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종·아주대병원, '화해의 골든 타임' 지났나

오현태 입력 2020. 1. 2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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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인건비 갈등'으로 크게 틀어져
"헬기 못 탄다." 닥터 없는 닥터헬기 우려
복지부 장관 "양쪽, 서로 포용해야"
갈등 깊어 포용 가능할지 의문


유희석 아주대 의료원장이 이국종 교수에게 욕설을 한 게 알려지면서 외부에 드러난 아주대 외상센터 갈등이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교수는 다음 달 초 병원에 복귀하면 외상 센터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했고, 외상센터 의료진들은 인력 충원 없이는 닥터헬기에 탈 수 없다고 선언했다.

보건복지부가 감정의 골이 깊다고 할 정도로 양측의 갈등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 화해가 어려운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간호사 인건비'가 결정타

아주대병원과 외상센터의 갈등은 크게 인력, 병상, 닥터헬기로 나눌 수 있는데, 갈등이 폭발한 결정적 계기는 인력 부분이다.

이국종 교수는 KBS와의 통화에서 "(병원에서) 돈까지 떼먹으니까 이제 도저히 안 되겠다 싶더라"며 "그래서 2018년에 끝이라고 생각해서 책을 냈다"고 말했다.

이 교수가 병원이 돈을 떼어먹었다고 표현한 부분은 국가에서 지원한 간호사 인건비다. 보건복지부는 2018년 기존에는 지원이 없었던 외상센터 중환자실 간호사 인건비를 새로 지원하겠다고 했다. 아주대병원은 간호사 1인당 4,000만 원씩 64명에 해당하는 25억 원가량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당시 아주대병원은 법적 기준보다 28명 많은 중환자실 간호사를 병원 부담으로 쓰고 있었다. 이국종 교수는 이 간호사들은 계속 병원이 인건비를 부담해 쓰고, 국가 지원금은 모두 새 간호사를 뽑는 데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교수는 이런 판단을 바탕으로 중환자실 간호사 외에도 외상병동 간호사 등 67명을 충원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병원은 병원이 부담하던 중환자실 간호사 28명의 인건비를 빼고 36명만 새로 뽑았다. 28명은 이미 기준보다 더 쓰고 있었으니 국가 지원금으로 이들의 인건비를 충당한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러한 병원의 결정을 국가지원금을 떼먹은 걸로 보고 문제를 제기했다. 사실 확인에 나선 복지부는 법 위반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병원에서 법적 기준보다 더 쓰고 있었던 간호사들도 국가 지원 대상이 됐기 때문에 병원 결정이 문제가 없다고 봤다.

복지부는 다만, 병원에 지원금을 기존 인력 인건비를 돌려도 위반은 아니지만, 이왕이면 외상병동 간호사 등 외상센터 관련 인력을 충원하는 데 재투자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병원은 권고일 뿐이라며 따르지 않았다.

이 교수는 병원에서 외상센터를 운영하기로 했으면 제대로 운영해야 한다며, 병원에서 부담하던 인건비는 국가지원금이 내려와도 병원에서 계속 부담하는 게 맞는다는 입장이다. 반면 병원은 병원 부담을 국가에서 줄여주기로 했으니 이에 따른 것뿐이라고 맞선다.


'닥터 없는' 닥터헬기 되나

지난해 9월 경기도에서 예산을 대서 도입한 닥터헬기는 10월 독도 인근 바다에 추락한 중앙119구조본부 헬기와 같은 기종으로, 사고 이후 운행이 정지됐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의 안전점검을 거친 닥터헬기는 운행이 가능하다는 결정이 났는데, 외상센터 의료진들이 인력 충원을 해주지 않으면 헬기에 탈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운행 재개가 불투명해졌다.

닥터헬기 문제도 앞서 살펴본 간호사 인력 충원 문제와 관련이 있다. 이 교수는 2018년 간호사 67명 신규 채용을 병원에 요구하면서 항공전담 간호사 8명도 채용해달라고 했다.

2011년부터 당시까지는 닥터헬기가 없어서 소방헬기가 닥터헬기 역할을 했고, 헬기 전담 간호사가 없어서 병동 일을 하던 인력 등이 출동이 있을 때마다 헬기에 탔다. 소방헬기 시절에는 이렇게 버텨왔지만, 닥터헬기가 도입되면 출동 건수 등이 많아져 버틸 수 없다고 이 교수는 판단했다.

그러나 당시 병원에서는 중환자실 간호사 36명만 채용하고 닥터헬기 인원은 채용하지 않았다. 외상센터 관계자는 "병원에서 매년 차례대로 채용해준다고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외상센터 의료진들은 2011년 무렵 헬기로 환자를 나른다고 했을 때 모두가 말도 안 된다고 반대했고, 헬기가 필요하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 그동안에는 인력이 부족하지만, 헬기를 무리해서 탔다는 입장이다. 헬기로 사람을 많이 살리면 헬기의 필요성이 인정돼 닥터헬기가 도입되지 않겠냐는 계산이었던 것이다.

의료진의 계산대로 닥터헬기는 도입됐지만, 인력 부족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외상센터 관계자는 "병원에서는 기존 인력으로도 탔던 헬기를 왜 갑자기 못 탄다고 하느냐고 말한다"고 전했다.


아주대병원 "입장 없다" 반복

아주대병원은 이번 갈등이 외부로 알려진 이후부터 줄곧 "입장이 없다"는 공식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해군 훈련 파견 기간이 이번 달까지인 이 교수는 지난 15일 귀국 후에도 병원에 나오지 않고 있다. 병원 측과 대화를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 교수는 "어떻게 대화를 하느냐"며 "꼴도 보기 싫다"고 말했다. 병원과 이 교수의 갈등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사태를 중재해야 하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어제(2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양쪽이 다 열심히 했는데 양쪽이 다 지쳐 있는 상황으로, 법이나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 장관은 이어 "양자가 포용하는 자세라면 간호사를 10명쯤 더 늘리면서 서로 협력할 수 있었을 텐데 감정 골이 너무 깊었다"며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상대를 돌봐주지 않는 상태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복지부 장관의 말은 복지부는 그동안 중재할 만큼 했고 더는 중재가 어려우니 양쪽이 양보하고 포용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10년 가까이하지 못했던 양보와 포용을 갑자기 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화해의 골든 타임'은 한참 지난 걸로 보인다.

오현태 기자 (highfiv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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