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 남영동 그 현장 [정동길 옆 사진관]

이준헌 기자 2020. 1. 14. 16:1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71길 37에 위치한 옛 남영동 대공분실입니다.

남영동 대공분실(南營洞 對共分室)은 경찰청 산하의 대공 수사기관이었습니다. 건물은 1976년 건축가 김수근에 의해 건축되었습니다. 2005년까지 보안분실로 사용되다가 경찰의 과거사 청산사업의 일환으로 경찰청 남영동 인권센터로 바뀌었습니다. 2018년 12월 26일에 법적 관리권이 경찰청에서 행정안전부로 이관되었고, 현재는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이름을 바꾸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시설을 운영중입니다.

이 건물이 유명해진 이유는 한 대학생의 죽음 때문이었습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입니다. 1987년 서울대 재학 중이던 박종철 열사는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중 경찰의 고문을 받다 사망한 사건입니다. 오늘(1월14일)은 박 열사가 사망한지 33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당시 경찰은 ‘민주화추진위원회’사건 관련 수배자의 소재 파악을 위해 그의 후배인 박종철 열사를 불법으로 체포했습니다. 그리고 대공분실 5층 9호방에 가둬놓고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박종철 열사가 사망하게 됩니다.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며 단순 쇼크사로 위장해 발표했습니다. 이후 물고문과 전기고문의 심증을 굳히게 하는 부검의(剖檢醫)의 증언으로 사건발생 5일 만인 19일 경찰은 물고문 사실을 공식적으로 시인했습니다. 당시 고문을 했던 수사경관들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사건 진상의 일부가 공개되자 야당은 당시 정부여당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를 가했고, 재야단체들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각계인사 9000명으로 구성된 ‘박종철군 국민추도회’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내무부장관, 치안본부장을 해임하고 고문근절대책 수립 등으로 사태를 수습하려했습니다.

5월18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성명을 통해 대공간부 3명이 이 사건을 축소 조작하였고, 고문가담 경관이 5명이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밝혔습니다. 이 폭로로 서울지검은 6명을 추가 구속했습니다. 경찰과 검찰의 사건은폐조작 시도는 정권의 도덕성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습니다.

이 사건과 관련된 일련의 추모집회와 규탄대회는 개헌논의와 연결되면서 6월 항쟁으로 이어졌고, 1987년 민주화운동의 촉발제가 되었습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