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의 피·땀·눈물 ep2. 긴급헌혈된 피가 어떻게 환자에게 갈까?

추동훈 2020. 1. 13.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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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자 추기자] Rh(-) 헌혈 추적기 2부

ㅣ긴급헌혈된 내 피는 어디로 갈까?ㅣ

 Rh(-) 혈액형이란 이유로 살면서 수십번의 긴급헌혈 요청을 받고, 가까운 헌혈의집으로 달려가 망설임없이 내 팔뚝을 내놓았다. 하지만 정작 어떻게 헌혈 요청이 오는지, 내 피가 어떤 과정을 거쳐 환자에게까지 전달되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아는 바가 없었다. 많은 헌혈 참여자들과 대중들 역시 헌혈의집에서 이뤄지는 혈액이 잘 관리되고 있는지 궁금증과 의구심 그 중간쯤의 생각을 갖고 있을터이다. 문뜩 지난 ep1.에서 헌혈을 하고, 어떻게 헌혈 요청이 이뤄지고, 따뜻한 내 체액이 어떤 과정을 거쳐 환자에게 전달되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이에 헌혈과정을 사이에 두고, 그 앞단과 뒷단에서 이뤄지는 긴박한 현장을 추적했다.

*관련 유튜브 영상

헌혈의 피·땀·눈물 ep2. 긴급헌혈된 제 피가 어떻게 환자에게 가나구요?


ㅣ3.75%에 불과한 실질헌혈자 비율ㅣ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2018년 한해동안 이뤄진 헌혈은 288만3270건이다. 이중 적십자사를 통한 헌혈은 268만1611건으로 93%를 차지했다.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20~29세가 38.8%(111만9821명)으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뒤이어 16~19세(29.6%), 30~39세(14.8%) 순이었다. 직업별로 살펴보면 대학생이 68만7841명(23.9%)로 참여율이 가장 높았고 뒤이어 회사원(23.9%), 고등학생(21.4%) 순이었다. 군인 역시 15.2%로 4번째로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많은 분들이 헌혈에 참여중이지만, 여전히 학교, 군부대 등 단체 헌혈 비율이 높다"며 "매년 헌혈 참여자들이 줄어들고 있어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실제 2018년 추계 총인구 대비 국민헌혈률은 5.58%를 기록했다. 헌혈가능인구 대비 실헌혈자 비율인 실질헌혈율은 이보다 더 낮은 3.75%에 불과했다.
2018년 헌혈자 실인원수 통계/출처=대한적십자사
Rh(-)헌혈은 어떨까. 2018년 기준 Rh(-) 헌혈은 1만2101건으로 전체 헌혈의 0.4%를 차지했다. Rh(+)는 연간 287만여 건이다. Rh(-) A형이 3996건으로 가장 많았고 AB형은 1403건으로 가장 부족했다. 실제 현장에서도 Rh(-) AB형 혈액형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라 항상 비상사태라고 했다.
2018년 혈액형별 헌혈통계/출처=대한적십자사

ㅣ긴박한 헌혈요청의 전단계ㅣ

먼저 어떻게 헌혈 요청이 오는지 쫓기 위해 지난해 12월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서울동부혈액원을 찾았다. 이곳에는 Rh(-) 긴급헌혈을 관리하는 '대한적십자사 CRM센터'가 위치해있다.
서울동부혈액원 CRM센터
Rh(-) 혈액 수급상황은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일단 혈액 재고량이 충분한 경우인 '일반단계'에서는 의료기관 및 권역별 혈액원 차원에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혈액확보가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경우 '긴급단계'로 분류된다. 병원뿐 아니라 전국혈액원에서도 혈액 재고량이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에 응급상황이 생기기전 미리 혈액 확보를 하고자 병원과 혈액원이 분주해지는 단계다. 마지막으로 즉각적으로 대량의 혈액 수혈이 필요한 '비상단계'는 당장 응급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발생하거나, 생사를 오가는 급박한 상황을 뜻한다. 이경우 혈액원 뿐만 아니라, Rh(-) 가족들이 자체적으로 운영중인 SNS 카페에서도 헌혈자 모집에 나선다. 지난 ep1.에서 언급됐던 전남대학교 병원 산모 수술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럴 경우 병원에서 보호자에게 직접 긴급헌혈이 필요하단 사실을 각종 카페나 커뮤니티 게시판 등을 통해 알리기를 권장한다. 과거 와썹맨 박준형 씨가 개인 SNS에 이러한 Rh(-) 긴급헌혈 글을 올리기도 했고, 게임개발사 넥슨 역시 주요 게임 홈페이지에 Rh(-) 헌혈자를 찾는다는 공지글을 공유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박준형 씨가 SNS에 올린 Rh(-)헌혈요청글/출처=인스타그램
게임 게시판에 긴급헌혈요청글을 공지한 넥슨/출처=넥슨
특히 상대적으로 보관기간이 5일 안팎으로 짧은 혈소판 혈액은 미리 비축하기가 어려워 매번 수급에 어려움이 크다.  CRM센터 근무 직원들은 전국에 흩어진 병원에서 긴급하게 Rh(-) 혈액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는 즉시 헌혈이 가능한 Rh(-) 혈액 보유자들에게 곧바로 연락을 취한다. 비상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콜센터는 주말에도 당직제로 운영된다. 직원들은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바삐 연락을 돌리느라 숨쉴틈조차 없어 보였다. 항상 급박하게 헌혈요청전화를 받기만 했지, 이렇게 연락을 주신 분들을 직접 만나니 감회가 또 새로웠다. 박인경 대한적십자사 CRM 센터장은 "수급자가 1명일 경우 20~30명에게 문자를 보낸뒤 전화요청에 나선다"며 "긴급헌혈인만큼 매순간 긴장감을 잃지 않고 수급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ㅣ꼬마백혈병 환자를 위한 릴레이헌혈ㅣ

비상상황이 일상화된 이곳에서는 무수한 사건·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한번은 한 꼬마 Rh(-) 백혈병 환자가 수개월간 지속적으로 혈소판 헌혈이 필요했었다. 아이는 그중에서도 귀한 AB형이었다. 전국에서 헌혈이 가능한 공혈자를 모으고 모아, 이들이 헌혈 순번을 정했다고 한다. 혈소판헌혈이 최소 2주마다 가능하기 때문에, 서로 중복되지 않게 순서를 정해 헌혈을 한 것이다. CRM센터 관계자는 "이 때 헌혈에 참가한 한 공혈자는 전국 각지를 누비며 다니는 트럭운전기사가 기억이 난다"며 "거대한 덤프트럭이 헌혈의집 주차장에 들어가지 못해 근처 공설주차장에 자비로 주차료를 내고 헌혈에 동참하기도 했다"고 사연을 소개했다. 이처럼 부족한 헌혈수급에도 불구하고 이름없는 Rh(-) 키다리 아저씨들이 곳곳에서 활약을 하고 있었다. 이처럼 CRM센터를 통해 헌혈자 확보에 성공하면, 가까운 헌혈의집에서 '지정헌혈'에 참여할 수 있다.
CRM센터에 게시된 상담현황표

ㅣ신속하면서도 철저한 헌혈후 과정ㅣ

몸에서 채취된 혈액은 곧바로 병원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수혈용으로 적합한지, 혹시 모를 감염 등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혈액원으로 보내진다. 이곳으로 보내진 혈액은 '제재' 과정을 통해 다시한번 철저한 점검이 이뤄진다. 서울중앙혈액원 김기동 제재팀 과장은 "관할내 혈액의집에서 적게는 100개, 많게는 200개 이상의 혈액이 이곳으로 들어온다"며 "짧게는 1시간에서 2~3시간 제제를 거친 후 공급팀에 전달한다"고 밝혔다.
서울중앙혈액원 제제팀이 혈액 제재 작업을 진행중이다.
이를 취재하기 위해 이날 오후 찾은 서울 강서구 '서울중앙혈액원' 공급팀에선 총성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혈액원으로 들어온 혈액을 분류하고, 긴급한 정도에 따라 혈액을 제공하는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에 정신이 없었다. 혈액을 요청하는 병원 전화로 벨소리는 잠시도 끊이지 않았고 공급팀원들은 잠시도 쉬지 못하고 업무에 집중하고 있었다. 혹시 혈액정보가 뒤바뀌거나 꼬이면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가 발생하는만큼 현장은 긴장감으로 가득찼다. 조원상 서울중앙혈액원 수급담당 팀장은 "주간보다 야간에 혈액수급이나 운송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희귀혈액을 관리하는 것인만큼 큰 책임감을 갖고 업무에 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혈액상자를 나르는 적십자사 직원.
대학병원 등 큰병원의 경우 혈액원에서 직접 혈액을 배송하기도 하지만 작은 병원에서는 직접 혈액을 받기 위해 직접 이곳을 방문하기도 한다. 취재중 한 군복을 입은 군인이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는데 이 역시 군병원에서 필요한 혈액을 받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철저한 제재 과정을 거친 후 병원으로 이송된 따뜻한 혈액은 마지막으로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마지막 검사를 거쳐 환자에게 쓰여진다. 이를 통해 소중한 생명이 지켜지고 꺼져가는 생명의 불빛이 다시 밝아진다. 헌혈과정의 앞단과 뒷단에서 이렇게 분초를 다투는 치열한 일들이 벌어지는지 이제서야 어렴풋이 손에 잡혔다.

ㅣ모두가 최선을 다하는 헌혈의 과정ㅣ

2018년 기준 수혈용 혈액 적정보유량(5일치)을 유지한 기간은 97일에 불과했다고 한다. 3일 중 하루는 긴급상황에 놓여있었단 뜻이다. 특히 희귀 혈액인 Rh(-)로 한정하면 그 비율은 더욱 낮아진다. 이처럼 늘어나는 헌혈 수요를 공급이 받쳐주지 못하고 있지만 헌혈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도 여전히 줄어들고 있지 않다. 적십자사 관계자는 "저희가 급하게 필요하지 않은 혈액을 마치 비축하듯 모은다는 오해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 안타까움이 크다"며 "헌혈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수십번이나 뽑혔던 내 피를 누가 요청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그 환자에게 제공되는지 전과정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 과정은 예상보다 훨씬더 긴박했고 기대보다 더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수급담당 조 팀장은 "본인이나 가족이 아프지 않으면 헌혈의 중요성을 잘 알기 힘들다"며 "하지만 이런 사고나 병은 예상치 못할때 발생할 수 있고, 그런 측면에서 헌혈이 가족을 위한 일임을 이해해주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혈액공급차량이 혈액상자 운송에 나서고 있다.

ㅣRh(-), 그들의 속사정ㅣ

적십자사의 헌혈과정을 취재하는 와중에 앞서 언급한대로 Rh(-) 가족들 역시 이러한 소수자 헌혈 시스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음을 다시끔 인지했다. 때마침 연말을 맞아 서울 사당동 인근에서 Rh(-) 가족 연말 송년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해 직접 찾아가봤다. 대한민국 0.1%에 불과한 Rh(-) 혈액형 보유자들은 자발적으로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과 오프라인 모임을 갖고 서로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힘이 되어주고 있다. 여러 모임중 가장 많은 회원수를 보유한 아특사(아주특별한사람들) 카페는 2004년 시작해 1만5000여명의 회원이 활동중이다.
Rh(-) 모임 아특사 메인페이지.
이날 송년회에는 다양한 조합의 가족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ep1.에서 언급한대로 본인 역시 고등학교때 처음 Rh(-)임을 알았다. 그건 약과였다. 한 어머니는 출산을 준비하다 본인이 Rh(-)인 사실을 알았고, 다른 회원분은 군대에서 처음으로 Rh(-)인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커가면서 혈액형이 바뀐다는 둥, 그만큼 예전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이 엉망이라든 둥 실소를 금치 못한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Rh(-)여서 겪은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나누고 공유하다보니 정말 어디가서 Rh(-) 지인 한명도 만나기 힘든 소수자였지만, 이곳에서만큼은 내가 주인공이고, 다수라는 느낌을 받았고 평온한 감정까지 들었다. Rh(-)AB형인 닉네임 서울볼매연듀님은 과거 한 방문자가 "(하필) 피도 이런피를 가지고 태어나서 (힘들다)"라는 글을 써서 굉장히 속상했던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는 "이런 피 가진 사람 여기 있고 언제든지 도와줄 수 있으니 언제든지 연락하시라"며 "주변에 힘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이만큼 있다는게 든든하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서울볼매연듀님은 지금까지 40여회의 헌혈을 했다.)
아특사 카페에 올라온 글 갈무리.

ㅣ가족과 함께하는 헌혈이야기ㅣ 

이날 가장 인상깊었던 이야기는 Rh(-) 혈액형 본인이 이러한 모임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 꼭 보호자가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였다. 부인이 Rh(-) 혈액형으로 보호자로 활동중인 닉네임 경기성남마법사님은 "Rh(-) 환자가 아파서 누워있으면 누가 헌혈을 요청하겠냐"며 "모임에 참여하는 신규 회원분께 다음에 나올땐 가족을 데리고 나와달라고 부탁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런 모임을 통해 서로의 아픔이나 어려움을 공유하고 공감하면서 서로 힘이된다"며 "만약 긴급상황이 생기더라도 얼굴이라도 아는 사람이면 한번이라도 더 도울려는 마음이 드는게 인지상정이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ㅣ니 피가 내피다!ㅣ

시간가는지 모르고 왁자지껄 담소를 나눈 뒤, 회원들은 기자에게 아특사의 구호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Rh(-)인 남편을 만나 자녀들까지 졸지에 3명의 Rh(-) 혈액형 가족이 생긴 보호자 경기광명킹스걸님은 "결국 우리들끼리 도울수 밖에 없고 가족처럼 지내는게 자연스럽다"며 "결국 옆에 앉은 사람의 피를 내가 받을 수 있고, 우리의 피를 또 다른 가족들에 주는게 우리의 숙명이다"고 구호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리고 드디어 구호를 알려줬다. 자기가 "니 피가"라고 선창을 할테니 "내 피다"라고 후창을 해라는 것.

 그렇다. 니 피가 내 피다!
"니 피가 내 피다! "라고 구호를 외치는 회원들

취재후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구호는 단순히 Rh(-)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살면서 가족이나 지인들 중 아프거나 사고가 났던 사람이 누가 있었나 생각해보자. 없다면 심지어 우리가 태어났던 출산의 순간에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혈액을 항상 준비해둔다는 점을 상기시켜드린다. 날씨가 추워지는 연말연시는 가장 헌혈이 적은 시기라고 한다. 혹시 몸상태가 괜찮으시거나 시간 여유가 조금 있으시다면 가까운 헌혈의집을 찾아 따뜻한 온기로 이 겨울을 보내봄은 어떨까. 마지막으로, 이번 기획기사가 나가고 회사 선배 한분으로부터 "나도 Rh(-)인데 반갑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렇다. 우리는 생각보다 가까운데 이렇게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추동훈 기자]

*관련 유튜브 영상

헌혈의 피·땀·눈물 ep2. 긴급헌혈된 제 피가 어떻게 환자에게 가나구요?




*관련 유튜브 영상

헌혈의 피·땀·눈물 ep1. 고딩때 헌혈하니 제가 Rh(-)라구요?

*제보 및 추적=chugij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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