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연에 놓인 우물 하나, 그 속에 평범한 악인이 산다면

[문학과 영화 사이, 텍스크린-4]
④ 소설 '7년의 밤' vs. 영화 '7년의 밤'
※ 스토리텔링이라는 점에서 소설과 영화는 닮았습니다. 기술적 한계를 초월해버린 영화는 소설에 담긴 어떠한 장면도 간명한 컷으로 구현해내는 시대에 돌입했습니다. 문자화된 텍스트(text)로서 보이지 않는 상상력을 자극하며 독자와 만날지, 영상화된 스크린(screen)에서 언어로 설명 불가능한 표현력을 보여주며 관객과 대면할지의 차이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소설과 영화가 빼닮았더라도 그 간극에선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무수한 차이가 발생합니다. '텍스크린(teXcreen)'은 텍스트(text)와 스크린(screen) 사이에서 차이점을 발견해 예술 형식의 변화와 콘텐츠의 내용적 진화를 고민하려는 연재기획입니다. 굳이 'X'를 대문자로 표기한 건 텍스트와 스크린의 컬래버레이션(X)의 시대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문학이 죽었다고 여겨지는 오늘날, 영화로 만들어지는 소설은 문학의 대중화라는 불가피한 시대정신의 최전선에 위치해 있습니다. 반드시 매회 소설을 완독하고 영화를 다시 본 뒤 두 장르 간 차이를 진단하고 비교합니다. 격주 금요일 오후 온라인 연재됩니다.

온통 암흑인 스크린에서도 배우 장동건·류승룡의 열연만큼은 빛났던 추창민 감독의 2018년작 영화 '7년의 밤'은 참담한 실패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손익분기점 290만명에 누적관객 수는 53만명이었습니다. 거물급 두 연기자의 성실한 연기, 천만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메가폰을 잡았던 감독의 만남을 상기한다면 성적표는 악몽에 가깝습니다. 대략 살펴보니 시종일관 어두침침한 미장센, 일관성을 상실한 캐릭터, 지나치게 불친절한 스토리가 참패의 세 가지 원인인 듯합니다.
영화에 한껏 당겨진 혹평의 활시위는 베스트셀러 원작소설 '7년의 밤'에 뒤따르던 호평에 견준다면 당혹스러울 만큼 아쉬운 측면이 있습니다. '7년의 밤'을 낸 출판사 은행나무에 확인하니 정유정 소설가의 장편 '7년의 밤'은 58만부의 판매고를 올렸다고 하네요. 호수를 둘러싼 저지대 마을에서 입체적 인물이 벌이는 난투와 복수의 서사는 '뒤바뀐 선악'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장르소설로 기호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쉬이 가능할 것입니다.
두툼한 범죄극을 이틀간 원작으로 읽었더니, 마치 더렵혀진 주사기로 뭔가에 감염된 뜨거운 피를 혈관에 밀어넣은 듯 어지럽습니다. 520쪽짜리 텍스트가 123분짜리 영화로 스크린에 옮겨지면서 탈락·삭제·변형했기에 발생하는 낙차의 멀미 같습니다. 후술하겠지만 정유정 소설가는 사실(fact)과 진실(truth) 사이에 놓인 하나의 접속어, '그러나'의 의미에 골몰하며 이 글을 썼다고 합니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정면의 사실과 이면의 진실 사이에 형태도 없이 놓인 '그러나'라는 절대벽을 하나 만나기 위해 원작과 영화의 차이점을 인물 중심으로 되짚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영화 '7년의 밤'에는 유년의 최서원이 "아저씨"라 부르는 안승환이란 이름의 기묘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낮엔 세령댐 보안팀에서 일하고 밤엔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메고 댐 밑바닥에 수몰된 세령마을로 '몽환의 여행'을 떠나는 인물입니다. 지상과 수중의 두 세계를 드나드는 안승환은 영화에서 최서원의 든든한 조력자 역할에 그치지만 소설 '7년의 밤'에서는 본업이 다릅니다. 안승환은 원작에서 소설가입니다. 머구리배 선장인 큰형 이야기로 한 문예지 신인추천상을 받으며 등단한 소설가로 나옵니다. 이사를온 최서원과 한 방에서 살며 인연을 맺고, 후일 서로를 연민합니다.
'소설가 안승환'이라는 설정의 유무는, 원작과 영화 간 의미의 차이를 발생시킵니다. 원작에서 최서원은 익명의 발신인으로부터 '세령호 사건' 이후 7년간 진실을 알아내고자 쓴 소설과 취재노트를 박스째로 받습니다. 미지의 원고는 '프롤로그-2004. 8. 27. 세령호'로 시작하지요. 안승환은 7년간 그날의 진실을 밝히려 분투했고 바로 그 결과물이 최서원의 눈앞에 놓였습니다. 안승환에게 저 7년은 노을이 지고 박명이 물러가면 매일 반복되고 교차하는 풍경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이면의 진실을 보려는, 한 인간의 절망의 빛이었죠. 일출도 일몰도 없는, 물질도 복사도 없는 완벽한 절망의 시간입니다. 재앙 이후에 암흑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야만 했던 영속적인 탐구의 세계였습니다.
오세령이 세령호에서 던져지던 그 시간에 안승환은 수중에 있었습니다. 안승환은 물 속에서 오세령과 마주합니다. "물결을 타고 얼굴 뒤편으로 흐르는 검은 머리칼, 새하얀 얼굴, 몸에 휘감긴 흰 옷자락, 물을 차듯 위를 향해 쭉 펴고 있는 다리. 사람이었다. 여자아이였다. 자그마한 맨발이 그의 어깨에 걸렸다가 미끄러져 내렸다."(소설 '7년의 밤', 124쪽) 자신을 성추행범으로 내몰았던 오영제와의 깊은 악감정, 복잡한 일에 휘말리기 싫은 두려움 때문에 오세령을 외면하지요. 거대한 스케일의 죄책감으로, 안승환은 속죄의 소설을 남겼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최현수라는 인물의 의미 변화는 안승환보다 강력합니다. 영화와 달리 원작의 최현수는 자수하지 않고 자살하지도 않습니다. 원작의 최현수는 "자신이 상상하는 최악의 상황"인, 아들 최서원 앞에서 자신이 체포되는 것을 두려워 했을 뿐이며 바라건대 자신에게 기적이 다가와 사건이 미결로 끝나는 상황을 상상합니다. 오세령을 죽인 죄책감에 시달리다 옥중 자살한다는 설정도 원작에는 없습니다. 이 차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 부분을 해석하려면 악인으로서의 오영제란 캐릭터를 함께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긴 세월을 함께 산 아내 문하영에게 "악마"라고 불리고, 딸아이를 무참히 폭행하는 가정폭력범 오영제가 어찌하여 딸아이의 죽음에는 그토록 분노하느냐는 질문은 이 영화의 모순점으로 세간에 이해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오영제의 폭행은 소설에서 더 잔인합니다. 오영제는 딸아이 입에서 "석류 알 같은 알맹이 두 개"로 비유되는 '앞니'가 부러져 나오도록 때리는 악마입니다. "나직하게 깔리는 그 샛노란 화염은 혈관을 타고 폭주하며 그의 지성을 태우고, 이성을 태우고, 짐승과 인간을 구분 짓는 최후의 무엇까지 태워버렸다."(소설 '7년의 밤', 107쪽) 읽는 사람마저 기분이 더러워집니다.
그렇다면 악인 오영제를 피해자로, 범인(凡人·평범한 사람) 최현수를 가해자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영제는 결코 이해받을 수 없는 악인이지만 무면허 음주운전 뺑소니범에게 딸아이를 잃은 '아비'입니다. 최현수는 대출금을 갚고자 오지의 사택행을 묵묵히 수용하는 흔한 서민이지만 "상상도 못할 장소에서 머리를 풀어헤치고 날아든 유령 같은 여자아이"의 입을 틀어막으며 은폐했던 악마성을 꺼냅니다. 그의 팔을 휘감는 마비 증상은 바로 내재된 악마가 튀어나왔다는 의미이겠지요.
추창민 감독도 정유정 소설가도, 이 지점에서 악인의 복수는 선인의 그것과 달리 취급받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선하다고 여겨지는 자의 심연에 숨겨져 있었을 뿐이었던 악함은 과연 이해받을 수 있는지도 묻습니다. 소설에서 최현수의 아들 최서원은 '12월 27일 09시 사형수 최현수의 형이 집행됐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메시지를 받습니다. 원작과 달리 영화에서 최현수가 자수하려 했다거나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설정으로 차이가 발생된 까닭은 최현수의 내면에 숨겨뒀던 '악의 평범성'을 강화하기 위한 영화적 장치가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최서원이란 인물에서 발생하는 의미의 낙차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정유정 소설가는 '작가의 말'에 이렇게 썼습니다. "사실과 진실 사이에는 바로 이 '그러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야기되지 않은, 혹은 이야기할 수 없는 '어떤 세계'. 불편하고 혼란스럽지만 우리가 한사코 들여다봐야 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왜 그래야 하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모두 '그러나'를 피해 갈 수 없는 존재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다."(소설 '7년의 밤', 521쪽, '작가의 말')
최서원은 '아저씨' 안승환에게 묻습니다. "이거 사실이 아니지요?" 여자아이의 목을 비틀어 살해하고 여자아이의 아버지를 몽치로 때려죽이고 아내마저 죽여 강에 내던졌으며 경찰 넷과 한 마을 주민 절반을 수장시킨 "미치광이 살인마"가 바로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끝내 부정하려 합니다. 안승환은 답합니다. "사실이 전부는 아니야." 영화와 달리, 원작에서는 최서원이 끝까지 사실과 진실의 어딘가를 헤맵니다. 부친을 향한 분개심으로 가득한 영화 속 최서원은 그런 점에서 다소 캐릭터의 깊이가 희미해졌다는 평가를 피하긴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최현수의 아내이자 최서원의 엄마인 강은주는 어떤 의미의 인물일까요.
진실이라는 거대한 문 앞에서, 최현수의 아내 강은주와 오영제의 아내 문하영은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원작에서, 먼저 강은주는 진실을 완벽하게 외면하지요. 남편의 범죄를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무서운 진실, 너무나 어마어마해서 감당할 수 없는 일은 못 본 체하고 싶은 것이 인간"이라는 정유정 작가의 문장은 소름이 끼치는 인류학적 보고서에 가깝습니다.
반면 소설에서, 문하영은 다른 길을 택합니다. 원작에서 문하영은 7년간 오영제의 눈을 피해 생존해 있었으며, 진실로 향하는 소설의 집필을 도와달라는 안승환의 제안을 결국 받아들여 오영제의 악마적 행적과 황폐한 내면을 적어 넘기는 핵심 역할을 수행합니다.

최현수라는 인물은 죄를 저지르며 악행을 벌이다 자기 연민에 빠졌습니다. 오영제는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기는커녕 타인의 죄에 자신의 분노를 접목했습니다. 안승환은 사실 너머의 진실을 확인하고자 자신의 생을 쏟아붓지만 어딘가 머뭇거립니다. 최서원은 끝내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다가 진실을 확인하고 절망의 시간에 돌입합니다. 강은주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외면하고 은폐하고자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문하영은 사실을 확인해줌으로써 진실을 밝히고자 위태로운 삶을 베팅했지만 슬프게도 무력합니다.
결국 '사실과 진실' 앞에서 인간은 어떤 의지를 품고 어떤 선택을 내리는지가 '7년의 밤'이 품은 주제의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소설 '7년의 밤'에는 폐차버스 뒤에 베니어합판으로 막은 골방에서 자란 강은주의 어린 시절 일화를 비롯해 오세령의 혼을 건지려는 씻김굿 박수무당을 오세령의 외조부가 아니라 오영제가 직접 불렀다는 내용 등 영화와 상이한 부분이 상당합니다. 최현수의 치아를 치료해주러 오영제가 교도소에 매주 한 번씩 다녀가고, 의문의 치과의사가 오영제임을 최현수도 인지하고 있다는 설정도 흥미롭습니다. 또 "아부지, 나는 봤어유. 우물을 메꿔야 해유. 우물이 사람을 집어삼켜유"라며 부르짖는 영화의 무녀(巫女)는 소설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흐름을 오컬트로 오인하도록 이끌고자 했던 영화적 맥거핀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심연에 악마를 숨긴 채 살아가는 존재일까요. 그 악마는 언제쯤 바깥으로 나올까요. '7년의 밤'은 소설도 영화도, 저 칼끝과도 같은 질문을 목울대에 들이대면서 독자와 관객을 몰아세웁니다. 그 자체로 하나의, 잘 벼린 칼날 같은 이야기입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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