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하는 엄마들' 공동대표 백운희 "전국 엄마여! 단결하면 바뀐다" [원희복의 인물탐구]
[경향신문] 최근 벌어진 중요한 사회 이슈 가운데 하나는 1월 13일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이다. 엄청난 국가 보육·양육 예산이 술술 새고 있다는 충격적인 폭로는 전 국민의 공분을 샀다. 이 문제는 하루 이틀 된 문제가 아닌, 알면서도 쉬쉬했던 적폐 중 하나였다. 엄마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사립유치원 운영에 대한 규제·처벌규정이 만들어지고, 24년간 군림한 한국유치원총협의회(한유총)의 법인 설립 허가 취소를 이끌어냈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이 엄청난 일을 창립 2년여밖에 안 된 무명의 ‘정치하는 엄마들’이라는 단체가 이뤄냈다는 점이다. 100년 역사의 YWCA를 비롯해 많은 여성 연구·인권·정치 여성단체도 여성문제 현안인 보육·양육 적폐를 풀지 못했다. 그런데 신생 단체가 어떻게 그것을 이뤄냈을까. 그런 면에서 정치하는 엄마들은 연구대상이다. 백운희 공동대표(39)를 1월 20일 만났다.
국민의 공분 산 보육·양육 적폐 몰아내
-사립유치원도 국가회계시스템(에듀파인) 도입이 의무화되고, 회계부정 시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유치원 3법이 개정됐다. 이 성과에 만족하는가.
“처음 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있던 지원·보조금 부정에 횡령죄로 처벌하도록 하는 조항이 빠져 처벌규정이 약화됐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에 오른 것은 임재훈 의원 중재안으로, 비리예방에 최소한 기준을 마련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법을 만들어도 실행이 중요하다. 유치원 폐원 후 3자 개원이나 에듀파인을 쓰면서 이면계약하는 등 법을 빠져나가는 행위에 대한 감시가 필요하다. 지금 유아교육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문제가 많은 사립유치원은 감사 전 폐원할 것이다. 폐원하면 교육청이 매입해 국공립화해야 하는데 재원 마련에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부모협동조합형 아이디어도 나온다. 대부분 일단 지켜보고 있는 분위기다.”
-결국 유아교육에서 국가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나. 2018년 현재 전국 유아교육기관 4만8192개 중 국공립은 8403개로 17.4%에 불과하다.
“그렇다. 유아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옮겨야 한다. 그동안 사립 영역이 너무 커져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 국공립 유치권을 강화하는 문제는 정부, 특히 정치권에서 해야 할 일이다.”
-유치원 3법 개정을 위해 448일간 싸움을 벌였다. 고비는 언제였나.
“고비가 아닌 적이 없었다. 2018년 통과가 유력했지만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넘어갈 때가 가장 큰 고비였다. 야당은 ‘사유재산’이라는 이유로 계속 수정안을 제기했고, 여당의원들도 유치원 3법에 모두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 회원 1800명이 국회의원들에게 문자를 많이 보냈다.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법 개정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었다. 만들어진 지 불과 2년밖에 안 된 느슨한 엄마모임이 지역 유지에, 한유총이라는 막강한 이익단체를 앞세운 유치원 원장을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무모해 보이기까지 했다. 백 공동대표도 “유치원 원장들은 지역 정치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2017년 6월 결성됐다. 그해 4월 한 여성 국회의원이 임신·출산 사실을 숨겼다는 신문 칼럼을 읽고 엄마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모이기 시작했다. 백 공동대표는 “임신·출산의 문제는 개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이고, 당사자들이 나서 움직임을 가져보자며 창립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2018년 3월 전국 17개 시·도교육청과 국무조정실에 감사에 적발된 유치원 명단 정보공개를 청구하면서 ‘골리앗’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10조원의 누리과정 예산이 ‘가계부’보다 못한 회계로 사립유치원장 쌈짓돈으로 전락한 사실을 폭로했다. 사립유치원은 한유총을 통해 정치권 로비·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부정의 철옹성을 쌓은 사실도 드러났다. 이를 사실상 방치하거나 심지어 비호까지 한 교육부와 정치권에 대한 비난도 높아갔다.
결국 정부 여당은 2018년 유치원 3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야당의 반대로 수정안이 패스트트랙에 올라 300일을 꽉 채운 지난 1월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유한국당 필리버스터에 맞서 국회 앞에서 ‘필리버스킹’을 했다. 백 공동대표도 그 필리버스킹에 나섰다. 그는 “국민에게 정치권 책임 방기 문제를 고발하려 했다”고 말했다. 결국 엄마 정치가 여의도 정치를 이겼다.
2017년 6월 결성, 골리앗과 싸움 시작
‘정치하는 엄마들’은 이름부터 참여정치다. 현대 정치의 가장 큰 고민은 정치적 무관심을 넘어 정치를 혐오하는 몰정치다. ‘정치’라는 단어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단체 이름에 정치자를 넣는 것 자체가 모험이다. 그러나 정치하는 엄마들은 정치를 정면으로 받아들였다. 백 공동대표는 “아이를 키우며 마주하는 모든 문제, 보건·환경·주거·노동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은 결국 정치밖에 답이 없더라”면서 “정치시민운동을 통해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깨달음과 공감대를 가졌다”고 말했다.
정치하는 엄마들의 성과에서 간과해선 안 될 대목이 있다. 바로 시민·여성단체의 변화다. 과거 여성단체나 시민단체는 소위 몇몇 명망가나 전문가 위주로 움직였다. 그러나 이 모임은 명망가도, 특출난 유아교육 전문가도 드러나지 않는다. 모임은 회비를 내는 권리회원 900명과 참여회원 900명의 자원봉사 형태로 운영되다가 최근 상근자 2명을 뒀을 뿐이다.
그는 “오프라인으로 확장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SNS 기반으로 활동하다 보니 신속성이 있고, 무엇보다 위계가 없는 것이 우리 조직의 가장 큰 장점이고 동력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모임은 회원의 직업·경력·나이도 묻지 않고 모두 ‘언니’로 통한다. 이는 명망가·전문가들이 모여 ‘관료화’되고 ‘논의만 하고 행동이 없는’ 기존 시민·여성단체 운영 모습과 다르다. 사실 지난 촛불혁명과 최근 서초동 집회를 보면 소수 명망가나 전문가의 언론플레이 위주, 회원만 있고 활동이 없는 시민운동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이미 여성정치, 특히 엄마정치로 ‘여성·엄마민중당’이 있다. 민중당은 여성·엄마·청년·노동·농민 등 영역별 정당이 연합해 중앙당을 구성하는 독특한 정당체계를 가졌다. 엄마민중당도 육아·보육·여성정치 문제를 주로 다루고, 이번 유치원 3법 개정에도 앞장섰다. 백 공동대표는 “회원 중에는 민주당원인 사람이 많고, 정의·녹색당 당원도 있지만 아직 자유한국당 당원은 없는 것 같다”면서 “그런 정당활동을 하는 분이 이미 들어와 있고, 그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원 중에는 ‘정당화’를 얘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무리수를 둬가며 제도권 정치에 편입하기는 현실적 고민이 많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유치원 3법뿐 아니라 엄마와 관련해 다른 정치적 사안에도 할 일이 많지 않나.
“0~5세 어린이집 급·간식비 기준이 1745원이었다. 22년째 이 금액이고 여기서도 부정을 저지르는 어린이집도 있다. 지난해 전국 지자체별 어린이집 간식 지원비 전수 조사를 해보니 1100원 지원하는 자치단체도 있지만 아예 지원하지 않는 곳도 있다. 서울시청 어린이집은 6391원이다.”
-지방정부 재정력에 따라 지원액 차이는 이해할 수 있지만, 부모 직업에 따라 아이들 급·간식비가 3배 차이 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 부모 직업에 따라 자녀의 식판 질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문제다. 공공기관 어린이집은 최소 3000원이 넘는다. 그동안 기준 자체가 너무 낮았다. 우리가 이 문제를 제기해 올해부터 1900원으로 인상됐다.”
-아이 돌봄정책은 곧 저출산 문제를 푸는 것이다. 저출산은 인구절벽이라는 엄청난 재앙으로 닥칠 전망이다. 그동안 정부는 수백조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세계 최저 합계출산율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당사자 입장에서 볼 때 어디에 문제가 있는가.
“가장 필요한 것은 양육자에게 시간을 주는 것이다. 지금 정책은 애를 낳으면 수당을 주는데, 돈을 좀 준다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 양육자에게 아이를 돌볼 시간을 줘야 한다. 결국 육아휴직, 나아가 노동시간 단축이다. 아무리 육아휴직·출산휴가를 법적으로 보장해도 민간에도 정착돼야 한다. 중소기업은 육아휴직·출산휴가 보장이 안 된다. 그다음이 양육 인프라다. 양육을 위한 공공시설이 갖춰져야 한다.”
-서울시교육감과 인터뷰하면서 요즘 교실이 많이 남는데, 그런 시설을 공공 어린이집이나 방과후 학교 등으로 활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으니 ‘간단치 않다’고 대답하더라.
“선생님들은 ‘학교는 아이를 교육하는 곳이지 돌보는 곳이 아니다’, ‘선생은 교육하는 사람이지 아이 돌보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크다. 돌봄교실을 확대하고 싶어도 못한다. 내부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는 “세종시 모델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출산·육아휴가, 무엇보다 근무시간이 보장된 공무원의 노동환경과 사립 없이 모두 국공립유치원만 있는 세종시 육아인프라가 아이들 키우기 최적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는 저출산 문제 해결책은 “양육자에게 시간을 주고 공공시설을 갖추면 된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백 공동대표 역시 아이 때문에 직장을 그만둔 ‘경력단절녀’다. 그는 결혼해 대전에 살며 직장을 다니고, 남편은 서울로 출퇴근했다. 아이가 생기고 양육문제로 고민하다 결국 아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남편의 직장이 있는 서울로 올라왔다. 그런데 서울생활도 문제였다. 비싼 사립유치원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를 국공립유치원에 보내려 했는데 추첨해 뽑혀야 했다”면서 “한 나라의 복지정책이 추첨이라는 복불복으로 이뤄진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말했다. 그의 유치원 3법 개정 운동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비롯됐다.
그는 정치하는 엄마들 모임의 룰처럼 개인의 신상 얘기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단지 그는 1981년생이고,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고, <대전일보>에서 기자생활을 8년간 했다고만 밝혔다. 그는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실제 정치하는 친구·선배를 보면서 감동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요즘 정치의 필요성을 매우 절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요즘 30~40대 여성의 정치 관심은 매우 높게 나타나고 오히려 남성보다 더 진보적이다. 이러한 현상을 그는 이렇게 해석한다.
“복합적이겠지만 사회적 약자로서 경험이 클 것이다. 30~40대 여성은 이전 세대와 달리 ‘알파걸’로 교육받았다. 우리는 남자와 동등하고, 내가 똑똑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가정·학교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사회에 나와보니 50~60대 어머니 삶과 다르지 않았다. 남성보다 취업은 더 어렵고, 보수도 낮고, 승진도 누락됐다. 나는 이에 대한 좌절·분노 등이 정치적 각성·관심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이해가 되는 대답이다. 학교에서 배우던 이론과 우리 사회의 괴리가 결국 정치하는 엄마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러한 괴리가 계속되는 한 여성정치는 훨씬 적극적이 될 것이다. 그는 “전국의 여성이여, 행동하라”고 주문한다. 그는 “여성이 정치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방법을 모르는 것”이라며 “진짜 바뀐다, 같이 하면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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