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무지개 빛깔의 새해 엽서 [이해인 수녀의 詩편지]
[경향신문]

빨강 그 눈부신 열정의 빛깔로
새해에는
나의 가족, 친지, 이웃들을
더욱 진심으로 사랑하고
하느님과 자연과 주변의 사물
생명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겠습니다
결점이 많아 마음에 안 드는 나 자신을
올바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렵니다
주황 그 타오르는 환희의 빛깔로
새해에는
내게 오는 시간들을 성실하게 관리하고
내가 맡은 일들에는
인내와 정성과 책임을 다해
알찬 열매를 맺도록 힘쓰겠습니다
노랑 그 부드러운 평화의 빛깔로
새해에는
누구에게나 밝고 따스한 말씨
친절하고 온유한 말씨를 씀으로써
듣는 이를 행복하게 하는
지혜로운 매일을 가꾸어가겠습니다
초록 그 싱그러운 생명의 빛깔로
새해에는
크고 작은 어려움이 힘들게 하더라도
절망의 늪으로 빠지지 않고
초록빛 물감을 풀어 희망을 짜는
희망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파랑 그 열려 있는 바닷빛으로
새해에는
더욱 푸른 꿈과 소망을 키우고
이상을 넓혀가며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로
삶의 바다를 힘차게 항해하는
부지런한 순례자가 되겠습니다
남색 그 마르지 않는 잉크빛으로
새해에는
가슴 깊이 묻어둔 사랑의 말을 꺼내
편지를 쓰고, 일기를 쓰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색의 뜰을 풍요롭게 가꾸는
창조적인 기쁨을 누리겠습니다
보라 그 은은한 신비의 빛깔로
새해에는
잃어버렸던 기도의 말을 다시 찾아
고운 설빔으로 차려입고
하루의 일과를 깊이 반성할 줄 알며
감사로 마무리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다른 이에게 거듭 강요하기보다는
조용한 실천으로 먼저 깨어 있는
침묵의 사람이 되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가지 무지개 빛깔로
새로운 결심을 꽃피우며
또 한 해의 길을
우리 함께 떠나기로 해요
- 시집 <사계절의 기도>에서
연말연시가 되니 여러 친지들이 부쩍 이 작은 수녀가 쓴 시들을 꾸며서 보내주곤 합니다. 이 시는 많은 누리꾼들이 그림엽서나 영상으로도 만들어 공유한 새해 시입니다.
지난해 어느 여름날 하늘에 뜬 쌍무지개를 보고 수녀원 베란다에서 일제히 감탄하던 즐거운 시간을 자주 떠올려 보곤 합니다. 평소에는 무뚝뚝하고 무표정한 수녀들조차 어찌나 환호하며 좋아하던지 잠깐 지나가는 아름다운 무지개의 위력을 절감하였지요.
올 한 해는 제가 무지개를 바라보고 감탄하였을 때의 그 반가움과 설렘을 기억하며 하루 한순간도 무미건조하지 않게 보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살아가노라면 이렇게 저렇게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먹구름으로 덮쳐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느 순간 희망의 무지개가 뜨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매일 새롭게 올라가야 할 일상의 언덕길에서 끊임없이 창의적인 무지개 빛깔로 사랑의 노력을 계속하다 보면 승리의 고운 무지개 하나 제 마음의 하늘에도 펼쳐지리라 믿습니다.
이해인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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