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유권자가 정책 사기에 대처하는 법

장상진 사회부 기동취재팀장 입력 2020. 1. 4.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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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피해자는 숫자 확인 않고 달콤한 말에 잘 속는 확증 편향
유권자도 정치인에 안 속는지 꼼꼼한 팩트체크로 권리 지켜야
장상진 사회부 기동취재팀장

현장에서 사기(詐欺) 사건을 취재하다 보면 피해자에게서 자주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다. 회사원 A의 사례를 보자.

2007년 A는 사업하는 친구 B에게 1억5000만원을 빌려줬다. 무엇보다 "2년 안에 배(倍)로 돌려준다"는 믿기 어려운 조건에 마음이 휘둘렸다. 게다가 B는 인상이 좋았고, 인간적 평판도 좋았다.

약속한 2년이 흘렀지만 돈은 돌아오지 않았다. B는 "잘되고 있으니 조금만 더 믿고 기다려달라"고 했다. 때때로 A가 의구심을 드러내면, B는 숫자가 가득한 재무제표나 사업지 지도 등을 보여주곤 했다. 그걸 A는 한 번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없다. 이 소식을 들은 A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조언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너무 늦기 전에 원금만이라도 돌려받는 쪽으로 마무리해라."

'공감 능력 제로인 꼰대의 잔소리'로만 들렸다. 반면 B는 놀라운 '공감 능력'으로 A를 매료시켰다. "너는 충분히 멋진 인생을 살 자격이 있다" "번듯한 집 한 채 정도는 있어야 수준에 맞는 여자도 만날 것 아니냐"는 등.

B의 사업이 완전히 망했다는 소식을 A가 전해 들은 것은 2011년 여름이었다. 그제야 B의 부동산 등기부등본과 재무제표 등을 본격적으로 확인하기 시작했다. 알면 알수록 절망감만 커졌다. 이미 늦었다. 2년 치 연봉이 그렇게 허공으로 사라졌다. 그는 말했다. "나도 바보가 아닌데 어느 시점엔 '일이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하지만 꿈에서 깨는 게 무서운 나머지 쉽게 확인 가능한 거짓말을, 믿고 싶어서 믿었습니다." 이 사연은 여기까지다. A는 장밋빛 청사진에 홀렸고, 능력보다 인상평가에 점수를 줬다. 수가 틀어지기 시작할 때쯤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 편향'에 빠졌다. 경험에서 나온 조언이나 부정적 팩트는 외면했다.

최근 나라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서 A가 문득 떠올랐다. 우리는 2년 7개월 전 '소득 주도 성장'(소주성)이란 검증되지 않은 약속을 내건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청와대는 홈페이지 대문에 소주성이 마술 같은 분수 효과를 일으킨다는 홍보물도 걸었다. 대선 당시 온라인에선 외국인에게 '후보자 포스터만 보고 누구를 찍을 것인지' 설문한 영상이 인기였다. 능력·자질과는 무관한 설문 결과 현 대통령이 압도적인 1위로 나오자, 지지자들은 영상에 "관상이 벌써 대통령" 등 제목을 붙여 인터넷에 뿌렸다.

그 정부가 세 번째 새해를 맞은 날, 대통령은 "우리는 새해에 행복할 자격이 있다"는 공감 충만 감성 언어로 한 해를 시작했다. 바로 그날 '작년 수출이 10.3% 줄어들어 10년 만에 최대 폭 하락을 기록했고, 12월 수출도 부진하다'는 성적표가 나왔다.

잘될까 의문이 들 무렵이면 대통령은 수시로 재무제표를 당당하게 들이민다. 통계청장이 의문의 교체를 당한 뒤 더 자주 보는 장면이다. 지난달에도 말했다. "해외에서는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아주 견고하다고 평가한다"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올해(2019년)도 목표인 200억달러를 넘었다"라고. 200억달러는 사실 전년(269억달러) 대비 20% 줄어든 금액이다. 이런 식으로 따질 때면, 정부는 으레 "좀 더 기다려 달라"고 답하는 것이다. 소주성이 빈부격차를 키웠다는 지적은 무시되기 일쑤였다.

A의 경험에 비춰보면, 아직 우리에겐 최소한 해야 할 일이 있다. 등기부등본과 재무제표를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정말 공언한 대로 가고 있는지 눈 뜨고 확인하는 일이다. 그게 유권자가 자신의 남은 권리를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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