전통만큼 중요한 건 변화" ['창간 31' - 세계일보와 '동갑내기' 가게들]

송용준 2020. 2. 1.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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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레트로 열풍 속에 오래된 가게 '노포(老鋪)'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1989년 창간해 올해로 31년째를 맞은 세계일보와 함께 성장해온 가게라면 이제 노포의 문턱에 들어섰다고 할 만하다.

31년이 된 가게라니 오래된 건물과 외관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이곳은 세월의 흔적보다는 세련된 간판과 인테리어로 요즘 젊은이들과 호흡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터줏대감이 된 '은마서적'부터 도봉구 창동의 '예일문고'까지 한동네에서 쭉 자란 이라면 동화책과 참고서를 거쳐 인생의 무게가 담긴 고전까지 세월 따라 다른 책을 만나러 가게 되는 동네서점들이 서울에도 은근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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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 앞 와플하우스 / 간식은 분식류밖에 없던 시절 / 미8군서 와플 만드는 법 배워 인기몰이 / 메뉴 '신구 조화'.. 2500원 '서민가격' 경쟁력 / 효창공원 인근 창성옥 / 1948년 창업 후 새 주인이 인수한 지 30년 / "편안한 동무 같은 해장국" 단골들 발길 / 포장법 등 끊임없이 연구.. 매출 더 올라 / 이문동 신고서점 / 父 이어 아들이 운영 '터줏대감 헌책방' / 일찌감치 온라인 판매 병행해 '생존' / "재개발로 이전하지만 전통 지켜나갈 것"
요즘 레트로 열풍 속에 오래된 가게 ‘노포(老鋪)’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그런데 세월의 티끌이 얼마나 쌓여야 노포일까. 그 기준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다. 엄격함을 좋아하는 사람은 박물관에서 골동품의 기준으로 삼는 연한인 50년은 돼야 한다고 하지만 자영업장 5개 중 4개가 5년을 버티지 못하는 현실을 본다면 그건 너무 가혹한 잣대다.
그렇다고 10∼20년을 버텼다고 무작정 ‘노포’라고 하기에는 뭔가 쑥스러운 느낌이다. 그래도 한 세대를 가르는 기준인 30년은 넘겨야 ‘노포’라고 명함을 내밀 수 있지 않을까. 1989년 창간해 올해로 31년째를 맞은 세계일보와 함께 성장해온 가게라면 이제 노포의 문턱에 들어섰다고 할 만하다. 31살 언저리의 ‘젊은’ 노포들은 그간 갖가지 어려움이 닥쳐왔던 세월의 무게를 어떻게 견뎌왔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찾아 세계일보의 고향인 서울 용산구 일대를 둘러봤다.
세계일보와 서른한 살 동갑내기인 서울 용산구 남영동 숙대앞 와플하우스.
◆세계일보 동갑내기 숙대 앞 와플하우스

가장 먼저 발걸음을 향한 곳은 세계일보와 동갑내기 가게다. 용산에서 세계일보가 첫 페이지를 찍었던 1989년, 남영동의 여대생들 앞에서 첫 와플을 찍어냈던 곳, 바로 숙명여대 앞 ‘와플하우스’다.

31년이 된 가게라니 오래된 건물과 외관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이곳은 세월의 흔적보다는 세련된 간판과 인테리어로 요즘 젊은이들과 호흡하고 있다. 이는 창업자인 부모님으로부터 가게를 물려받아 운영하는 박선경(48) 사장의 노력 덕이다. 이 가게도 처음은 3평짜리 작은 점포로 시작했다.

“당시 대학가라도 간식이라곤 분식류밖에 없던 시절이었죠. 그때 부모님이 미8군에 근무하던 사람으로부터 와플 만드는 법을 배워 가게를 열었어요. 문 열고 이튿날부터 줄 서기 시작했어요.”

좋은 입지에 좋은 아이템이 성공의 비결이었다고 박 사장은 말한다. 빨리 자리를 잡았지만 과욕을 부리지 않은 것이 이곳에서 10년 고개를 세 번 넘길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박 사장은 “1997년 IMF가 왔을 때도 오히려 장사가 잘됐다”며 “저렴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기본 와플값이 2500원이고, 가장 비싼 메뉴인 빙수가 6500원으로 저렴하다.
“부모님이 반죽 도와주고, 동생이 가게일 도와주고 다 같이 운영해요. 돈을 좇지는 않습니다.”

물론 고비도 있었다. 2000년대에 접어들자 스타벅스와 같은 카페나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우후죽순 늘어나며 손님이 줄었다. 힘들어질 때 대기업으로부터 인수제안도 받았다. 박 사장은 “부모님이 물려주신 가게를 못 지킬까 불안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때 박 사장의 선택은 과거와 현재의 조화였다. 옛 메뉴를 잘 지키면서 새 메뉴도 개발해 시대의 흐름을 맞췄다. 가게 인테리어도 뒤처지지 않는 수준으로 고쳐나갔다.

“너무 변화를 주는 것도 마이너스예요. 유행은 돌고 돈다잖아요. 대형 프랜차이즈나 유명한 점포가 각광받다가 요즘은 다시 우리 같은 소규모 가게가 주목받고 있는 것처럼요.”

지킬 수 있는 자신만의 것을 지키며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이 메뉴나 자리를 보고 반가움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정도의 변화가 적정선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인근 용문시장 3대 해장국집 중 하나로 꼽히는 창성옥의 모습.
◆40년 노하우 이어 30년 성장한 ‘창성옥’

미식가들 사이에서는 효창공원 인근에 용산 3대 해장국집이 있다고들 한다. ‘한성옥’과 ‘용문해장국’ 그리고 ‘창성옥’이다. 세 곳 중 가장 늦게 개업한 용문해장국이 50년을 훌쩍 넘겼으니 세 곳 모두 노포 중의 노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간판에 ‘70년 전통’이라고 새겨넣은 창성옥의 문을 열었다. 31년 언저리의 가게를 찾는다는 취지와 어긋나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 가게가 1948년 창업한 것은 맞지만 1988년이 또 다른 시작의 해이기 때문이다.

창성옥 김길수(40) 사장은 1988년 이 가게를 인수해 영업을 시작한 어머니에 이어 2대째 해장국을 만들고 있다. 김 사장의 어머니가 가게를 인수할 수 있었던 것은 창업자들과 함께 일하며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40년의 노하우를 물려받아 김 사장까지 30년이 더 이어져 왔다. 어머니가 가게를 맡은 뒤 김 사장의 인생도 해장국과 함께 달려왔다.

김 사장은 “5살 때쯤 가게 부뚜막에서 밥을 먹고 있으면 손님들이 100원씩 주곤 했다”며 “그때 손님들이 나보고 나중에도 해장국 먹게 해 달라고 말한 기억이 생생한데, 어릴 때부터 가게를 물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라고 들려준다.

나이 지긋한 오랜 단골이 많은 가게인 덕에 박 사장은 “창성옥이 사랑받는 이유는 ‘기억’이다”며 웃는다.
“해장국은 익숙한 맛입니다. 그래서 해장국은 손님들에게 친근하고 편안한 말동무인 셈이죠.”

박 사장이 털어놓은 노포로 가는 노하우는 이렇게 푸근함과 친근함이었다. 하지만 과거를 고수하는 것만이 생존의 방식은 아니라는 점을 김 사장 또한 강조한다.

“외식 경영자 과정도 다니며 공부했어요. 거기서 배운 것을 활용해 포장용기를 도입하면서 매출이 훌쩍 뛰기도 했죠.”

연구와 공부도 필수라고 말한다. 여기에 더해 24시간 영업시간도 이제는 오전 6시에서 자정까지로 줄였다. 돈을 버는 일도 중요하지만 삶의 질도 중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세월이 변하면 일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김 사장의 생각이다.

◆동네 헌책방이 오래 사는 법, ‘신고서점’

오래된 가게는 맛집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묵묵하게 이웃처럼 버티고 있는 가게 중에서도 정감이 가는 곳은 동네서점이다. 동네서점들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가운데 30년 넘게 이웃과 함께하는 서점들도 적지 않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터줏대감이 된 ‘은마서적’부터 도봉구 창동의 ‘예일문고’까지 한동네에서 쭉 자란 이라면 동화책과 참고서를 거쳐 인생의 무게가 담긴 고전까지 세월 따라 다른 책을 만나러 가게 되는 동네서점들이 서울에도 은근히 남아 있다.

하지만 한때 동네마다 있던 헌책방은 이제는 보기 힘들다. 그래도 용산에는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지킨 헌책방 ‘뿌리서점’이 있다. 이 서점이 이름처럼 뿌리를 내린 지는 40년이 넘었고 용산역 인근에 터를 잡은 지도 18년이 됐지만, 이제는 이를 지켜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사장 김재욱(74) 씨가 최근 뇌경색으로 쓰러져 가게 업무를 거의 보지 못하고 있어 지금은 지인이 가게를 돌봐주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 안타까움을 뒤로한 채 31년 넘은 헌책방이 있다는 외대앞역을 향해 용산역에서 전철에 몸을 실었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 위치한 헌책방 신고서점 내부.
그러고 찾은 공은 동대문구 이문동에 자리한 ‘신고서점’이다. ‘팔고 사고’라는 문구가 새겨진 간판을 보는 순간 헌책방으로 서울 시내에서 30년을 넘게 버텨준 것이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1986년 문을 연 이 가게 역시 아버지에 이어 지금의 김종명(51) 사장으로 2대째 대물림됐다.

김 사장은 “옛 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가 근방에 있었던 탓에 고도제한이 걸려 있어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었던 데다 재개발 문제로 17년 동안 건물에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이 이곳을 1980년대의 분위기로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겉만 보고 신고서점을 복고 가게로만 판단하면 큰 실수다. 일찍부터 온라인과 오프라인 영업을 함께해온 앞서가는 서점이기 때문이다. 이미 1997년에 “조잡하나마 홈페이지를 개설 온라인 서점을 시작했다”고 김 사장은 전한다. 물론 그 이후 지금까지도 신고로닷컴이라는 온라인 중고책 매장은 성업 중이다. 그만큼 앞서갔기에 30년 노포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제 신고서점도 큰 변화의 길목에 섰다. 재개발지역이고 대로변인 탓에 부동산 투기세력이 많아지면서 이런저런 갈등에 휩싸여 새로운 장소로 이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만간 덕성여대 인근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는 김 사장은 “단골들이 많이 아쉬워하는데 나도 섭섭하다”며 한숨이다. 그래도 장소가 바뀌면 협소해서 불편했던 지금 가게보다는 넓고 깔끔하게 좋아질 것이라는 점을 위안으로 삼는다. 그러면서 김 사장은 “헌책방으로서의 전통과 다양성을 지키려 했던 노력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글·사진=송용준·박유빈 기자 eidy01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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