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아이 캔 스피크 Ⅱ
[경향신문] 2018년 2월 서울북부지검 근무 시절, 검찰간부의 호출로 인사동에서 저녁식사를 함께한 적이 있습니다. 전년도 인사에서 부장 승진에 탈락한 사법연수원 31기 검사들이 2018년 상반기 인사에서 추가 승진했는데, 30기 부부장인 제가 신경 쓰였나 봅니다. 검찰총장 특사를 자처한 그는 서지현 검사의 미투사건 참고인이라 부득이 승진을 못 시켰다고 양해를 구하고, 해외연수를 느닷없이 권했습니다. 검찰개혁은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개인의 행복을 찾으라던가. 웃음을 참느라 혼났지요. 서 검사는 인사 발표 후 미투를 한 건데, 준비한 변명이 너무 성의 없었으니까요.
하반기 인사에 부산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을 시켜줄 테니 승진 걱정하지 말고 어학공부에 매진해 12월에 해외로 나가라, 한참을 설득했지요. 진지하게 듣는 체했습니다만, 어학시험을 치르지 않았습니다. 쉬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개혁 시늉만 하려는 검찰을 감시하고 비판할 내부자가 필요한 때잖아요.
7월 하반기 인사 발표 날 아침, 검찰국장이 된 그 간부의 전화가 왔습니다. 해외연수 약속을 지키지 않아 자신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거라고. 많은 간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검찰총장이 충주지청 부장으로 승진시키기로 했다는 공치사까지 하더군요. 31기 후배 후임으로 보내면서 하는 궁색한 변명과 생색이 어이없었지만, 해외 발령을 강제할 수 없는 인사시스템에 감사하며, 충주로 전입했습니다. 이후, 검찰 내부망과 SNS에 더하여 ‘정동칼럼’으로 내부고발자의 활동반경을 더욱 넓혔지요.
2019년 9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취임하던 날 오전, 법무부 간부로부터 다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감찰담당관실 인사 발령을 검토 중인데 반대가 극렬하다며, 검찰의 요구조건을 수락해야 인사 발령을 낼 수 있다더군요. 그들이 내건 조건은 3가지였습니다. SNS 중단. ‘정동칼럼’ 연재 중단. 서울중앙지검과 서울지방경찰청에 고발장 제출한 전직 검찰총장 등 전·현직 검찰간부들에 대한 직무유기 등 사건 고발 취하.
법무부 고위 검찰간부들의 요구였던 모양인데, 참담했지요. 내부고발자를 인사로 유혹해 침묵의 밀실에 가두고 이름만 빌리려는 의도가 명백히 보였으니까요. 그런 사람들이 법무장관을 보좌해 시대적 요구인 검찰개혁을 추진할 주체라는 현실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인 표현의 자유와 내부비판의 가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검사라는 현실은 검찰권을 위임한 주권자이자 검찰권 행사 객체인 국민들에게 참혹한 비극입니다. 저는 그런 검찰의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검찰 구성원이기도 하지요. 역사의 심판에서 피고인석에 앉을 검찰은 검사동일체 원칙에 따라 모든 검사들일 테고, 저도 검사이니 심판을 피할 길이 없네요. 부끄러워 하늘을 우러를 염치가 없습니다.
개혁 시늉만 하려는 검찰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내부자가 더욱 필요할 때라, 수락할 수 없었지요. 거래조건을 조율하려는 시도가 없지 않았지만, 모두 거절한 그날 오후, 조 전 법무부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감찰관실에 “임은정 검사를 비롯하여 자정과 개혁을 요구하는 검사들의 의견을 청취하여 감찰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했습니다.
그때 제가 유혹을 뿌리쳐 독사과를 먹지 않은 덕에, 서울중앙지검은 2015년 검찰 수뇌부의 성폭력 은폐 직무유기 고발사건을 1년8개월째 전전긍긍하며 들고 있고, 서울지방경찰청은 서울중앙지검에 3차례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하며 검찰공화국 민낯을 만천하에 드러나게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공수처법안 등 검찰개혁법안 통과를 위해 미력하나마 힘을 여전히 보태고 있지요. 제 목소리가 지금은 제 동료들에게, 적지 않은 분들에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불협화음으로 들리겠지만, 훗날 역사에서 검찰을 깨우는 죽비소리로 평가되리란 확신은 변함없고, 주어진 소명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2012년 상반기 서울중앙지검 근무 시절, 내부게시판에 수뇌부에 비판적인 글을 올렸다가 간부에게 불려가 “이러면 검사장이 될 수 없다”는 꾸중을 들었지요.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는 성경구절이 떠오르더군요.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한다면 돌만도 못한 건데, 돌만도 못해야 검사장이 된다면, 검사장이 왜 되고 싶을까요. 그 간부에게 차마 그리 묻지는 못했지만, 다짐했지요. 돌멩이만도 못한 그런 검사장이 아니라 할 말 하는 검사가 되겠노라고.
작년 1월, 칼럼 “아이 캔 스피크”로 첫인사를 드렸는데, 어느새 1년이 지났습니다. 신발끈 고쳐 매고 2012년 그때의 다짐을 떠올리며 굳은 각오로 다시 시작합니다. 부족한 글이나마 진심과 간절함을 담아 시대의 화두인 검찰개혁을 위해 더욱 목소리를 높여 볼게요. 다시 한번, “아이 캔 스피크!”
임은정 울산지방검찰청 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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