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된 제주 비자림로 공사, 3월 재개 움직임
[경향신문] ㆍ1년 반 만에 현장 가보니
삼나무 잘린 곳 잡풀만 무성
곳곳 확장 찬반 현수막 걸려
도, 설계 변경해 벌채 최소화
시민단체, 환경보호책 촉구
지난 17일 찾은 제주 비자림로(27.3㎞) 확·포장 공사 구간은 제주도가 왕복 2차선을 4차선으로 확장하기 위해 도로 옆 삼나무를 대거 벌채하면서 논란이 된 곳이다. 구좌읍 대천교차로에서 금백조로 입구를 연결하는 구간(2.9㎞)으로 일부 공사용 울타리가 설치됐지만 현재 공사는 중단된 상태다.
현장은 논란이 시작됐던 1년 반 전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당시 900여그루의 삼나무가 잘려나간 곳은 여전히 수염을 밀다 만 것처럼 휑했다. 댕강 잘려나간 나무 밑동 주변으로 무성하게 자란 잡풀 정도만이 시간의 흐름을 알려줬다. 공사가 중단되면서 가까스로 벌채를 피한 나머지 숲은 깊고 울창했다. 곳곳에 비자림로 확장공사 반대 시민모임이 내건 현수막과 시설물이 눈에 띄었다. ‘숙원사업인 도로 확장을 조속히 시행하라’며 지역주민이 내건 찬성 현수막도 여럿 보였다.
비자림로 확장공사 논란은 2018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주도는 이 구간의 도로 확장을 위해 삼나무 수천그루 벌채 계획을 세웠으나 환경단체의 반발로 공사 시작 2개월 만에 중단했다. 그 후로도 논란은 확산됐다. 환경단체는 이 도로가 다른 곳에 비해 크게 정체되는 도로라고 보기 어려운데도 도로 확장으로 생태계와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2공항을 시작하기 위한 첫 단추라고도 주장했다. 반면 구좌읍, 성산읍 등 동부지역 주민들은 “지역민이 애용하는 제주시 연결 도로로, 확장은 10년 숙원사업이었다”며 “최근 관광객 증가로 교통량이 급증했고 농수산물 수송을 원활하기 위해서도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주도는 같은 해 11월 설계 변경안을 발표하고, 이듬해 3월 공사를 재개했다. 제주도는 공사 구간을 3곳으로 나눠 구간에 따라 도로 너비를 축소하거나 우회도로를 만들고, 기존 삼나무숲을 중앙분리대로 활용하는 식으로 설계를 변경해 벌채 면적을 최소화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민모임인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시민들’은 개선안이 부실하다고 지적했고, 현장에서는 9종의 법정보호종이 서식하는 것을 확인했다. 환경부 영산강유역환경청은 시민모임의 의견을 받아 지난해 5월 제주도에 공사 중단과 환경저감대책 수립을 주문했다.
제주도는 최근 영산강유역환경청으로부터 비자림로 2구간의 환경저감대책에 대한 검토의견을 받았으며, 이를 토대로 오는 3월쯤 공사를 재개할 예정이라고 22일 밝혔다. 영산강유역환경청은 야생동물의 로드킬 방지를 위해 삼나무 중앙분리대를 없애거나 축소하고 갓길도 줄여 도로폭을 현 계획(27m)보다 크게 축소할 것을 주문했다. 도로 주변에서 확인된 팔색조, 붓순나무 등 각종 법정보호종 서식에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차량 속도도 시속 60㎞ 미만으로 낮추고, 종점부의 확·포장 계획도 취소할 것을 권고했다. 제주도는 영산강유역환경청의 의견을 도로 설계에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반대 시민모임 관계자는 “제주도가 영산강유역환경청의 권고에 따라 2구간 공사에 대해서는 인정할 예정”이라며 “1구간과 3구간은 현재 진행 중인 조사가 마무리되고 대책이 나오면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박미라 기자 mr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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