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매일 아침 자식·손주 수십명 축복기도 해주신 외할머니

기자 2020. 1. 17. 15:0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읍내 오일장에 나갔던 외할머니의 아버지는 술자리에서 만난 유쾌한 사내와 사돈을 맺기로 약속하셨다.

미인 아내를 기대했던 외할아버지의 실망과 말문이 막히는 가난을 마주한 외할머니의 허망에 처음부터 다정한 부부는 아니었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드라마 단골 소재인 생활력 강한 어머니로 변신하지는 않으셨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수십 명의 자식, 손자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축복기도를 하셨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임수(1920∼2001)

읍내 오일장에 나갔던 외할머니의 아버지는 술자리에서 만난 유쾌한 사내와 사돈을 맺기로 약속하셨다. 술자리에서 급조된 두 사내의 약속은 한 계절이 끝나기 전에 성사됐다. 그렇게 나의 외할머니는 연지곤지에 족두리를 쓰고, 연두색 저고리, 다홍치마에 원삼을 입고 꽃가마 타고 40리 떨어진 윤씨 집안으로 시집오셨다.

동네 유지였던 최씨 집안 셋째 딸이었던 외할머니는 노랫말처럼 미인이 아니셨다. 반면 외할아버지는 동리에 소문이 자자한 미남이었지만 쓰러지는 초가에 젖먹이 막내까지 네 명의 동생을 둔 장남이셨다. 미인 아내를 기대했던 외할아버지의 실망과 말문이 막히는 가난을 마주한 외할머니의 허망에 처음부터 다정한 부부는 아니었다. 그러나 황무지를 개간하고 동생들을 키워 시집, 장가보내며, 광복의 기쁨을 나누고 6·25전쟁의 아픔을 함께 이겨내면서 부부간의 정은 깊어졌다. 그리고 외할머니는 칠 남매의 어머니가 되셨다.

이제 막 살림이 안정되던 무렵, 막내딸이었던 우리 엄마가 열 살 때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드라마 단골 소재인 생활력 강한 어머니로 변신하지는 않으셨다. 아들을, 딸을 남편 삼아 지금까지의 삶이 그러했듯 집안일밖에 모르는 아내로 사셨다. 하지만 그런 외할머니를 칠 남매는 너무 사랑했다. 외할머니는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당신의 방식으로 자녀들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겨울이면 손이 부르트도록 자식들과 손주들의 스웨터와 목도리를 뜨고, 사시사철 김치를 담가 집집이 나눠주셨다. 자식들에게 기쁜 일이 있으면 더 많이 행복해했고, 자식들에게 슬픈 일이 있으면 더 많이 우셨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수십 명의 자식, 손자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축복기도를 하셨다.

특히 막내딸의 첫딸이었던 나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셨다. 물론 당신께서 가장 오랜 시간 돌봐준 손녀였기에 그랬으리라. 고열로 쓰러진 열 살의 나를 업고 일흔이 넘은 당신께서 병원까지 달려가셨던 그 겨울 아침을 떠올릴 때마다 지금도 콧등이 시큰하다.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불현듯 찾아갔던 중환자실에서 가쁜 숨을 들이켜며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도 “너 좋아하는 열무김치 담가야 하는데…”였다. 그렇게 외할머니는 자식들을, 손자 손녀들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셨다. 외할머니는 당신에게 특별했던 손녀의 23번째 생일 아침 영면하셨다.

사랑하는 나의 외할머니 최임수 여사님. 순탄하지 않았던 81년의 삶 동안 당신께서 아낌없이 베풀어주신 사랑 덕분에 저의 오늘은 반짝반짝 빛나고, 수많은 아침 당신께서 해주신 축복기도 덕분에 저는 방향을 잃지 않고 내일을 향해 걸어갑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제 생일입니다. 동시에 당신이 가장 그리운 날이기도 합니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나의 할머니, 그립습니다.

당신에게 특별했던 외손녀 김자영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립습니다’사연, 이렇게 보내주세요

△ 이메일 : phs2000@munhwa.com

△ 카카오톡 : 채팅창에서 ‘돋보기’ 클릭 후 ‘문화일보’를 검색. 이후 ‘채팅하기’를 눌러 사연 전송

△ QR코드 : 독자면 QR코드를 찍으면 문화일보 카카오톡 창으로 자동 연결

△ 전화 : 02-3701-5261

[문화닷컴 바로가기|문화일보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모바일 웹]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모바일 웹: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